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화엄사, 남해 보리암, 순천 선암사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순례' 편을 읽다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많이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열흘간 산사 20곳을 방문하였다. '산사를 걷다'는 열흘간 쓴 일기 형태의 글이다.
지난 주말 본 드라마(로맨스는 별책부록)에 이런 대사가 있었다. 날 언제부터 좋아했냐는 이나영의 질문에 이종석은 이렇게 답했다. “누나는 계절이 언제 바뀌는지 정확히 알아?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나도 몰라” 계절이 언제 바뀌는지 잘 모르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비가 오는 지리산의 아침에서 봄이 왔음을 나도 모르게 알아차렸다.
오늘은 아침 일찍 출발해서 구례 화엄사, 남해 보리암, 순천의 선암사까지 좀 무리를 해서 다녔다. 지난주 수요일 출발해서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청도 운문사, 양산 통도사, 창녕 관룡사, 합천 해인사, 구례 쌍계사, 연곡사, 천은사에 오늘 세 곳까지 짧은 기간 참 많이 다녔다. 언제 또 이렇게 다닐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전에 캐나다와 남미 몇 곳을 다닌 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어본 질문이 ‘어디가 가장 좋았어?’라는 질문이었는데 내 대답은 “처음 가보니 다 좋죠. 질문을 바꿔서 어딜 다시 가보고 싶은지 물으면 몇 군데 있어요.”라고 답했다. 이번에 다닌 산사들도 마찬가지다. 처음 가보니 어딘들 좋지 않을까? 유명하다는 곳만 골라 다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오고 싶은 곳이 몇 곳 생겼다.
사찰이 가진 문화유산이나 자연경관만으로 평가를 해서는 안될 것이다. 각 사찰마다 가지고 있는 역사와 특징 그리고 오랜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크고 작은 흔적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잘 보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분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사계절이 모두 궁금한 그런 산사가 있다.
화엄사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새로 지었다는 일주문이 있는데, 차로 지나칠 수밖에 없어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 주차를 하고 올라가면 본래 일주문이었던 '불이문'이 보인다. '불이문'은 생과 사가 둘이 아니고 번뇌와 깨달음이 다르지 않다는 뜻이라고 한다.
화엄사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본당 뒤에 있는 구층암으로 가는 대나무 숲길과 내려오는 길에 있었던 작은 돌담길, 그리고 구층암의 모과나무 기둥이었다. 계곡이 함께 있는 사찰은 마음을 정화시키는 듯하고 계곡의 물소리는 계절의 전령사이다.
남해도의 유명한 금산 보리암. 한국의 해수관음 성지로 꼽는 여수 향일암,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함께 하는 가장 유명하 곳이라고 한다. 그동안 얘기만 많이 듣고 처음이라 기대가 컸었다. 높은 산에 그 건물을 세운 것이 놀랍고, 사찰까지 도로를 만든 것이 놀랍고, 비수기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은 것이 놀라웠다. 5km 남짓 올라가는 산 도로는 운전을 집중하게 하고, 운전 실력을 테스트하는 재미(?)도 준다. 여수 향일암은 사찰 그 자체도 좋았었는데 보리암은 조금? 사실은 많이 아쉬웠다. 그래도 사찰에서 바라보는 남해 바다와 자연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은 두 바위, 대장봉과 형리암은 깊은 인상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