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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테 Jun 24. 2020

20대에 내가 잘한 일

뼈 있는 아무 말 대잔치를 읽다가 

유튜브 콘텐츠가 모든 sns 사용시간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시대에 그야말로 유튜브 시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데 모두 자기 취향에 맞는 영상들을 보겠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체인지 그라운드', '신박사 TV', '독서연구소'를 즐겨본다 그 밖에도 많지만 대표적인 대한민국 고품격 자기 계발 방송이라 특히 나는 인생의 멘토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없었는데 내 멋대로 멘토라 생각하는 인물인 '신박사'님을 만나 꾸준히 보고 그분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고 나름 성장하는 중이다. 


신박사님이 쓰신 책은 많이 있고 최근에 드디어 정독한 '일취월장'이란 책을 리뷰하고 싶지만 어디부터 손을 댈지 플랜이 안 나와서 일단 가벼운 '뼈 있는 아무 말 대잔치'에 대한 서평을 하면서 여기나 온 목차 중 하나인, 20대에 잘한 일을 내 인생 스토리로 풀어서 한번 써보고 싶었다. 


첫 번째 글쓰기를 시작한 것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도 꾸준히 보는데 특히 글쓰기를 오래 하고 있다. 20살부터 경제적 자유를 꿈꾸며 무자본으로 돈 벌 수 있는 수단이 무엇일까 열심히 궁리를 하다가 발견한 블로그를 시작해 온라인에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지금은 블로그, 브런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네이버 카페 등 정말 많은 플랫폼에서 활동을 하고 있고 특히 브런치가 나와 잘 맞는 거 같아서 나름 꾸준히 하고 있다. 글쓰기를 하면 좋은 점은 그 당시의 기억과 지식이 보존된다는 것이고 과거의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현재의 내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삶의 방향을 잃을 때도 도움이 된다. 가끔을 열심히 길을 가고 있다가 이 길이 어떤 길이 었는지 모를 때가 있다 그 순간 내가 잘 가고 있는 건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혼란스러운데 그럴 땐 과거의 발자취를 다시 한번 더듬어가며 현재로 돌아오면 효과적이다. 또한 지금은 소통의 시대다. 글쓰기가 이렇게 까지 부각된 시대는 없을 거라 생각이 든다. 어떤 콘텐츠 든 간에 글쓰기 능력은 필수고 기본적인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 능력은 계속 키워야 한다. 글쓰기를 하면서 수많은 블로거들을 만나고 수많은 인생을 엿볼 수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성찰과 반성을 통해 메타인지를 높이고 보다 나은 내가 되는 방향을 찾아 헤매지 않고 갈 수 있다. 그리고 잠깐이었지만 블로그를 통해 한때 디지털 노매드로써 말도 안 되는 금액과 편한 생활을 해보기도 하였다.(그건 독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사건보다 해석 중심이기에 ) 아무튼 글쓰기가 가져다준 혜택은 너무나도 많고 장점도 많으니 꼭 많은 분들이 습관처럼 했으면 좋겠다. 첫 시작 글은 아무 말 대잔치로 써도 되지 않을까? 


