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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을 걷다 Mar 22. 2019

제주를 걷다 - 10

제주 올레길 12코스

2018년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16개 코스 220km 정도를 걸었는데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내가 걷고 싶은 올레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에 더 행복함을 느낀다. 어느 때고 난 이 길을 걷기 위해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10코스와 11코스를 함께 걸었던 친구가 아침 일찍 서울로 돌아갔다. 혼자 걷고 혼자 식사하는 것이 조금 익숙해질 만하면 어느 날 친구가 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함께 걷다가, 어느 날 아침에는 또 혼자가 되어있다.


만나고 헤어질 때 아무렇지 않게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헤어지는 그런 사람이 있고, 다음에 또 못 보는 것도 아니고, 금방 또 볼 텐데도 뭔가 아련하거나 아쉬운 마음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친구가 가고 혼자 길을 걷다 보면 잠시 동안은, 더 많은 얘기를 했었으면, 더 맛있는 것을 먹으며 더 즐거운 저녁식사 시간을 가졌었으면, 하다못해 왜 둘이 같이 사진 한 장 안 찍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하지만 아쉬움도 잠깐, 어느새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올레길 표지를 열심히 찾고, 지금 있는 곳이 어느 지역인지, 이 지역이 어떤 곳인지 찾아보는데 여념이 없게 된다. 또 점심은 어디에서 해결할지, 조금 앉았다가 갈만 곳은 없는지, 어디서 불쑥 동네 개라도 나타나진 않을지 온통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게 된다.


12코스 : 무릉외갓집 - 용수포구, 17.1km (5 - 6시간 소요)


12코스의 시작은 해안 지역에서는 많이 떨어져 있는 동네다. 대부분 숙소는 해안 지역에 잡기 때문에 이전 코스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다음 날 다시 시작 코스로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전날 종착점인 무릉외갓집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하여 다시 걷기를 시작하였다.


12코스는 서귀포시에서 제주시로 넘어간다.

제주도 동쪽에서 시작한 올레길 걷기가 어느덧 제주도 서쪽을 걷고 있다.


올레길의 밭길은 늘 편한 마음으로 걷는다. 이곳 신도리의 밭은 지평선이 보이는 평야처럼 보인다. 끝없이 밭이 펼쳐져 있다.


넓은 밭이지만 농사를 짓는 농부를 보기는 쉽지 않다. 간혹 저 멀리 어르신들 몇 분이 보일 뿐이다.


생각보다는 긴 거리의 밭길을 걷는다. 밭길이 길어지면 오름이 생각나고, 오름 길이 힘들 때면 해안도로가 생각난다.


제주에서 관광지만 다니면 이런 경관을 볼 수 없다. 다시 또 만나고 걷게 되길 바라는 제주 올레길이다.


사진의 왼쪽이 신도 생태연못이라는 곳인데 아쉽게도 물은 없다. 연못을 찾다가 헤매고 같은 길을 두 번 걸었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온통 신경은 나무에 걸린 올레길 리본이나 벽에 있는 화살표 표시, 안내판  찾기에 집중된다. 꼭 그 길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다른 길로 갈 수 있고, 목적지만 찾아가면 되는데도 어느 한순간도 길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애를 쓴다. 그러다가 외길처럼 보이거나 당연히 이 길이겠지 하고 방심하거나 다른 생각이라도 조금 하다 보면 어김없이 올레길 표식을 잃어버리곤 한다.


대정읍 산경 도예. 옛 신도초등학교를 도자기 체험공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안에 들어가 보진 못했다.


다시 보이는 바다. 신도 포구를 향해 걷는다.


신도포구에 있는 기념비. 


신도포구는 잘 조성된 해안 공원 느낌이다. 걷고 싶지만 바위가 많아서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그런 제주 해안이 많은데 이 곳은 평평하고 넓은 돌 해변이다.


이런 해안을 걸을 수 있다. 올레길이 멋지고 아름다운 이유이다.


다시 봉우리를 하나 더 올라가는데 멋진 경관을 보여주는 수월봉이다.


누구나 휴대폰 카메라만 들이대면 이런 사진을 찍는 곳이  제주이다.


바다가 하늘이고, 하늘이 바다다. 바다는 하늘을 보고, 하늘은 바다를 품는다.


수월봉 정상.


수월봉은 2km가량의 해안 절벽을 가지고 있는데, 이 절벽을 '엉알'이라고 부른다. 수월봉 정상에서는 차귀도, 누운섬, 당산봉이 보인다.


수월봉의 전설. 모든 전설에는 억지가 있긴 하지만 그 유래는 사실이라고 믿는다.


차귀도 전경. 차귀도 주변은 배낚시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수월봉 엉알길. 아름다운 산책길이다.


이런 길을 걷는다. 12코스 올레길에는 이런 멋진 길이 있다.


수월봉의 전설이 있는 곳.


늦은 점심. 동행이 없으니 먹는 것도 시원찮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처음에는 서로 안부 묻기에 바쁘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일상 얘기를 하고 뉴스에서 본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한다. 뉴스 소재가 떨어질 즈음 멋진 경관이라도 펼쳐지면 한동안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얘기한다. 하늘과 바다를 보고, 섬에 대해서 얘기하고, 나무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섬과, 나무와, 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으면 늘 하던 옛날 얘기를 하거나 직장 생활 얘기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다시 서로를 걱정하거나 위로하거나 서로를 위해서 잔소리도 한다. 서로를 위하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아무 말도 없이 잠시 걷기도 한다. 그러다가 식사시간이 될 즈음에는 머리를 맞대고 무엇을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함께 한다.


그렇게 길동무가 되어 함께 걷는 것이 친구다. 굳이 여행이 아니더라도 오랜 친구와의 만남은 그냥 내 일상의 일부처럼 느껴지고, 만나고 헤어지긴 하지만 늘 함께 하는 친구라고 생각한다.


올레길을 걷다가 맛있는 오징어, 한치를 만나게 되면 그야말로 세상이 안 부럽다. 


당산봉에서 보는 차귀도.


섬, 바다, 나무, 길. 내가 여기에 있는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바다와 하늘이 하나가 되었다.


제주도 바다는 많은 색을 가지고 있다. 하늘은 지금 이 바다를 질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멈추고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던 길.


'생이기정' 설명 안내판. 새가 날아다니는 절벽길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 길에는 여러 사람들을 마주쳤다. 아름답고 알려진 길에는 계절을 떠나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걷다 보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제주의 해안 도로와 섬 전경들.


이 길을 걸으면 곧 용수포구가 나온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일상이고 인생인데, 가끔은 만나고 헤어질 때 무엇인가 아쉽고 아련한 마음이 든다.


한 달에 한번 외래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아버지를 기차역에서 배웅하면서도 무엇인가 아쉬운 마음이 들고, 한 두 달에 한 번씩 보는 딸을 보내면서도 그런 마음이 든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친구나 지인을 만나고 집에 돌아올 때도 가끔은 짧은 만남의 시간이 아쉽다.


여행에서는 하루 동안 보낸 시간이 아쉬워지기도 하고, 여행을 함께 하던 친구나 잘 알지도 못하는 길동무와 짧은 만남에서 헤어질 때도 뭔가 더 해주지 못해서, 정겹게 말 한마디 더 해주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혼자 걷다 보면 한 번 정도는 그동안 내가 잊고 지냈던 사람들과 현재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곤 한다. 살면서 수없이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는데 그동안 나는 그 속에서 무엇을 잃어버리고, 잊고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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