사진에는 기억이 남는다

왜 필름 사진을 찍는가에 대한 고찰_0002

아이폰에는 "라이브 포토" 기능이 있다. 셔터를 누른 순간을 기준으로 전후 1.5초 정도의 장면을 기억한다. 이 기능을 활용해 3초 정도의 순간 중에서 베스트 샷을 고를 수 있게 된다. 필름도 이런 기능이 있다면 좋겠지만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대신, 내가 찍은 필름에는 내 기억이 남는다. 어떤 곳으로 여행을 갔었는지, 그때의 기분은 어땠는지, 무엇이 셔터를 누르게 했는지. 필름에 함께 남은 기억 덕분에 아이폰의 "라이브 포토"처럼 내 머릿속에는 그날의 베스트 샷을 떠올릴 수 있다.


20251003_062226 (1).jpg 뮤즈의 콘서트가 열렸던 인천 문학 경기장의 모습. 이 날따라 구름이 유난히 이뻤던 건 내 기분 때문이었을까.


MUSE는 나의 최애 락 밴드다. 그래서 작년 내한 콘서트를 다녀왔다. 아마 이 콘서트를 갔다 온 것이 내 인생 최대 업적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정말 기대했고,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이날 나는 어김없이 필름 카메라를 들고 갔다. 필름으로 그 현장을 담고 싶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셔터를 눌러야겠다는 생각은 사라졌고, 그 순간을 즐기는 것에 몰두했다. 그래서 남은 사진이라고는 공연 시작 전에 찍은 이 사진이 전부. (사실 더 있긴 하지만 망한 사진뿐이다..) 하지만 이 사진을 보면 그날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았던 가을 날씨. 빈 옆자리 덕분에 쾌적했던 기억. 예상치 못한 순간에 시작된 "Stockholm Syndrome"의 인트로. "Starlight"와 함께 밤하늘을 수놓았던 불꽃놀이. 이 모든 순간들이 필름에 남아있다.

20251003_062226 (2).jpg 엔딩곡인 Starlight와 함께 터졌던 불꽃놀이를 담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쉬웠다. 그래도 그때의 황홀했던 기억은 잘 간직했으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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