두 번째 일본 워킹홀리데이


내 인생의 첫 번째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워킹홀리데이 때의 경험은 나의 모든 것을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특히 이 시기에 엄청난 자아성찰과 현재와 미래의 인생설계가 많이 이뤄졌던 거 같다. 짦게 나의 워홀 스토리를 풀자면 시작은 간사이 지방의 고베란 곳의 아리마 온천이란 관광지에 있는 한 료칸 주방에서 시작했다. 당시에 가이세키 요리가 정확히 모른 채 그걸 배워두면 요리사로서의 명성도 올라가고 수입도 짭짤하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도전하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 일하게 된 계기도 블로그를 통해서 알게 된 료칸 전문 여행사에 서포터스를 하면서 길이 열리게 되었다. 문제는 이곳에서 한국에 있을 때 들었던 근무환경과 너무 갭이 크고 요리도 내가 원하던 요리가 아니라서 포기하게 되었다. 그다음 잠시 거쳐간 곳은 오사카에 있는 숯불꼬치 이자카야였는데 여기는 주방 자체가 말도 안 되게 설계가 되어있어서 도무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거 같아 포기하고 이때 일본 생활에 염증을 느꼈던 나는 외국인 노동자로써의 설움 등이 몰려와서 멘붕이었는데 그럼에도 이대로 돌아가서는 아무것도 건진 것이 없는 거 같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수많은 면접을 본 후에 취업한 곳이 일본의 체인리조트였는데 발령받은 곳은 기후현에 있는 게로 온천이란 곳이었다. 우연인지 일본 3대 온천관광지 3곳 중 2곳에서 일해보게 되었다. 이곳에서 한국에 돌아가기까지 쭉 근무를 했었는데, 노인들이 많고 제대로 된 인력이 없는 주방에서 매일 300인분 정도의 식사량을 뷔페로 70여 가지를 준비해야 했는데 근무시간도 꽤 불규칙적이었고 무엇보다 감당해야 할 일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매우 매우 힘든 시기였음에도 정규직이 되어보겠다고 발버둥을 치며 12개월짜리 워홀 비자에서 1개월 연장을 하며 취업비자를 받기 직전까지 일했었다 마지막에는 회사에 대한 불신과 아무리 노력해도 외국인 노동자라는 입장이 불만족스러워서 한국으로 향했다. 짦게 요약했지만 이안에서의 무수히 많은 일들로 인해 나는 그때까지 받아보지 못한 인생 최대의 고통을 받았고 고통은 인간을 성장시키기에 그만큼 많이 성숙해지고 단단해졌다. 특히 멘탈이 많이 단련이 되었는데 지금 오너 셰프로 살면서 이 경험들이 정말 많이 도움되고 있다 


세 번째 요식업 창업


나름 20대에 도전을 많이 한 편이라 생각하는데 수많은 도전 중에 지금 현재의 오너 셰프로써 있는 요식업 창업이 인생의 두 번째 터닝포인트라 생각하고 20대 잘한 일 세 번째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약간 떠밀리듯 시작한 창업은 처음엔 아직 준비가 많이 안되었다고 생각했다 가진돈도 없었고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상가도 겨우겨우 돈을 맞춰서 임대료도 깎고 들어온 곳이라 참 무모했다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3월부터 지금 6월 말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정말 다양한 일들이 있었고 공사기간 더하면 약 반년 동안 다양한 일과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또 한 번 큰 성장을 하고 있다. 한번 워홀 때 크게 경험한 것이 있고 서비스업이라면 간사이공항에서의 지상직 경험도 있어서 나름 점들이 모여 선이 되어 지금을 완성시키고 있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이 있지만 다른 건 몰라도 현재 내 삶에 충실하게 살고 있다 나답게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매일매일 고통받는 매출과 손님과의 마찰 그리고 가게 운영에 대한 스트레스는 이만저만 계속 생기지만 그럼에도 이 일이 즐겁다 내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고 내가 내 레시피를 가지고 내 요리를 손님에게 선보이고 맛있다고 말해주시고 재방문을 했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또한 하루를 정말 충실히 보내고 있다는 기분이 매일 든다. 모르는 것은 계속 학습하고 공부하고 다시 아웃풋으로 뽑아보면서 장기 기억화 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 있다 오늘같이 역대급 최저 매출을 찍을 때면 애가 타지만 그 남는 시간만큼 또 이렇게 글을 쓰고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면서 나의 조바 심으 달랜다. 이런 시간에 또 매장을 쭉 살펴보면서 뭐가 문제가 있을지 체크하고 뭘 더 해볼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러면서 장사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정말 인생 그자체를 성장시키고 있다. 






나도 분명 성격이 바뀐 것이겠지만 지금은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신박사님은 늘 질보다 양을 강조하고 뼈. 아. 대에서도 이 부분을 강조한 부분이 있다. 20대엔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맵 집을 키우고 멘털을 단련하고 내 생계를 평생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계속해서 성장시키고 스케일업을 하겠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30대의 진입 그래서 29살은 우울하고 두려움과 자괴감이 많이 발생된다. 아직 조금 남은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그런 걱정과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나는 더욱더 학습하고 강해지고자 하겠다. 그건 분명 내 요리에도 녹아져 깊이를 맛을 더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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