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

기분이 태도가 될 때

by Josh

요즘 많이들 하는 말이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된다는 말이다.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나약하고 모호한 인간인 나는 늘 기분이 태도가 된다. 살다 보면 같은 풍경인데도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 똑같이 비가 내리는 날인데, 어떤 날은 괜히 우울해지고, 또 어떤 날은 낭만적이라고 느껴진다. 거리에 피어 있는 꽃도, 누군가의 무심한 말도, 어떤 순간엔 아무렇지 않고 어떤 순간엔 마음을 크게 흔든다.


​나는 늘 말한다. 일체유심조라고,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고. 뭐 또 나의 개똥철학이지만, 많은 똑같은 것들을 어떻게 느끼느냐 그 차이는 결국 외부가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세상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결국 모든 건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


단순해 보이는 이 생각은 꽤 무겁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이 객관적 사실의 연속이라고 믿는다. 태어나서 자라고, 공부하고, 일하고, 나이를 먹는 과정은 마치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길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그 길의 무게와 색깔은 제각각이다. 똑같은 실패를 경험해도 어떤 이는 무너지고, 어떤 이는 오히려 단단해진다. 같은 성공도 어떤 이는 교만으로 흐르고, 어떤 이는 감사로 받아들인다. 결국 사건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이 그것을 어떻게 빚어내느냐가 삶을 결정한다. 누군가에게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 밖에 없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지나가는 잠깐의 상념일지도 모른다.

내게 있어 마음은 현실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힘이다. 그런데도 나는 종종 마음을 잊고 산다. 세상을 고정된 실체로 바라보고, 내 마음은 단지 반응하는 존재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마음이 먼저 의미를 짓고, 그 의미가 다시 경험을 빚어낸다. 그러니 마음을 돌보고 살피는 건 단순한 내면 수양 같은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바꾸는 가장 근원적인 힘이다.

그렇다고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거창한 수행을 말하는 건 아니다. 일상의 작은 순간에서 마음을 자각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 지금 이 화는 내 마음이 만들어낸 거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 불안에 휩싸였을 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내가 과장하고 있구나 하고 자각하는 것. 이 작은 알아차림이 쌓이면 마음의 힘은 조금씩 달라진다. 마치 한 방울의 물이 모여 큰 강이 되는 것처럼, 작은 순간들이 모여 삶 전체의 색깔을 바꾼다. 물론 마음은 늘 흔들린다. 순간순간 욕망에 휩쓸리고, 분노에 휘말리고, 불안에 흔들린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때마다 아, 이건 내 마음이 짓고 있구나 하고 자각하는 것이다. 자각하는 순간 마음은 사건을 붙잡고 있던 힘을 조금씩 놓는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다.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 세상은 외부에서 완성품처럼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그려내는 풍경이다. 그렇다면 마음을 돌본다는 건 단순히 감정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삶 전체를 새롭게 빚어가는 일이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외부의 흔들림에 덜 휘둘리고, 내 안의 지혜와 평온으로 조금 더 단단하게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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