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무게와 만남의 피로함

관계에 자유롭지 못한 나라는 인간

by Josh

탄자니아 시골에서 살다 보면, 너무나 단순한 환경 속에서 오히려 복잡한 감정이 생긴다. 도시라면 사람과 약속이 많아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었을 텐데, 여기서는 햇볕이 조금만 더 길어지면, 벌써 하루가 다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밤이 오면 어둠은 갑자기 너무 크고, 그 속에서 나는 혼자라는 사실이 아주 크게 실감된다. 그 외로움은 조용하지만 무겁고, 머릿속에 악착같이 매달려있다.

이전에 있던 나라들에서 사람이 많은 곳에 살 때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거대한 구름처럼 느껴졌다면, 여기서 느끼는 외로움은 더 가까운 곳에 있다.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고, 들여다보면 내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가끔은 이런 외로움이 나라는 인간에게 정말 평생 풀리지 않는 문제라는 게 실감 난다. 결혼을 해도, 가족이 있어도, 친구가 많아도, 결국 외로움은 형태만 다르게 남아 있다. 지금 내 외로움이 더 도드라지는 건, 나 혼자 낯선 환경 속에 있기 때문일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내 습관일까.

그런데 참 이상한 건, 이 외로움이 너무 힘들어서 누군가 좀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만들어내면서도, 막상 사람을 만나면 또 피로해진다. 사실 이게 내 문제다. 아주 근본적인 문제, 나는 외로워서 사람을 찾는데, 정작 만나면 금방 지쳐버린다. 갈증이 나서 물을 마셨는데, 물이 소금물이었다는 느낌. 해결하려고 한 행동이 새로운 문제를 또 만든다.

나는 스스로 이런 면을 너무 잘 알고 있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사람 만나면 피곤하고. 가끔은 내 성격이 너무 모순적이라 우스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 모순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또렷해진다.

사람들은 대체로, 누군가의 삶을 진심으로 걱정한다기보단 관심이라는 포장지 아래에 자신들의 궁금증을 넣어서 건네곤 한다. “괜찮아?”라는 말이 사실은 “무슨 일이야?”를 의미하고, “도움 필요해?”라는 말이 사실은 “얘기 좀 해봐”를 의미하기도 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소비하려는 태도, 나는 이게 참 어렵고 힘들다.

누군가에 대한 흥미라는 감정은 인간이 어쩔 수 없이 갖는 감정이지만, 그 흥미가 그 누군가의 삶을 뜯어보는 방향으로 흐를 때 나는 빠르게 지친다. 그건 마음을 파헤치는 일이고, 파헤쳐 진 사람은 늘 더 피곤해진다. 사람들을 만나면 이런 미묘한 신호들을 감지해야 한다. 누구에게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 지금의 질문이 걱정인지, 관심인지, 아니면 그냥 심심함인지. 내 의도가 아닌 타인의 의도를 분류하는 작업은 굉장히 에너지를 소모한다. 물론 그들은 악의로 그러는 건 아니다. 나도 안다. 하지만 나는 그걸 알아도 힘들다.

그래서 혼자 있고 싶어진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아무에게도 내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그냥 내가 원하는 속도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상태. 그건 너무 편하고, 너무 달콤한 휴식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휴식이 오래가면 외로움이 밀려든다. 고립이라는 어두운 감정은 항상 어느 지점에서 거대한 파도처럼 찾아온다.

외로움은 은근히 잔인하다. 제일 마음이 편한 순간에 사람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그러면 다시 누군가 만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던가? 사람을 만나면 피곤하다. 아 뭐 어쩌라고 그래서? ㅋㅋㅋ 나도 몰라 내 마음을

이게 지금의 나다. 외로움과 피로함의 사이에서 진자처럼 흔들리는 인간. 탄자니아에서 지내며 깨달은 건, 외로움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감정이고, 만남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피로라는 것. 혼자인 인간은 외롭고, 함께 있는 인간은 피곤하다. 그럼 나는 어디에 서야 하나.

이런 고민을 내내 하다 보니,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왜 나는 이토록 모순적인가? 뭐 비단 나만 이런 건 아니겠지? 사람들도 대부분 이런 면을 갖고 있겠지. 다만 누군가는 외로움을 감추고, 누군가는 피로를 감추고 살 뿐이다. 나는 그 감추는 능력이 조금 떨어질 뿐.

사실 내가 느끼기에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결핍이라기보다 인간이기 때문에 느끼는 원초적 감정에 가깝다. 그리고 만남의 피로함 역시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의 불편한 그림자다. 나는 타인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타인을 감당할 체력과 마음의 저장량이 부족하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그 말에는 사회적이어서 피곤한 동물이라는 뜻도 숨어 있을지도.

뭐 아무튼 이 상황에서 나는 결론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 외로움을 사랑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무조건 즐기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그때그때 마음 가는 대로~~ 외로움은 나를 깎아내리지만 만남은 나를 소모시킨다. 그 두 가지를 모두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 아마도 사회화된 인간이 되어간다는 의미겠지.

다르에스살람에 올라와 오랜만에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는데 제발 머리 좀 자르고 면도 좀 하라는 애정 어린(?) 조언에 한 미용실 예약을 기다리며 주절주절. 이발하고 장보고 집 가서 샤워 한번 쓱싹하고 주토피아 보러가야징 ㅎ 린디에 있었다면 술이나 퍼먹고 있었겠지만, 다르에선 할게 너무 많다.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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