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화엄사, 남해 보리암, 순천 선암사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순례' 편을 읽다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많이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열흘간 산사 20곳을 방문하였다. '산사를 걷다'는 열흘간 쓴 일기 형태의 글이다.
순천의 선암사는 송광사와 함께 너무도 유명한 곳이다. 송광사는 혼자서 한번, 부모님 모시고 한번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부모님과 함께 갔던 곳이 선암사였다. 그동안 트레킹으로만 사찰을 다녔던 지라 사찰 자체는 기억에 없었던 탓이다. 다른 사찰들은 내 취향(?)에 맞는 것들을 찾는데 노력했다면, 선암사는 진입로 숲길, 입구에 있었던 나무 장승, 보물로 지정된 승선교, 입구에 있었던 삼인당이라는 연못 등 다니는 곳마다 "좋은데? 좋다"하면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유홍준 교수는 선암사를 ‘산사의 모범 답안’이라고 했다. 산사를 이렇게 아름답게 설계하고 만든 사람이 누굴까 궁금할 정도로 사찰 곳곳에 자연과 이보다 더 잘 어울리고, 멋스러운 곳이 있을까 싶었다.
아쉽게도 이 장승은 본래의 것이 아니고 복제품이라고 한다. 원래의 장승은 부식이 심해져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도 반갑게 맞아 주는 이 장승을 복제품이 아니라 원래 장승의 2세라고 부르고 싶다.
선암사의 범종루에는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라는 현판이 있다. 알려진 대부분의 사찰은 조계종이고 선암사는 태고종의 총본산이다. 이번 기회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설명된 내용으로 조계종과 태고종에 대해 알게 된다. 태고종은 승려의 결혼을 허용하고(대처승), 조계종은 그렇지 않다(비구승). 하지만 실제로 태고종 스님의 1/3은 비구이고 자율에 맞긴다고 한다. 또 태고종은 사찰의 개인 소유를 인정하고, 교임제도라는 것을 두어 출가하지 않더라도 사찰을 운영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불교계에는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등 100여 종파가 있고, 조계종은 2,500여개 사찰에 13,000명 정도의 승려, 태고종은 승려가 8.300여명이라고 한다. 통일신라 이후 불교의 자세한 역사에 대해서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참고하면 될 듯 하다.
선암사의 뒷간은 전국 사찰에서 제일 유명한 화장실인데 구경하러 갔다가 공개된 화장실 구조에 놀라고, 문을 열었다가 볼일 중이신 스님 보고 또 화들짝 놀라 나도 모르게 도망을 쳤다. 다시 또 오고 싶은 사찰 중에 한 곳이 선암사임에는 분명하다. 그 이유 중에 하나, 다음에는 뒷간을 꼭 체험하겠다는 각오도 있다.
내가 산사 순례를 다니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퇴직 후 세계 여행을 목표로 몇 나라를 다니면서 더 많은 곳을 다니고 싶은 열망이 있었는데, 얼마 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좋은 곳도 많이 다니지 않았다는, 어쩌면 외면했다는 사실에 솔직히 부끄러웠다.
둘째는, 나는 아직 종교가 없지만 부모님은 불교를 믿으신다. 아버지는 작년 이맘때 말기 희귀 암 판정을 받으시고 항암치료를 받으신지도 이제 만 일 년이 되었다. 어머니는 골다공증이 심하셔서 넘어지시면 많은 기간을 입원하셔야 한다. 지금이라도 부모님 모시고, 우리나라 좋은 곳 다 모시고 다니면 정말 좋을 텐데 그럴 수가 없다.
산사를 다니며 불당의 부처님 불상을 물끄러미 보며 속으로 혼잣말을 한다. ‘당신 믿으시는 울 부모님이 아프세요. 그거 말씀드리려고 왔어요’ 날마다 다닌 사찰의 풍경을 열심히 사진 찍고, 동영상 찍어서 부모님께 보내 드린다. 그동안 사진, 동영상만 보내 드리다가 오늘은 이렇게 말씀드렸다. "아프신 두 분 대신 전국 유명한 사찰 다니면서 거기 계신 부처님께 내 부모님 아프시다고 소문내고 있는 중이에요, 기운 내서 더 잘 지내시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으니 지금보다 더 잘 지내셔야 해요. 아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