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31코스 | 주인공인 나
삼척의 어느 아침, 궁촌레일바이크역에 도착했다. 하루를 걷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흐리지도 않고, 햇살이 따갑지도 않은 맑은 하늘. 궁촌레일바이크역 앞에서 해파랑길 인증 스탬프를 찍고, 조용히 첫걸음을 뗐다. 해파랑길 31코스의 시작이었다. 출발하자마자 고개 하나를 넘는다. 이름하여 사래재. 이번 코스에서 가장 경사가 심한 구간이라더니, 정말 만만치 않았다. 시작부터 이렇게 강하게 몰아치면 어쩌란 말인가. 숨이 가빠오고 다리는 묵직해졌지만, 이상하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고개 하나를 넘으면 세상 하나를 넘는 것 같아서다. 숨 가쁜 걸음을 따라오듯, 나무들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사래재를 넘으니 백도라지 가공공장이 나타났다. 흰색과 보라색 도라지꽃이 어우러진 봄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집 근처 밭에 심어진 도라지를 보며 뛰놀던 때가 생각난다. 흙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도라지를 바라보다 꽃잎을 손끝으로 만져보곤 했다. 밭에서 자라는 도라지는 순한 모습이지만, 산에서 가끔 마주치는 야생 도라지는 강인한 생명력을 품고 있었다. 바위틈이나 거친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를 경외감을 느꼈다.
어느 날, 도라지를 캐서 먹어 본 적이 있다. 쌉싸름한 맛이 혀끝을 자극하며 퍼졌다. 처음엔 놀랐지만, 곧 그 맛 속에 담긴 깊이를 깨달았다. 그 씁쓸함은 단순한 쓴맛이 아니라, 오랜 시간 땅속에서 자라온 생명력이 스며든 맛이었다. 달콤한 꿀과 함께 먹으면 쌉싸름함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루며 색다른 풍미를 선사했다. 어릴 적 밭에서 본 도라지, 산길을 걷다 마주한 야생 도라지, 그리고 입안 가득 퍼지는 쌉쌀한 맛까지. 봄이 오면 흰색과 보라색 꽃이 피어나듯, 내 기억 속에서도 도라지는 계속 피어나고 있다.
동막교를 지나자, 풍경이 확 달라진다. 시야가 넓어지고 논과 밭이 펼쳐진다. 그 옆으론 소들이 느긋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축사 앞을 지날 때는 흙냄새와 퇴비 냄새가 섞여 들었다. 도시에서는 결코 맡을 수 없는, 시골만의 진한 향기다. 그 냄새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가 잊고 지낸 자연의 냄새일지도 모른다.
부남교를 건너면 부남리에 이른다. 마을은 조용했다. 낮은 담장 너머 장미와 봉숭아가 한가득 피어 있었다. 마당에서는 한 노인이 감자를 깎고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인사를 건네자, 그는 반가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좋아서 걷기 딱 좋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걷기 딱 좋은 날이었다. 마을을 지나며 문득 생각했다. 이런 길은 누군가 살아온 길이고, 누군가 매일 밟는 흙길이며, 어제도 누군가 걸었던 둑길이다. 그 길을 잠시 빌려 걷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길은 특별하다. 사람들의 삶이 오랫동안 쌓여 있는 시간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덕봉대교에 다다르자 갑자기 바다 냄새가 풍겨왔다. 짭짤하고 시원한, 바다의 냄새. 교량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으니 드디어 맹방해변이 나타났다. 파도 소리가 반갑게 달려온다. 바다다. 눈앞에 펼쳐진 짙푸른 수평선과 하얀 물거품. 가슴이 탁 트인다. 걷느라 지친 다리도, 땀으로 젖은 셔츠도, 바닷바람 한 줄기에 금세 잊혔다.
맹방해변에 도착했다. 눈앞에는 푸른 바다와 고운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지만,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꼈다. BTS 앨범 촬영지였던 이곳에서 그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지만, 세트장은 저작권 문제로 철거되었다고 한다. 앨범 속 그 순간을 떠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밀려오고, 햇살이 해변을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그 장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바다도 그대로였고, 모래도 그대로였지만, 그 공간은 어딘가 허전했다.
