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음 다 헤아리지 못해도
동네에서 장사를 하면 거의 매일 보는 얼굴들이 있고 자주 보는 얼굴들이 있다. 특히 단골이 되시거나 오고 가며 인사라도 하는 사이가 되는 분들이 꽤 계시는데 가끔은 그런 손님 중에 늘 술 마시며 진상 아닌 진상인 손님들이 있다. 우리 동네에는 특히 TMI 즉 투머치 토커 말 많은 손님이 꽤 계시는데 그런 분들 때문에 감정 쓰레기통이 되거나 서서 그 손님들의 듣고 싶지 않은 얘기를 계속 듣거나 하는 스트레스가 있다. 사실 술 마시고 하는 얘기들은 거의 귀담아들을 필요는 없지만 술의 기운을 빌려 누군가에게라도 가슴속에 묻힌 속마음을 꺼내 자신을 드러내고 위로받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가족 간의 불화가 있으신 손님
자신을 '아저씨'라고 칭하며 반말로 나에게 편하게 대하시는 손님이 계신다. 그 손님은 사모님도 둘째 아드님도 같이 와서 식사한 적이 있고 요즘은 주로 혼자 와서 소주에 초밥을 드신다. 얼마 전에 알계된거지만 약간 알코올 중독인 분이셨다. 늘 취한 상태였고 우리 가게에 들어올 때도 취기가 있는 모양새로 들어왔다. 일은 얼마 전 둘째 아드님이 와서 일어났다. 둘째 아들은 유도선 수라 몸이 굉장히 좋고 꽤 험상 굳은 인상이라 무섭기도 한데 대화를 하면 순박하고 착한 성격인 듯하다. 그러나 아버지를 찾아온 그는 그리 착한 아들은 아니었다. 다짜고짜 우리 가게에 왜 왔냐 여기 와서 또 술 마시냐 하며 술잔과 술병을 빼았았고 그런 그 아저씨는 술내 놓으라고 실랑이를 피웠다. 한 30여분의 짧은 실랑이었지만 나에게는 3시간이 넘는듯한 긴장된 공기가 감도는 순간이었다. 결국 아저씨는 술을 빼앗아서 한 병을 다 마신 뒤에야 가게문을 나섰고 계산은 둘째 아들이 하면서 마무리가 되었는데 우선 그 아저씨 손님은 혼자 오실 때마다 우리에게 말 상대가 돼 달라는 듯 계속 말을 걸면서 자신의 얘기를 하는데 가족에게 특히 그 몸 좋은 덩치 큰 둘째 아들에게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말을 들었다. "나는 아버지처럼은 안 살 거예요!" 분명 그 아저씨도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왔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 둘째 아들을 포함해 자식들을 위해 헌신했을 것인데 그런 세월이 전부 부정당한 말을 아들에게 들었으니 술이 고플 만도 하다. 정확히 그 가족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 아저씨는 늘 가슴에 한 맺힌 것이나 속상한 것들을 얘기하며 우리에게 들려주고 우리는 묵묵히 듣고 다소의 액션을 취해주며 이해하려 해 준다. 나는 이과정이 매우 힘들고 고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 손님에게 안쓰러움과 애처로움을 느껴 차마 말을 툭 끊어 버리지 못한다.
동네에 말 상대가 없어 외로운 노인
자신의 지난 인생과 역사와 정치와 정말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한참을 얘기하고 혼술 하고 가시는 할아버지가 계신다. "나 아는 사람들은 나 빼고 다 죽었어" 지난번 나에게 했던 얘기다. 늘 혼술을 하면서 밖을 계속 주시하시는데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식사나 술을 마시고 싶어 하시는데 아는 사람이 지나가는 일은 거의 없다. 분명 사시는 곳도 우리 가게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동네에 오래 사셨기에 우리보다 아는 분도 많을 텐데 그렇게 지인들이 지나가는 일은 드물다. 45년생의 나하고 까마득하게 나이 차이가 있어서 도무지 이야기에 반이상은 공감도 안되고 무슨 얘기인지 잘 이해가 안 갈 때가 많다. 다만 말 상대를 해주면 그냥 앞에 앉아 얘기만 들어주는 걸로 "자네는 참 천사야"라고 말씀하시고 자기 말을 알아듣는 자네가 훌륭하다 내 말이 훌륭한 게 아니라 이걸 알아듣는 자네가 훌륭하다면서 처음에는 앞에 앉으니 더 못생겼네 하면서 음식도 별로네 하다가 자리를 일어서기 전쯤에는 이렇게 칭찬을 해주신다. 늘 현금 계산을 하시고 혼술 하는 할아버지 분명 외로움도 많고 나이가 지긋이 있으신 만큼 옆에서 보면 인생이 덧없음을 느끼시는 거 같다.
친구가 없지만 밝고 명랑한 정신지체장애인
우리 동네에는 조롱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조금 모자라 보이는 장애인들이 꽤 있다. (장애인이라는 말이 절대 비하하거나 조롱하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그중에 여고생으로 보이는 여자애가 한 명 있는데 어느 날은 우리 가게에 처음 와서 이런저런 감탄사를 연발하며 꽤 한국인 같은 오지랖 넓은 말을 주섬 없이 꺼내었다. 나는 당황스럽기도 하면서 이렇게 남에게 거리 감 없이 훅 들어오는 사람도 드물어서 호기심 대상이기도 했다. 처음에 초밥을 포장하고 난 후 며칠 동안 잠잠했는데 최근에 밖에서 고양이와 신경전을 벌이는 걸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게에 들어와 나에게 "고양이가 위험하고 보호해야 할 거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며 SOS를 보냈다. 나도 본디 오지랖퍼인지라 일단 나가서 같이 고양이를 보았는데 우선 동네에 자주 보는 고양이었고 그 고양이는 상태도 좋은 그냥 야생고양이일 뿐이었다. 그 여자애는 나에게 고양이를 가게에서 기르면 안 되냐고 했지만 음식점인 이상 동물을 들여놓을 수도 없고 사실 우리가 그 고양이보다 불쌍한 입장인지라 내 몸도 내가 잘못 키우는데 하물며 네발 달린 동물이라니 큰 도움이 되지 못한 나는 고양이에게 먹이라도 주려고 연어 조각을 가져와 먹이려 했는데 도망가버렸다. 그 여자애는 혹시라도 고양이들이 가게에 지나가면 먹이라도 주라고 참치캔 얘기도 꺼냈는데 그 비싼걸 우리도 못 먹는데 고양이에게 먹이라니... 마음씨는 곱고 하지만 엉뚱한 구석이 있는 그러면서 외로워 보이는 친구 없는 여고생
장사를 하다 보니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사람들의 사연도 알게 된다. 위에 언급한 3명 말고도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과 이야기를 듣게 되겠지만 정말 술을 부어라 마시면서 진상을 부리는 진상 오브 진상 손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부류의 진상 손님들은 사실 가슴속에 마음이 다친 가여운 사람들이라 생각이 든다. 그런 손님들의 마음까지 치유해줄 수 있는 가게가 되기를 나는 꿈 꾸고 있다. 분명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기에 어쩌면 영업방해일 수도 있는 이런 일들이 사실 우리 주변 이웃들을 돌보고 사람대 사람으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도와주고 그저 옆에서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고 그분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윤택함을 더해줬다면 나는 내가 되고픈 이기적 이타주의자로써의 삶에 한 발 더 다가간 것이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