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는 하루를 자주 멈춰 세운다. 하늘은 맑았다가도, 누가 약속이라도 한 듯 갑자기 쏟아지고, 쏟아진 뒤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다시 밝아진다. 물이 빠지지 못한 도로 위로 차들이 지나가며 얇은 파도를 만들고, 사람들은 그 파도와 파도 사이를 읽으면서 걷는다. 저녁 무렵이면 공기가 더 눅눅해져서, 셔츠가 등에 들러붙는 감각이 먼저 계절을 알려준다. 한국에서 내가 좋아하는 계절들의 이름을 떠올리다가 여기는 그런 이름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곳인데도, 오늘은 이상하게 경계라는 단어가 머리에 남아 있었다.
좋아하는 친구가 한국에서 옆 나라로 놀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밤버스를 타고 올라와 옆나라에 갔다 왔다. 아주 지극정성이라며 핀잔을 주는 수도에 사는 친구와도 내가 사는 시골로 복귀하기 전 만나기로 하고 수도에 도착해 빗줄기가 잠깐 멎은 틈을 타 길모퉁이 카페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친구가 우산을 접으며 다가왔다. 우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신발 앞에서 작은 점들을 만들었다. 친구는 젖은 머리를 손으로 털면서도 먼저 하늘을 올려다봤다. 흐린 구름 사이로 남아 있는 밝음을 확인하는 듯했다.
“이상하지.” 친구가 뜬금없이 말했다.
“뭐가?”
“저녁인데 아직 덜 어두워.”
뭔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그 말을 듣고서야 주변을 제대로 봤다. 가게 간판이 켜져 있는데도 간판의 빛이 과하게 튀지 않았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기 전 바닥과 공기 사이에 남아 있는 엷은 밝음. 한 번 놓치면 그냥 지나칠 종류의 밝음이었다.
“이번 휴일이 그날이래.” 친구가 또 말했다.
“무슨 날.”
“네가 맨날 말하는 그 절기 말이야. 춘분이던가? 낮이랑 밤이 반반이라는 날.”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커피 향과 젖은 흙냄새가 섞여 있었다.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완전히 뽀송해지지는 않는 공기였다. 우기에는 실내도 어딘가 늘 젖어 있다. 우리는 창가에 앉았다. 창밖에는 빗물이 고인 도로, 그 위로 느리게 미끄러지는 차들, 그리고 물을 피해 뛰는 사람들의 보폭이 있었다.
“반반이라고?” 내가 말했다.
친구가 컵을 손바닥으로 감싸 쥐고 고개를 저었다. “말만 반반이지. 사실은 낮이 조금 더 길대 몇 분 정도.”
“몇 분이면 뭐 거의 반반 아닌가.”
“그 몇 분이 은근히 커.”
친구는 그렇게 말하고는 창밖을 본다. 먹구름이 두꺼워도 여전히 빛은 남아 있었다. 빛이 남아 있다는 사실 하나로 사람들은 퇴근길에서 덜 지치는 얼굴을 하는 것 같다. 우리가 견디는 건 결국 빛의 양이 아니라 남아 있음 같은 기척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친구에게 물었다.
“낮이 더 긴 이유가 뭔데?” 내가 묻자, 친구는 잠깐 생각하는 척하다가 웃었다.
“문과에게 그런 걸 묻지 마, 뭐 다분히 문과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태양은 점이 아니고 동그랗잖아? 그래서 그 머리만 보여도 사람들은 낮이라고 하고, 꼬리까지 다 들어가면 밤이라고 부르는 거 아닌가?.”
친구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컵 위에 작은 원을 그렸다. 그 원이 커피의 김에 흐릿해졌다. 시작과 끝을 나누는 기준이 그렇게 흐릿하다는 게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밖에서 다시 빗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짧지 않았다.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점점 두꺼워지고, 도로 위의 소음이 한꺼번에 낮아졌다. 우기 특유의 소리, 비가 오면 도시가 조용해진다. 사람들은 잠깐 멈추고, 차들은 더 조심하고, 말들도 줄어든다. 대신 하늘이 모든 소리를 대신 낸다.
“비 오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동시 같은 것에서 봤던 말이 생각나.”
“어떤 말.”
“봄비? 같은 거?"
"근데 여긴 봄비가 아니라 그냥 비잖아.”
