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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을 걷다 Mar 11. 2019

산사를 걷다 - 9

해남 대흥사, 영암 도갑사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순례' 편을 읽다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많이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열흘간 산사 20곳을 방문하였다. '산사를 걷다'는 열흘간 쓴 일기 형태의 글이다.


비수기 지방 도로는 대부분 한적하다. 급할 것이 없으니 여유롭게 운전하면서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노래는 미리 선별해서 듣는다. 출발하기 전에 선택한 가수는 '정태춘, 박은옥'. 대학시절엔 '시인의 마을', '떠나가는 배' 등의 노래를 좋아했고 몇 년 전에는 '92년 장마, 종로에서’란 노래를 들었었다.  


'산사의 아침(탁발승의 새벽 노래)', ‘정동진', '애고 도솔천아’ 등 귀에 익숙한 노래도 나오고, 이야기를 하듯 들려주는 많은 민중가요들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온전히 음악을 듣는 시간이었다. 


꿈꾸는 여행자    - 박은옥 


사막이 끝나는 높은 모래 언덕  

멀리 황홀한 설산들이 손짓해도 

부디 그 산을 넘지 마, 넘진 마세요 

그 너머에도 바다는 없죠.  (... )

또 어느 날 여행자들이 몰려와 

또 다른 세계의 달빛 노래를  (… )

여기 다시 돌아오시지는 마세요. 


나는 어떤 꿈을 꾸는 여행자일까 생각하면서 찾은 곳은 땅끝 해남의 대흥사. 해남은 남해 여행을 할 때는 반드시 찾는 곳이고 보길도란 섬을 좋아한다. 대흥사의 입구 숲길은 대단히 좋았다. 본당 근처까지 차로 올라가면 절대 느끼지 못할 편안함이 있는, 숲에 온전히 나를 맡기는 그런 길이다. 


천 년을 느낄 수는 없겠으나 '천 년의 옛길' 그런 길이 좋다.


나무 장승과 석장승이 같이 있다. 어울리는 것일까? 아닐까? 


2:2로 한 판 하자는 것이지요? 신구 세대로 편을 만드셨소? 나무 정승만으로도 좋았을 것 같다.


두륜산 대흥사 일주문. 기둥이 네 개다. 


백제시대부터 유래한 절 대흥사.


크지 않은 계곡이 흐르고 있다.


또 다른 일주문


대흥사 경내는 북원, 남원, 별원 구역 등 세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 구역을 다닐 때는 전통 한옥마을 다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멋진 나무, 뿌리가 붙어 있어 연리근이라고 한다. '천년의 인연, 만남, 약속'이라는 설명이 있다. 천년이라니,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시간이 자연에게는 짧은 시간일 것이다.


자리 다툼 아닙니다.
천불전 전경. '천불' 말 그대로 많은 부처님이 계신다. 나에게는 항상 적응이 안 되는 전각이 '천불전'이다. 


사찰 여행을 다니면서 유심히 보는 것 중에 하나가 불당 문의 창살인데, 세월의 흔적이 있어서 더 아름다운 문창살이 있는 곳이 대흥사다. 내가 만일 전통 가옥을 짓고 산다면 문은 꼭 이런 창살 무늬를 만들어 넣고 싶다. 


대흥사에 와야 하는 이유 중 첫째. 이 창살무늬 때문이다. 아직 가보지 못한 내소사 창살과 함께 손꼽히는 아름다운 꽃창살이라고 한다.


문화유산을 유지하고 보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까, 그것이 천년이라면.


용화당. 참 멋진 글씨다. 한때 서예를 배운 적이 있었던 나에게는 '넘사벽'의 글씨다.


공터의 여유가 많은 사찰인지라 아기자기한 멋은 없지만 이렇게 걸음을 멈추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들에 매료된다.


잘 만들어진 연못. 연못은 멋지나 주변 경관과 아직은 어울리지 못하는 듯하다.


한 장 찍겠습니다. 봄의 전령님. 


대흥사에는 책에서 재밌게 읽었었던, 초의스님과 추사 김정희의 유명한 일화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초의스님의 차(茶) 맛이 얼마나 좋았으면 추사는 그런 떼를 쓰는 편지를 보냈을까? 대흥사에는 추사가 쓴 현판(무량수각, 사진 참고)이 있다.


