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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을 걷다 Mar 13. 2019

제주를 걷다 - 2

제주 올레길 2코스

2018년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16개 코스 220km 정도를 걸었는데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내가 걷고 싶은 올레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에 더 행복함을 느낀다. 어느 때고 난 이 길을 걷기 위해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여행에서 가장 즐거움 중의 하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과 사는 얘기들을 하다 보면 어느새인가 속 얘기도 슬쩍 털어놓게 되고 그 사람의 지나온 인생이 궁금해지고 이것저것 묻게 된다.


둘째 날 묵었던 숙소는 성산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펜션이었고, 올레길이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펜션의 사장님은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자녀 교육을 위해 제주를 선택했고, 그전부터 제주도에서의 삶을 계획하였다고 한다.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 아내와 떨어져 지내지만 몇 년간의 제주 생활에 잘 적응하였고 만족하고 있다고 얘기하신다.


펜션이 아니라 제주도 성산포 근처에 이런 집을 짓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던 곳이다.  성산포 인근 오조리 B&B 펜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사장님과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듣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난 왜 조금 더 일찍 자녀 교육이나,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서 계획을 세우지 못했을까 생각이 들며 펜션 사장님이 부럽기도 했지만 난 언제든 지금이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늘 생각한다.


2코스 : 제주도 동쪽 광치기 해변 - 은평 포구, 14.7km (4-5시간 소요)


살짝 과음을 했지만, 둘째 날 펜션의 든든한 아침식사 후 길을 나선다. 올레길을 걷는 대부분 사람들은 배낭이 가볍지만, 난 다음 여행을 위한 연습을 위해 1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다녔다. 결국 여행을 끝내고 나니 자주 쓰지도 않을 노트북과 읽지도 않을 책들을 가지고 다녔던 것이다.


올레길의 각 코스에는 안내판이 있다. 사진을 찍어 두면 얼마나 왔는지, 그 지역이 어디인지 확인하는데 요긴하다.


2코스 대수산봉에서 보는 우도 모습.


제주 올레길이 해변 도로만을 따라 걷는 길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대부분 올레길은 오름 하나를 오르거나 봉우리를 오르는 코스다. 오름을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경사가 높은 곳이 많다. 2코스에 있던 대수산봉도 그러했다.


그리운 성산포는 2코스를 지나면서 마지막이다.


이때까지는 길을 걷는 즐거움과 행복함을 덜 느꼈던 것 같다. 대수산봉에 올라가는 숲길이 지금도 아른거리는데 찍어둔 사진이 없다. 다시 그 길을 다른 사람과 함께 걷는다면 참 좋은 숲길이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대수산봉에 오르는 숲길에 커피박물관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곳에 들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같다.


봉수란 높은 봉우리에서 긴급한 상황에서 교신을 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수산봉수와 성산봉수와 서로 교신을 하였다고 한다.


2코스 14.7km를 걷고 나면 은평 포구란 곳에 도착한다. 비수기라서 포구의 식당은 대부분 영업을 하지 않았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미리 준비를 하지 않으면 점심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많다. 포구에서 식당을 찾아 헤매다가 포기하고 3코스 중간에 있는 숙소를 향해 걷던 중에 반가운 식당을 발견했다.


전복이 들어 있는 해물라면. 배가 고파서가 아니더라도 맛있었다. 작은 식당이었는데 기회가 되면 다시 찾아가 인사를 전하고 싶다.


늦은 점심을 해결하면서 어머니와 안부 전화 통화를 하는데 아버지의 조직검사 결과가 암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 글을 쓰는 작년 이맘때의 일이다. 난 급히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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