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내소사, 개암사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순례' 편을 읽다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많이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열흘간 산사 20곳을 방문하였다. '산사를 걷다'는 열흘간 쓴 일기 형태의 글이다.
즐겨보는 TV 프로 중에 ‘미운우리새끼'란 프로가 있는데 한참 전 방송에서 개그맨 박수홍이 50번째 생일을 맞으며 이런 얘기를 했다. "과거가 아무리 좋았어도 지금이 좋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우리 어머니는 오십으로 돌아가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오늘이 늘 내 생의 최고의 날이다." 오늘이 내 생의 최고 날이라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방송에서 박수홍은 자신이 늘 좋아하는 클럽을 갔다. 나는 나대로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산사를 걷는다.
오늘 찾아간 곳은 변산반도 국립공원이 있는 부안군 내소사. 초입길은 길게 뻗은 전나무 길이다. 미세먼지가 심한 요즘 그나마 이런 숲길을 걸으면 숨이 좀 트이는 듯하다. 이 숲길은 그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수십 년 전 어느 때에 조성된 것이라 한다. 그 옛날 누군가는 후대에 이처럼 아름다운 숲길을 남겨주기 위한 일을 한 것이다.
내소사에서 좋았던 것은 돌로 쌓은 축대와 돌계단이었다. 이 돌계단을 오르면 적당한 공간과 나무가 있고, 또 한 단의 돌 축대와 계단을 오르면 불당이 있는 공간에 이른다. 이 공간에서 좌우로 또 작은 돌 축대로 만든 단이 있고, 돌계단이 있고 불당이 놓여 있다. 사찰이 아니라면 이처럼 멋진 설계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내소사는 사찰 전체가 수천 개의 돌로 이루어진 축대로 잘 어우러져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사찰도 그 역사를 들여다보면 몇 번의 전소와 재건 또 임진왜란 같은 외부의 침략을 겪으면서 또는 근래에 6.25를 지나면서 대부분 소실되거나 재건을 반복하였다고 쓰여 있다. 지금도 많은 사찰들이 새 건물을 증축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오래된 사찰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서 아름답고 소중한 것도 있겠으나, 지금 지어지고 만들어지는 공간 또한 50년, 100년 뒤에는 후대의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대부분 유명한 사찰 진입로에는 식당이나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는데, 내소사의 진입로에 있는 가게들은 이제까지 보아 왔던 곳과는 다른 활기가 있었다. 유명한 시골 장터 같은 분위기였는데, 부침개를 즉석에서 부쳐 파는 아가씨, 송편과 개떡을 파는 아주머니, 엿의 시식을 권했던 아저씨, 기념품 가게 홍보를 하는 아저씨도 밝은 표정에 자신감과 여유가 느껴져서 좋았다. 여행을 다니면서 시골 장터에 꼭 들려 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아쉬움을 이곳에서 달랠 수 있었다.
내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개암사라는 곳이 있다. 크지 않은 절이나, 저수지를 지나치며 오르는 길에는 벚나무 길이 있고, 사찰 진입로에는 적당히 괜찮은 산책로 숲길이 있다. 개암사도 내소사와 같이 돌로 쌓은 축대가 인상적이었고, 절 주변에 있는 차 밭도 보기에 좋았다.
내소사를 가면 모시송편, 흑임자 송편, 개떡을 먹어 보길 추천한다. 이 송편을 사다가 부모님께 드렸더니, "이런 송편을 추석 제사상에 올려야 하는데"라고 말씀하신다. 전라도 산사 여행까지 마치고 부모님이 계신 대전에 들려서 동생네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첫 질문은 예상했던 대로 “어디가 가장 좋았어”였고, 나의 속 마음 대답은 ‘다시 가고 싶은 곳이 몇 곳 있었으나 아직도 많은 곳이 남아 있어요. 더 다니겠다는 말이에요. 그래도 부모님과 함께 갔었던 선암사가 제일 좋았어요’ 였으나, 실제 대답은 어디는 뭐가 좋고, 어디는 뭐가 좋고 하는 아는 체, 잘난 체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지금보다 더 건강해지시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보고 좋았던 것을 함께 보고 걸으며 "난 이게 제일 좋아요”라고 어리광도 못 부릴 것이고, 어린 자식이 “계절이 또 이렇게 바뀌고, 세월이 많이 지나갔어요”라는 한탄도 못할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부모님이 내 곁에 계신다는 것에 행복해하면서, 남은 소중한 시간에 함께 할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서 난 아직도 많이 걸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