초의스님 동상. 스님 동상은 처음이었다.


현판 글씨 감상


가로획, 세로획, 기울기, 간격, 굵기 등 컴퓨터 서체를 보는 듯하다.


표충사 현판. 정조대왕이 쓴 글씨라고 한다. 어쩐지, 많이 바쁘셨을 임금님이 글씨까지 잘 쓰면 반칙?


대흥사에서 바라보는 두륜산.


경내에 법구경의 말씀이 많이 있다. 기회가 되면 법구경 책을 봐야겠다. 


대웅보전. 멋진 현판. 원교 이광사의 글씨라고 한다.


대웅보전 현판에 얽힌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추사 김정희가 귀양을 가면서 해남 대흥사에 들러 초의스님을 만났다고 한다. 추사는 원교 이광사의 글씨를 보고 비판하며 신경질을 부렸고, 초의스님은 원교의 글씨를 떼어 내고 추사의 글씨를 달았다고 한다. 귀양살이 9년 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다시 대흥사에 들린 추사는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내 글씨를 떼고 그것을 다시 달아주게. 그때는 내가 잘못 보았어"


추사 김정희가 귀양살이 가면서 쓴 글씨라고 한다.


산신각 현판. '산'자가 멋스럽다.


응진당 현판. 대흥사를 찾는 두 번째 이유는 현판.


대웅보전 앞에는 이런 돌계단 머릿돌이 있다. 작아서 지나치기 쉽다.


용일까? 도깨비 형상이라고 한다. 코에 힘 좀 주셨네요. 깨비형님.


내가 주인인 내 마음이다. 마음이 나를 만든다.


해남에 와서 오랜 지인을 만나지 않고 지나간 것은 처음인 듯싶다. 다음 여행에는 지인도 찾아뵙고 보길도도 다시 가야겠다. 끝이 아닌 시작인 곳 해남. 


다음으로 찾은 곳은 월출산에 있는 영암 도갑사. 그동안 너무 아름다운 산사를 많이 봐서인지 웬만큼 좋지 않으면 이젠 ‘뭐가 없네?’ 이런 건방을 떤다. 불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고, 건축물과 문화재에 대한 지식도 전무하니 아는 만큼 볼 수 있는데 내가 아는 것이 없으니 보고 싶은 것만 찾는다. 


도갑사 입구에는 멋진 노목이 있다. 노목에도 곧 봄은 찾아올 것이다.


영암 월출사에 자리한 도갑사. 이 사찰 역시 한국전쟁 당시 많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제대로 된 복원을 기원한다.


월출산 도갑사 일주문


트레킹 여행이었으면 월출산 천왕봉 정상에 서 있었을 것이다. 


도갑사에 오르는 길


도갑사에는 ‘해탈문’이라 칭하는 문이 있는데 이 문을 지나면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 근심 없는 부처님 품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란다. 사는 것에 초연하고, 사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 해탈의 의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해탈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면 안 되는구나 생각했다. 


방송에서 자주 해탈이라는 말을 듣는다. '해탈하셨나 봐요'라는 말이 이제는 '부처님에게 귀의하는 스님이 되셨나 봐요'라는 말로 들린다.


중도는 없다. 오직 선택만 있다.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안쪽에는 또 다른 해탈문 현판 글씨가 있다. 어떤 사연으로 같은 글씨가 걸려 있을까? 지나가는 스님이라고 계셨으면 물어볼 텐데.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 더 큰 공간을 가졌다. 작은 돌계단이 아닌 넓은 계단이다.


대웅보전 앞 전경


도갑사 오층석탑. 아직도 나는 육층 석탑으로 보인다.


대웅보전 창살 무늬.



도갑사 뒤편으로는 등산로와 미륵전이 있다.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미륵전 불당의 창살 무늬도 아름답다.


이른 봄 늦가을 같은 등산길. 억새밭으로 가는 길이다.


작지만 아름다운 폭포가 있다. 용소폭포.


나오면서 입구의 고목을 다시 본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벌교, 보성 등의 간판이 보이고 아직도 내가 가보지 못한 우리나라의 마을이, 길들이 너무 많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꿈꾸는 여행, 내가 걷는 이유를 생각하며 돌아오는 길에는 ‘장필순’의 노래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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