“그래도 오늘은 뭔가 봄비 같다 이거지.”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비가 잦아들 틈을 기다리며 우리는 아무 얘기나 하다가, 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내가 소개해 준 별자리 앱을 켜서 하늘을 이리저리 비췄다. 그가 보여준 화면에 별들이 도식처럼 떠 있었고, 가는 선들이 이어져 있었다.
“기준점이 있어야 좌표를 찍잖아? 별도 그래. 누가 임의로 기준을 정해놓고 거기서부터 각도를 재.”
나는 화면을 들여다봤다. 별은 실제보다 더 규칙적으로, 더 단정하게 배열돼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기준점이 춘분 같은 날인가?” 내가 묻자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겠지, 그런 날이 기준이 되는 거지. 출발점 같은 거.”
나는 그 말을 듣고 괜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 출발점이라는 말은 사람을 곧게 만든다. 사실 내 삶은 최근에 곧지 않았다. 할 일은 많고, 마음은 분산되고, 무엇부터 손대야 하는지 자주 놓쳤다. 그런데 출발점이라는 말 하나가, 어지러운 방에 표시테이프를 붙이는 느낌을 줬다. 여기부터 정리해 보자고. 때론 출발점 뒤에서 느끼는 초조함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난 뜬금없이 말한다. “무슬림들은 춘분을 기점으로 새해로 치잖아. 라마단이 끝나는 날이기도 하고”
“새해?”
“응. 달력 첫날. 정부 회계도 그때부터 다시 시작하고 그런다더라.”
친구는 빙긋 웃었다.
1월의 새해가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또 새해라니. 하지만 생각해 보면 새해는 사실 마음이 필요한 순간마다 생겨야 야 하지 않나? 일 년에 한 번 뿐이면 너무 멀고, 다시 시작할 기회가 너무 적잖아.
“무슬림 말고도 다른 종교 쪽에서도 춘분 근처를 되게 중요하게 본대.” 친구가 덧붙였다.
“어떤 날을 정할 때, 이 날을 기준으로 계산한다더라. 춘분 지나고, 보름달 지나고, 그다음에 오는 첫 일요일. 뭐 이런 식.”
친구는 확실한 정보를 공식처럼 말하지 않고 그냥 그런 방식이 이어진다 정도로만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오히려 나에겐 꽤 충분했다. 사람들은 중요한 날을 정할 때, 하늘을 한 번 보고 싶어 한다. 달을 한 번 확인하고 싶어 한다 뭐 그런 식, 사람은 완전히 계산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니까.
카페 전기가 잠깐 깜빡였다. 우기에는 그런 일이 잦다. 실내가 순간 어두워졌다가 다시 켜졌고, 그 짧은 어둠에 카페 안 사람들이 동시에 숨을 멈췄다. 별일 아니란 걸 알면서도, 어둠은 늘 사람을 긴장시킨다. 친구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낮이 몇 분 더 길다는 얘기 요즘 같은 날엔 또 괜히 벅차.”
“왜.”
“밖은 이렇게 흐리고 비 오는데도 어쨌든 낮이 더 길고, 그건 낮이 밤을 이겼다는 거잖아.”
나는 창밖을 봤다. 빗물에 비친 가로등이 흔들렸다. 밝음과 어둠은 여기서도 서로를 밀어내지 못하고 섞여 있었다.
비가 조금 잦아들자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우산을 펼쳐도 의미가 없는 종류의 습기가 얼굴에 붙었다. 도로는 정체돼 있었고, 수도의 저녁은 늘 막히고, 비까지 오면 더하다. 우리는 택시를 잡으려고 한참을 기다리다가 결국 툭툭을 잡아탔다. 창문이 없어서 비가 옆으로 들이쳤고, 친구는 웃으면서 손바닥으로 바람을 막는 시늉을 했다. 툭툭이 신호에 걸려 멈췄을 때, 길가에 볶은 땅콩을 파는 노점이 보였다. 나는 습관처럼 그쪽을 봤고, 친구가 내 시선을 따라가다가 불쑥 말했다.
“그거 생각난다.”
“뭐.”
“볶은 콩 먹으면 쥐랑 새가 곡식 안 먹는다는 얘기.”
“그런 게 있나? 난 잘 몰라 한국 전래동화 같은 거.”
친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게 있어. 뭐 요즘 같은 날엔 그런 믿음도 되게 어울려. 뭐라도 해서 한 해가 잘 굴러가길 바라는 마음.”
뭔가 볶은 땅콩 냄새가 갑자기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떤 믿음은 대개 귀여울 때가 있지, 이유가 명확하지 않아도 바람이 또렷하니까.