모래 위에 앉아 파도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앨범을 통해 느꼈던 감성이 온전히 전해지지는 않았다. 사진 속에서 보았던 풍경을 떠올려보지만, 내 앞에 있는 현실은 또 달랐다. 어쩌면 앨범의 분위기를 느끼려 했던 기대 자체가 이미 과거의 기억을 붙잡으려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흔적을 남기기도 하고, 지우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고, 공간은 변해간다. 나는 약간의 아쉬움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세트장은 사라졌지만, 바람과 파도는 여전히 이곳을 감싸고 있었다.
모래사장에는 연인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아이들은 물장난을 치며 웃고 있었다. BTS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해변은 여전히 ‘추억을 만드는 장소’라는 본질을 잃지 않았다. 해변의 끝자락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오늘 하루 걸어온 길이 떠오른다. 사래재의 가파른 오르막, 소들과 눈 맞춘 둑길, 부남리의 장미꽃 담장, 그리고 지금 이 시원한 바다. 그렇게 이어진 이 길은 결국, 나를 나에게로 데려왔다. 누군가는 여행을 멀리 떠나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어쩌면 걷는 여행이야말로 진짜 ‘내 안으로의 여행’ 인지도 모르겠다. 발걸음이 쌓인 만큼 생각이 깊어지고, 풍경이 바뀐 만큼 마음도 달라진다. 장면은 지나가고, 마음에 남는다
스크린 너머 현실 속으로: 내 삶의 영화를 찾아 떠나는 여정
우리는 왜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를 찾아가는 걸까. 한 장면이 스쳐 간 그 장소에, 일부러 시간을 내고, 때로는 먼 길도 마다하지 않으며 찾아가는 그 마음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현실 너머의 현실’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일지도 모른다. 스크린 속 반짝이던 세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 세계가 완전히 허구가 아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그래서 우리는 그 장소에 서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시 조용히 떠올려본다.
“여기였구나. 그 장면이 찍힌 곳.”
그리고 이내 머릿속은, 카메라의 각도와 배우의 눈빛, 대사의 여운을 다시 조립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 순간, 관람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된다. 감상에서 경험으로, 추억에서 현실로. 장면은 지나갔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 안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그런 경험이 삶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다가도, 문득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인생 영화를 찍으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그리고 그 인생의 장면들에는, 누구에게나 나름의 ‘촬영지’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첫사랑과 함께 걷던 골목, 누군가에게는 부모님과 나들이 갔던 해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혼자 술 마시던 늦은 밤의 버스 정류장일 수도 있다. 그 장소들에는 대사도, 음악도, 카메라 워크도 없지만, 우리의 마음에는 뚜렷한 ‘감정의 장면’으로 새겨져 있다. 영화 속 장면이 우리를 자극하는 건, 어쩌면 우리가 가진 기억의 형식이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특정한 풍경, 특정한 시간, 특정한 감정이 만났을 때,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장면으로 저장한다. 그러니 영화는 결국, 인간의 기억을 닮은 예술이 아닐까.
그렇다면, 인생이막을 준비할 때 우리는 무엇을 기반으로 해야 할까. 추억일까, 아니면 새로움일까. 추억은 우리의 토양이다. 그 위에 서 있기에 우리는 지금의 나일 수 있다. 그러나 오직 과거만 붙잡고 산다면 뿌리에 갇힌 나무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새로움만 좇으면 방향을 잃기 쉽다. 아무리 새로워도 그 새로움이 나와 맞닿아 있지 않다면, 그것은 내 인생의 장면이 되지 못한다. 인생의 새로운 막은, 추억을 기초로 삼되, 새로움을 향해 열려야 한다. 지나온 나를 부정하지 않되, 그 위에 지금의 내가 만들고 싶은 장면을 정직하게 더해야 한다. 어쩌면 인생은 하나의 긴 시퀀스다. 익숙한 장면들, 아픈 장면들, 아름다운 장면들, 그리고 아직 찍히지 않은 빈 컷들이 섞인 필름. 그 모든 장면을 사랑하는 일이, 결국 ‘사는 일’ 일 것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영화 속 장면이 찍힌 해변에 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장면 하나를, 새롭게 찍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