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과 문화영향력

by 기은

내가 어릴 때, 우리 동네에 응도라는 아이가 있었다. 이름만 들으면 70년대에 태어난 아이 같지만, 놀랍게도 90년대 생이다. 크게 친하지도 않던 이 아이를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까닭은 그 독특한 이름 만큼이나 나에게는 유독 독특하게 느껴졌던 취향 때문이었다. 어떤 취향이었냐면 [우뢰매] 취향이었다. 그러니까 이 아이는 코미디언 심형래가 주연을 맡은 특수촬영물인 [우뢰매]를 유난히 좋아했던 것이다. 어느 정도로 좋아했냐면 그 [우뢰매]를 시리즈 별로 VHS를 전부 소장한 데다가, 그 VHS를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해서 볼 정도로 좋아했다. 그 집에 놀러가면 언제나 응도가 [우뢰매]를 집중해서 보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에도 그 아이의 취향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당시 우리 동네 아이들은 동네 비디오방에서 [우주특공대 바이오맨]과 같은 슈퍼전대 시리즈나 울트라맨 시리즈, [시공전사 스필반]과 같은 메탈히어로 물을 빌려보곤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도 [우주특공대 바이오맨]을 특히 좋아했다. 아시는 분은 아실 테고, 모르시는 분들은 검색해보면 아실 거다. 이 작품은 지금 봐도 배우들은 비주얼적으로 멋지고, 수트와 메카 디자인은 세련되었으며, 액션 연출도 뛰어나다는 사실을 말이다. 일찍이 이런 작품에 길들여진 탓에 나는 당시 미취학 아동이었음에도 [우뢰매] 시리즈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어린 나이에도 이 작품은 나에게 너무나 유치하고 볼품없고 조악해 보였던 때문이다.


다들 공감하실 거다. 바이오맨의 멋진 배우들을 보던 어린 아이가 배 나온 심형래 아저씨가 빨간 내복 같은 수트를 입고 TV방송과는 다른 이상한 목소리로 나오는 모습을 어떻게 봤을지….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량·불법 비디오를 시청함으로써……”. 내가 불량 청소년이 되지 않은 건, [우뢰매]를 단 한 편도 보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응도가 [우뢰매]만 본 것도 어쩌면 부모님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뢰매]를 보던 응도가 다른 작품을 봤을 때, 아이가 충격으로 어떻게 엇나갈지 모를 일이니까….


어쨌든 응도의 이름을 지금껏 기억하면서도 그 아이와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데에는 이런 취향의 차이가 컸다. 그 아이가 바이오맨 VHS를 소장했더라면, 나는 그 아이 집에 매일 놀러갔을 텐데…. 내가 4살이나 형이었어도….


[우뢰매]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TV에서 보는 심형래 님의 영구 연기는 좋아했다. 그 분의 연기는 바보처럼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보이면서도 중간중간 상당한 액션을 요하는 동작이 들어있었다. 그 액션을 쉽게 해내면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모습이 어릴 적 나의 눈에도 놀랍게 느껴질 정도였다. 한참을 지나 대학생이 되어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보았을 때에는, 심형래 님이 당시에 한 코미디가 이런 종류의 코미디였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 당시 심형래 님의 연기는 한국의 찰리 채플린이라 해도 좋을 만큼 훌륭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심형래 님은 영화감독으로서 [디워]를 발표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런대로 괴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아직까지도 이 영화를 보지는 않았다. IPTV에서 이 영화를 보려다 앞 부분만 조금 보다 껐다. 배우의 연기나 전체적인 영상이 어딘가 어릴 때 TV에서 본 심형래 님의 코미디 콩트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화가 지향하는 분위기와 맞지 않아 보였다. 괴수가 좀 더 일찍, 많이 나왔으면 조금이라도 더 봤을지도 모르겠다. 기대한 괴수가 제 때 나오지 않아 영화를 더 보지 못하고 끈 거기도 하니까.


이 영화는 기억하는 분은 아시다시피 극장 개봉 당시 100분 토론에서 주제로 다룰 정도로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그 논란과 함께 당시에 코미디언 심형래 님을 불굴의 도전의 아이콘이나 충무로에서 인정 받지는 못했지만 자신 만의 영화 세계를 꾸준히 펼친 개척자 정도로 추앙하는 몇몇의 분위기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 널리 알려진 그의 명언이 있었으니, 그것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렇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님께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님께 경의를 표하며 했던 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그 말보다 심형래 감독님께서 최소 10년은 앞서서 같은 말을 했던 것이다.


며칠 전 광화문 광장에는 BTS의 새 앨범 [ARIRANG]의 컴백 공연이 있었다. 도시의 중앙에 자리한 넓은 광장을 통제한 그 자리에 아리랑이 울려퍼졌다는 소식에 20여년 전에 개봉한 영화 [디워]의 엔딩 장면을 생각했다. LA 도심 한 블록을 통제해 촬영했다는 그 장면, 아리랑이 울려퍼졌다던 그 장면,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나에게는 전설처럼 느껴지는 그 장면…. 그러고보니 BTS 멤버들의 나이가 [우뢰매]를 좋아하던 응도와 같은 또래이기도 하다. 응도 또래가 지금 전세계를 씹어 먹은 셈이다.


그런 점에서 BTS의 이번 앨범에 코미디언이자 영화 감독인 심형래 님이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방시혁 의장님이 영구를 존경하는지도 모를 일이고…. 결국 케이팝으로 대표되는 현재 우리 대중문화의 근간에는 심형래 님의 영구가 있는 셈이다. 영구 없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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