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대흥사, 영암 도갑사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순례' 편을 읽다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많이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열흘간 산사 20곳을 방문하였다. '산사를 걷다'는 열흘간 쓴 일기 형태의 글이다.
비수기 지방 도로는 대부분 한적하다. 급할 것이 없으니 여유롭게 운전하면서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노래는 미리 선별해서 듣는다. 출발하기 전에 선택한 가수는 '정태춘, 박은옥'. 대학시절엔 '시인의 마을', '떠나가는 배' 등의 노래를 좋아했고 몇 년 전에는 '92년 장마, 종로에서’란 노래를 들었었다.
'산사의 아침(탁발승의 새벽 노래)', ‘정동진', '애고 도솔천아’ 등 귀에 익숙한 노래도 나오고, 이야기를 하듯 들려주는 많은 민중가요들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온전히 음악을 듣는 시간이었다.
꿈꾸는 여행자 - 박은옥
사막이 끝나는 높은 모래 언덕
멀리 황홀한 설산들이 손짓해도
부디 그 산을 넘지 마, 넘진 마세요
그 너머에도 바다는 없죠. (... )
또 어느 날 여행자들이 몰려와
또 다른 세계의 달빛 노래를 (… )
여기 다시 돌아오시지는 마세요.
나는 어떤 꿈을 꾸는 여행자일까 생각하면서 찾은 곳은 땅끝 해남의 대흥사. 해남은 남해 여행을 할 때는 반드시 찾는 곳이고 보길도란 섬을 좋아한다. 대흥사의 입구 숲길은 대단히 좋았다. 본당 근처까지 차로 올라가면 절대 느끼지 못할 편안함이 있는, 숲에 온전히 나를 맡기는 그런 길이다.
사찰 여행을 다니면서 유심히 보는 것 중에 하나가 불당 문의 창살인데, 세월의 흔적이 있어서 더 아름다운 문창살이 있는 곳이 대흥사다. 내가 만일 전통 가옥을 짓고 산다면 문은 꼭 이런 창살 무늬를 만들어 넣고 싶다.
대흥사에는 책에서 재밌게 읽었었던, 초의스님과 추사 김정희의 유명한 일화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초의스님의 차(茶) 맛이 얼마나 좋았으면 추사는 그런 떼를 쓰는 편지를 보냈을까? 대흥사에는 추사가 쓴 현판(무량수각, 사진 참고)이 있다.
대웅보전 현판에 얽힌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추사 김정희가 귀양을 가면서 해남 대흥사에 들러 초의스님을 만났다고 한다. 추사는 원교 이광사의 글씨를 보고 비판하며 신경질을 부렸고, 초의스님은 원교의 글씨를 떼어 내고 추사의 글씨를 달았다고 한다. 귀양살이 9년 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다시 대흥사에 들린 추사는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내 글씨를 떼고 그것을 다시 달아주게. 그때는 내가 잘못 보았어"
해남에 와서 오랜 지인을 만나지 않고 지나간 것은 처음인 듯싶다. 다음 여행에는 지인도 찾아뵙고 보길도도 다시 가야겠다. 끝이 아닌 시작인 곳 해남.
다음으로 찾은 곳은 월출산에 있는 영암 도갑사. 그동안 너무 아름다운 산사를 많이 봐서인지 웬만큼 좋지 않으면 이젠 ‘뭐가 없네?’ 이런 건방을 떤다. 불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고, 건축물과 문화재에 대한 지식도 전무하니 아는 만큼 볼 수 있는데 내가 아는 것이 없으니 보고 싶은 것만 찾는다.
도갑사에는 ‘해탈문’이라 칭하는 문이 있는데 이 문을 지나면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 근심 없는 부처님 품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란다. 사는 것에 초연하고, 사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 해탈의 의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해탈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면 안 되는구나 생각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벌교, 보성 등의 간판이 보이고 아직도 내가 가보지 못한 우리나라의 마을이, 길들이 너무 많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꿈꾸는 여행, 내가 걷는 이유를 생각하며 돌아오는 길에는 ‘장필순’의 노래들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