우리는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접시에 김이 올라오고, 창문 밖에서는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친구는 젓가락을 들고 있다가 불쑥 물었다. “너는 오늘 뭐가 달라?”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아니 뭔가 다르다고 말하기엔 내 하루가 너무 평소 같았고 다르지 않다고 말하기엔 내 마음이 분명히 어딘가 조금 이동해 있는 이상한 기분이었달까. 그냥 퉁명스럽게 나는 딱히라고 짧게 대답했다.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한참 뒤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늘이 좋아. 아마 오늘도 낮과 밤이 반반일까? 아마 낮이 조금 더 길었겠지 오늘은? 아무튼 반반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완벽하지 않잖아. 근데도 사람들은 균형이라고 부르고, 그 이름을 믿고, 그걸 기념하려고 하고.”
나는 젓가락 끝으로 밥알을 흩뜨리며 말했다. “완벽하지 않은 균형 같은 걸 얘기하고 싶은 건가.”
친구가 웃었다. “응. 그리고 무엇보다 밝은 쪽이 몇 분 이긴다는 거. 그게 난 되게 인간적이라고 생각해.”
“뭐가 인간적이야.”
“사람도 맨날 균형 잡겠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늘 한쪽으로 조금씩 기울잖아. 근데 그 기울어진 조금 덕분에 하루를 버티기도 하고.”
밝은 쪽이 이긴다라, 밝은 건 어느 쪽이고 어두운 건 어느 쪽인데 뭐 그런 말을 하진 않았다. 그리고 사실 그 말이 내 속을 조용히 건드렸다. 내가 미뤄둔 연락들, 미뤄둔 사과들, 미뤄둔 결심 같은 것들은 사실 다 그 몇 분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지금 안 해도 된다는 몇 분. 나중에 해도 된다는 몇 분. 그런데 오늘은 친구가 말한 것처럼 내 편인 몇 분이 있었다. 밝은 쪽이 이긴다는 이야기 하나가, 내 마음의 무게를 아주 조금 덜어줬다.
식당을 나왔을 때,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하늘이 완전히 검지 않았다. 구름이 두껍게 깔려 있는데도, 어딘가에는 아직 남아 있는 빛이 있었다. 우리는 잠깐 멈춰 서서 그 어중간한 하늘을 봤다. 친구가 말했다.
“이 시간대가 딱 좋다.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
“어둠이 좀 덜 무섭지.”
“응. 그리고 뭔가 내일이 될 것 같아.”
나는 그 말이 꽤 마음에 들었다. 내일이 될 것 같다는 말은 그냥 시간이 흐른다는 뜻이 아니라 괜찮아질 여지가 있다는 뜻처럼 들려서.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 같아서. 우기는 사람을 자주 지치게 하지만, 동시에 씻어내기도 한다. 길도, 먼지도, 생각도.
친구와 헤어지기 전에 친구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다음엔 언제 수도에 올라와?”
“4월에 친구를 만나로 또 옆나라에 가기로 했으니 아마 4월 초? 그땐 아마 못 만날 거야"
"만나자고도 안 했어. 나도 그땐 여행 가거든"
"그다음은 언젤까, 절기마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으니 글감이 필요한 다음 절기? 다음 절기는 4월의 청명과 곡우네, 청명엔 옆나라에 가니 아마도 곡우쯤 우리는 다시 만나지 않을까?”
내가 장난처럼 말하자 친구가 웃었다.
“그놈의 절기 타령, 청명은 뭐고 곡우는 또 언젠데? 누가 누구보고 감성충이래 맨날.”
“뭐 사실 모르지, 계획이란 게 의미가 있나? 아무튼 연락할게”
친구는 웃으며 돌아섰다. 젖은 길 위로 발자국이 남았다가, 비에 금방 지워졌다. 사라지는 발자국을 보며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한참을 달려 시내 외곽의 버스 터미널로 왔다. 모여있는 사람을 헤치고 버스에 올라 간접 조명을 켰다. 조명이 켜지면서 버스 창 밖과 바닥의 색이 확 살아났다. 창문 밖은 다시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오늘의 낮은 몇 분 더 길었고 그 몇 분은 생각보다 나에게 컸다. 하늘은 흐리고 비는 잦았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속의 밝음이 아주 조금 어둠을 이겼다는 사실. 그 사소한 승리가 내 마음을 살짝 기울게 한다.
완벽한 반반이 아니어도 괜찮지, 가운데를 스치기만 해도 충분하니까. 그런 충분함이 내일도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