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기억들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면 꼭 네가 묻힌 곳에 다녀와야지. 몇 번을 잊어버리고 핑계만 대다가 어느덧 3년이나 가지 못한 그곳.
어느덧 네가 죽은 지 여러 해가 지났다. 너의 죽음을 입안에서 몇 번 굴려도 예전만큼 낯설지는 않다 근데 익숙해지지도 않는다. 사실 어떤 일들은 오래되었다고 해서 가벼워지지 않으니까. 오히려 너무 오래 남아 있어서 내 몸의 일부처럼 굳어버린 탓일까? 너에 대한 슬픔은 처음에는 날카로운 유리 조각 같았는데, 지금은 살 속에 박힌 작은 유리조각 같다. 만질 때마다 아프지는 않다. 그런데 문득 잘못 건드리면 오래전 상처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줄 안다.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 나는 예전처럼 네 이름을 듣자마자 숨이 막히지는 않으니까. 사실 네 사진을 봐도 이젠 바로 시선을 돌리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술을 마시다 너와 닮은 누구의 모습만 봐도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면서 화장실이 무너져라 울어댔는데 이제는 그런 일도 드물다.
그런데 대신 다른 식으로 남았다. 아주 사소한 순간에 아무 예고도 없이, 네가 내 생각 속으로 들어온다. 식당 냉장고 앞에서 맥주를 고를 때, 버스 창문에 비가 번질 때, 누군가가 형편없는 농담을 진지한 얼굴로 할 때, 그럴 때마다 나는 상실은 끝나는 일이 아니라, 모양을 바꾸는 일이라는 것을 느낀다.
솔직히 네가 있을 때 나는 너를 그렇게까지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야 거의 30년째 늘 옆에 있지 않나. 언제든 연락할 수 있었고, 내가 그 어떤 가면도 쓰지 않고 나의 밑바닥까지 모두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몇 명 중 한 명이 너였고, 대충 욕을 섞어 불러도 받아줄 사람이었고,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듣는 사람이었다. 그런 관계는 있는 동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물처럼, 공기처럼, 당연한 배경처럼 느껴지니까.
그런데 그런 것들 중 하나가 사라지고 나서 뒤늦게 나는 알았다. 내가 잃은 건 한 명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가능했던 세계 전체라는 걸. 너는 그냥 친구가 아니었다. 내 말투의 일부였고, 내 판단의 기준이었고, 내가 하루를 버티는 방식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네가 사라진 뒤에는 같은 풍경도 전과 같지 않았고, 같은 거리를 걸어도 이전의 길이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어떤 일을 겪으면 제일 먼저 네 생각을 한다. 웃긴 일을 보면 너라면 뭐라고 했을지 떠오르고, 열받는 일을 겪으면 네가 먼저 내 편을 들어줬을 장면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내가 화를 낼 때, 송인근 왜 또 화내냐고 묻는 게 아니라 왜 화가 났는지 묻는 건 너 하나였으니까. 그러나 한 박자 늦게 깨닫는다. 아 이젠 네가 없지? 그 순간은 아직도 이상해, 여섯 해나 지났는데도 나는 몇 초 동안 네가 살아 있는 사람인 것처럼 반응한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몇 초 동안, 다시 한번 네가 없다는 사실을 배운다. 사람은 한 번만 죽는 줄 알았는데, 남은 사람 안에서는 그렇게 여러 번 죽는다.
기억은 도움도 되고 형벌도 된다. 네가 웃던 얼굴을 떠올리면 잠깐 숨통이 트인다. 그러다가 곧바로 그 웃음이 지금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에 목이 조인다. 나는 오래전부터 알게 되었다. 기억은 지나간 시간을 그대로 되돌려주지 않는다. 다만 이미 없어진 것을 잠깐 지금 여기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속는다. 네가 좋아하던 노래가 나오면, 네가 내 옆에서 가사를 틀리게 따라 부를 것 같다. 비슷한 향수를 맡으면 네 옷깃이 스쳐 지나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아주 잠깐 살아난 것들은 언제나 다시 사라진다. 그 짧은 재회와 재상실을 나는 여섯 해째 반복하고 있다.
솔직히 이제 네 얼굴은 기억이 안 난다. 꿈에서도 흐리고 사진을 봐야 아 네가 이렇게 생겼었지 싶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람을 잊기 위한 내 뇌의 장난인가? 이상한 건 시간이 지날수록 네 얼굴보다 네 습관이 더 또렷해졌다. 소주를 마시기 전에 막걸리를 꼭 한잔 마시던 내가 가장 싫어하던 너의 습관이나, 민감한 문제에 대답해야 할 때면 꼭 윗입술을 깨물던 버릇, 길을 걷다가도 마음에 드는 간판이 있으면 괜히 소리 내 읽던 이상한 취향, 남의 말은 대충 듣는 척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건 다 기억하던 츤데레스러운 방식. 얼굴은 조금 흐려졌는데 습관들은 오히려 선명해졌다. 어쩌면 사람을 붙잡는 건 큰 사건이 아니라 작은 버릇들 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네 기일보다 네가 소주잔을 잡던 이상한 집게손 모양을 더 정확히 기억한다. 그게 조금 서글프지, 한 사람의 전체는 사라지고 자잘한 파편만 오래 남는다는 것이.
