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쌍계사, 구례 연곡사, 천은사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순례' 편을 읽다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많이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열흘간 산사 20곳을 방문하였다. '산사를 걷다'는 열흘간 쓴 일기 형태의 글이다.
출가해서 스님이 되는 나이 제한이 50세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출가는 못하고 가출을 한지 오늘로서 일주일이다.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유명하다는 사찰을 열심히 다니는 중이고 어제 경상도에서 드디어 전라도로 넘어왔다. 숙소는 구례 화엄사가 있는 곳의 ‘지리산 아침’이라는 곳이다. ‘아침’의 한자가 ‘娥寢’ 아름다울 아에, 잘 침. '지리산의 아름다운 잠자리'란 멋진 이름을 가진 곳이다.
가족이 운영하는 호텔인데 알고 보니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에 사셨던 적이 있는 분들이라고 한다. 세상 참 좁고, 어디서든 착하게 살아야 한다. 이 호텔은 따님이 지리산 구례를 좋아해서 내려오셨고, 따님은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후 이 곳 화엄사에서 매년 열리는 화엄음악제의 디렉터로도 일하고 계신다고 한다. 얼마 전 노영심씨가 함께 하는 공연도 이곳 호텔에서 있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잠자리’에서 아주 편히 자고(특급 호텔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매트리스라고 생각하는데, 이 호텔 방은 작지만 매트리스는 편안하고, 방은 청결하고, 작은 소품, 물품에도 신경을 많이 쓴 것이 느껴진다), 화로가 있는 북 카페 같은 편안한 공간에서 맛있는 아침을 먹고 찾아간 곳은 지리산 구례 쌍계사, 연곡사.
쌍계사는 예전에 저녁 무렵 들러서 스님들이 돌아가면서 북치는 것을 감명 깊게 봤었던 기억이 있다. 평일이라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이 한적했고, 나 혼자 공간을 독차지한 것처럼 마음껏 다니고, 사진 찍고, 잠시 앉아서 무념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영주, 방장, 봉래를 신선이 사는 산이라고 해서 삼신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봉래산이 지리산이다.
사찰에 흐르고 있는 계곡 물소리에서 봄이 오고 있음을 느꼈다. 화려한 쌍계사의 구층 석탑을 뒤로하고 향한 곳은 석탑으로 유명한 연곡사.
연곡사는 세 차례나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일제 시대 의병 활동 때, 6.25 당시 피아골 전투 때이다. 지금은 비록 넓은 터에 빈 공간이 많아 썰렁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이곳의 앞으로 새로운 건축물,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라 생각한다.
사찰에 있는 석탑은 대부분 승탑이라고 하는 스님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탑이다. 그동안 유명한 대부분의 사찰이 몇 번을 재건하고 복원하였지만 돌로 만든 석탑은 그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건축 구조물로써의 가치는 내가 자세히 알 지는 못하지만, 오래된 석탑에는 초연함이 있고, 세월의 흔적과 훼손이 있어도 그것조차 아름답게 느껴진다.
연곡사에는 몇 개의 유명한(국보, 보물) 석탑이 있다. 그중에 거북이 형상의 석비 받침돌이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거북이 모양인데, 얼굴 형상은 용이고, 앞에서 자세히 보면 인상 험한 남자의 얼굴이기도 하다. 옆에서 보면 불독처럼도 보인다. 이 용 같은 거북이 콧구멍이 참 예술이다 싶었는데 사람들이 거기에 동전을 올려놓은 것이다. 싹 치우고 난 내 사진을 찍었다. 금화도 아닌 오백 원도 아닌 백 원, 십 원짜리 동전이라니(오백 원은 된다는 말은 아니다), 국보이고 보물인데 말이다.
봄, 가을이 아닌 관광 비수기에 사찰을 다니면 오늘처럼 불교 신도나 관광객이 드문데 궁금한 것이 그 시간 스님들은 왜 안 보일까 하는 것이다. 스님들의 공간은 따로 있고, 정해진 시간에만 불당에서 예불을 드리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전혀 뵐 수가 없으니 그냥 궁금했다. 얼마 전 부석사에 가면서 풍기온천이란 곳에서 숙박하며 오후에 온천을 갔는데 스님 몇 분이 계신 것을 봤다. ‘아니 이럴 수가’ 뭔가 몰라도 될 것을 본 듯한 느낌. 불교 신자이신 어머니께는 이 사실은 말씀드리지 못했다.
계획에는 없었으나 성삼재로 가는 길목에서 표를 끊는 바람에 들리게 된 천은사.
오늘 목표로 한 산사 순례를 마치고 지리산 노고단으로 가는 성삼재로 향했다. 구불구불 한참을 달려 도착한 노고단 산행길이 있는 성삼재 휴게소. 1,000미터 이상 고도의 도로는 아직도 얼음이 보이고 통제가 되는 길이다.
왕복 서너 시간이라는 트레킹은 너무 쉽게(?) 포기하고, 어제는 멧돼지 두 마리, 오늘은 지리산 반달곰 두 마리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하고 하루 일정을 일찍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