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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을 걷다 Mar 20. 2019

제주를 걷다 - 9

제주 올레길 11코스

2018년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16개 코스 220km 정도를 걸었는데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내가 걷고 싶은 올레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에 더 행복함을 느낀다. 어느 때고 난 이 길을 걷기 위해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의미의 라틴어다.  과거 로마시대에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들을 시켜 행진 행렬 뒤에서 이를 외치게 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 '오늘은 이겼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라는 다음 '명령'이었던 것이다.


11코스는 '메멘토 모리' 교훈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길이다. 11코스의 모슬봉은 공동묘지가 워낙 많은 곳이고, 모슬봉을 내려오면 정난주 마리아 성지도 있다. 신평 곶자왈을 걸을 때면 순간순간 움찔할 때가 있어서 흡사 죽어서 가는 저승길이 있다면 이런 길도 지나지 않을까 했었다.


11코스 : 모슬포 하모체육공원-무릉 자연생태문화체험골, 17.8km (5-6시간 소요)


11코스처럼 시작하는 장소가 큰 동네면 마트에 들려 물, 사과, 간식 등을 준비한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반 정도는 제때에 점심 식사할 만한 곳을 찾기 어렵다. 특히 사람들이 없는 비수기에는 자리하고 있는 식당도 문이 닫혀 있다.


모슬포 하모 체육공원에서 시작하여 걷다 보면, 곧 모슬봉으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모슬봉에서는 제주 남서부 일대의 오름과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처음 시작은 걷기 좋은 그런 길이었다.


걷다 보면 갈대밭과 어울리는 바다가 보인다.


모슬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는 여러 오름들이 보이고 바다도 보인다.


하지만, 수백 이상의 묘지들을 함께 본다. 혼자 이 길을 걷는다면 자꾸 뒤돌아 보게 될 듯하다. 묘에서 누가 날 부르나 싶어서.


내가 좋아하는 만화 중의 하나가 윤인완, 양경일 작가의 '아일랜드'다. 이 만화가 처음 연재되기 시작한 것이 1997년인데 지금 다시 보아도 훌륭하다. 이 만화는 제주도가 배경으로 나오는데, 제주도에는 많은 정염귀(인간을 성적으로 괴롭히고 잔인하게 죽이는 귀신)가 있다는 대목이 있다. (만화 '아일랜드'는 최근 네이버 웹툰에서 재연재되고 있다.)


모슬봉의 공동묘지를 걸으면서 만화 '아일랜드'가 생각났고, 제주도에는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이 많아서 억울한 원혼들이 아직까지 떠돌고 있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제주도를 다니다 보면 유독 많이 눈에 띄는 묘지. 밭이 있으면 묘지가 함께 있는 곳을 자주 볼 수 있는 곳이 제주이다.


모슬봉에서 내려오면 다시 밭길을 걸어간다.


정난주 마리아의 묘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 역광에, 전선줄까지. 그래도 이 사진이 오래도록 마음에 들었다.


정난주의 생이 기록되어 있다.


정난주는 다산 정약용의 조카딸이자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순교한 황사영의 아내로서 대정읍에 유배되어 살다가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1994년 제주도의 신자들이 그녀의 묘를 대정 성지로 조성했다고 설명되어 있다. '황서영 백서사건'은 천주교 신자였던 황서영이 북경 주교에게 서양 선교사의 파견을 요청하는 서한을 발송한 사건으로 이후 황서영은 순교하고 가족들은 유배형을 당하였다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묘의 전경.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잠시 농가의 길이 이어진다.


드디더 신평-무릉 곶자왈 시작을 알리는 간세 표지판.


표지판 설명.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진 곳을 제주말로 곶자왈이라고 한다.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독특한 숲이다. 제주 올레에 의해 처음으로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처음 시작은 '조금 우거졌네. 덩굴도 있네'였다.


새순이 올라가고 있다. 친구가 뭐라고 알려 주었는데 잊었다.


엄청난 크기의 가시를 가진  덩굴


걷다 보면 햇빛이 많이 안 들어오는 한낮에도 어둑한 길을 많이 걷게 된다. 길 바로 옆이 빼곡한 덩굴 숲이라 뭐라도 갑자기 나올 것만 같다. 샛길처럼 보이는 것이 보이면, 그 길 어딘가에 허름한 집이 있고 누군가 살고 있을 것 같다. 곶자왈에는 농사를 짓는 몇 가구가 살고 있다고 안내판에서 본 기억도 난다.


곶자왈 길은 나무와 풀로 빼곡한 숲길이다. 햇빛이 없는 곳을 걷다가 잠시 밝은 곳에 나오면 반가워진다.


여기저기 봄 꽃이 피어 있었다.


곶자왈을 걷다 보면 몇 곳에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새 왓'이라는 지명을 설명하고 있다.


나무에 대한 설명. 꾸지뽕나무.


사진보다 더 음침한 숲길을 계속 걸어간다.


신평-무릉 곶자왈은 훌륭한 걷기 코스이다. 이런 곳을 올레길로 발굴하였다는 것에 관련자분들과 이를 허락한 마을 주민들에게도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이 숲길이 많은 사람들에게 더 사랑받기 위해서는 혼자 걸으면 위험할 수 있는 우려를 없애야 한다. 길을 잃을 우려가 있는 곳에는 또 다른 형태로 바른 길을 안내해야 하고, 입구와 출구 중간 몇 곳에는 필요하다면 CCTV를 두어 오고 가는 사람들이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이 숲길이 음산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갑자가 앞이나 옆에서 누가 나와도 모를 정도로 길이 좁고, 꼬불꼬불 돌아가고, 길과 길 옆의 나무, 덩굴을 바로 구분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길을 혼자 걷는다면 앞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반가운 것이 아니라 놀라거나 경계하게 되는 이유이다. 이왕 올레길로 개방을 하였으니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으로 무섭고, 음산한 길이라는 오명을 하루빨리 벗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11코스를 다 걸으면 무릉외갓집이란 곳에 도착한다. 당시에는 근처 식당을 이용해보진 못했지만 올레길을 걷다가 이런 마을이나 식당을 만나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제주시나 서귀포시에는 모르겠는데 제주의 대부분 동네에는 카카오택시가 없고 모두 콜택시다. 제주도의 콜택시는 대부분 친절하고 요금도 미리 정해져 있어서 바가지는 없다.


11코스 종점에는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그냥 택시를 탔었다.


도착 도장을 두 번 찍었다. 한 번에 잘 찍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저녁은 갈치구이. 친구와 술안주로 곶자왈 얘기를 했었다. 귀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곳에서 우리가 만났던 것이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귀신이었는지.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 때 가장 숙연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죽는 것은 단 한 번이지만, 나에게 주어져 있는 시간은 쓰기에 따라 얼마든지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나누어 사용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고민은 사실은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인 것이다.


최근 '마음을 지켜낸다는 것, 다산의 마지막 공부 - 조윤제 지음, 청림출판'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저자의 서문에 있는 글을 다시 한번 읽어 보며 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불필요한 것들에 연연하지 않고  보다 넓은 마음으로 사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 마음을 붙잡는 한 가지 통찰이 있었다. 공자가 마음을 두고 말했던 '붙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는다'이다. 마음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나, 우리의 것이다. 그 마음을 붙잡는 것도 나 자신이며 잃어버리는 것도 바로 나인 것이다. 잃어버리기는 쉽지만 설사 잃었다고 해도 다시 찾아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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