한동안 나는 네 생각을 일부러 피했다. 계속 떠올리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런데 억지로 밀어낸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더라.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더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책장을 정리하다 네가 예전에 나한테 빌려 갔던 책을 볼 때, 길모퉁이 분식집을 지나가다가 네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빨간 옛날 떡볶이를 볼 때, 겨울의 첫 냄새라며 입이 터져라 쑤셔 넣던 계란빵의 냄새를 맡을 때. 너를 잊는다고 해서 내가 잘 살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를 지워내려 할수록 내 안의 어떤 부분도 같이 닳아나갔다. 네가 오래 내 삶에 섞여 있었기 때문에, 너를 도려내면 내가 비어버리는 아이러니함.
그래서 지금은 네 생각이 나면 그냥 둔다. 떠난 사람은 내가 놓는다고 끝나지 않는다. 남은 사람 안에서 다른 형태로 남는다. 나는 이제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네가 내 안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나를 망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니까.
가끔 내가 누군가에게 너무 차갑게 굴지 않으려고 멈춰 설 때, 누가 애써 웃으려고 할 때 나도 그냥 모른 척 같이 웃어 주는 것도, 친했던 친구와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리다가도 결국 먼저 연락하게 되는 것도, 네 영향이다. 다 네가 남기고 간 방식들이다. 너는 없어졌지만 네가 내게 만든 몇 가지 습관은 아직 작동한다.
그렇다고 아름답게만 말하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도 조금 원망스럽다. 넌 왜 그렇게 빨리 갔는지, 그리고 왜 하필 너였는지, 왜 내가 너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세상에는 대충 살아도 멀쩡한 얼굴로 오래 버티는 사람도 많은데, 너처럼 함부로 살지 않던 사람은 너무 일찍 끝났다. 그 불균형이 나는 아직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이해하게 될 줄 알았는데, 이해는 오지 않았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채로 견디는 법만 조금 배웠다.
나는 이제 네가 없다는 사실보다, 네가 있었다는 사실 쪽을 더 오래 본다. 그게 덜 아프기 때문은 아니고 오히려 더 아플 때도 있지만 그게 더 정확하니까. 네가 내 삶에 들어왔던 시간은 분명히 있었고 나는 그 시간 덕분에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으니까. 네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무심하고, 더 폐쇄적이고, 더 쉽게 사람을 끊어냈을 것이다. 그러니까 네 죽음이 나를 바꾼 게 아니라, 네가 살아 있었던 시간이 나를 바꿨다. 나는 요즘 그 사실을 오래 생각한다. 잃은 뒤에야 비로소 있었던 시간을 제대로 셈하게 되는 것이 이상하지만, 네 말버릇처럼 인생이 원래 그렇다.
뭐 덤덤한 척 글을 이렇게 써내려 봐도 네 부재가 설명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이제 안다. 그 빈자리는 메워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걸. 누가 대신 들어와 채울 수도 없고, 시간이 흙처럼 덮어 없앨 수도 없다. 그 자리는 그냥 네 자리고 영영 그렇게 남겠지. 대신 나는 그 옆에서 계속 살아간다. 가끔 멈춰 서서 네 쪽을 돌아보고, 또다시 걸어간다. 그게 남은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오늘도 문득 네 생각이 났다. 별 이유는 없었다. 우기라 눅눅한 게 싫어 하루 종일 틀어놓은 에어컨 바람이 너무 차가웠고, 네가 분명히 싫어했을 날씨였고, 한국에 들어갈 계획을 짜다가 네 생각이 났고, 나는 잠깐 웃었다가 곧 잠잠해졌다. 예전 같으면 그 웃음 뒤에 바로 무너졌을 텐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뭐 무너지지 않는다고 해서 덜 그리운 건 아니야, 다만 슬픔이 내 일상을 전부 집어삼키지는 않게 되었을 뿐이지. 네가 없다는 사실은 여전히 정확하고. 조용하고, 단단하고, 변함없으니까.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 것 같다. 어떤 날은 아무렇지 않다가, 어떤 날은 네가 빠져나간 자리를 손끝으로 더듬으면서. 완전히 회복되지도, 완전히 잊지도 못한 채로. 그런데 이제는 이게 꼭 불행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를 오래 그리워할 수 있다는 건 한때 그 사람이 이렇게도 내 삶에 깊이 들어와 있었다는 뜻이니까.
남은 아픔은 네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다. 그리고 나는 그 증거를 아직 버릴 마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