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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Jul 07. 2020

세상을 따뜻하게 할 태도가 있다면

엄지혜의 <태도의 말들>

 엄지혜 작가님의 MBTI가 나랑 비슷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MBTI 성격유형검사를 10년 전에 했을 땐 ‘넌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검사 결과가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나를 틀 안에 가두려는 것 같아서 별로 신뢰하지 않았고 금방 잊고 말았는데, 요즘 사람들 사이에 유행하기에 재미로 한 번 해보았다가 30대가 되어서야 내 성격이 완성된 것인지 이제 그냥 MBTI 검사 결과로 나를 규정하기로 했다. 내가 속한 INFP 유형의 특성에서 좋은 말만 골라보자면, 마음이 따뜻하고 조용하며 자신이 관계하는 일이나 사람에 대해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하고 낭만적이며 내적 신념도 깊단다. 이해심이 많고 관대하며 자신이 지향하는 이상에 대하여 정열적인 신념도 가졌는데 남을 지배하거나 좋은 인상을 주려는 경향은 또 거의 없단다. 이 정도면 수긍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태도의 말들>을 읽는 내내 고개가 너무 끄덕여지고 밑줄 긋느라 바빴던 걸 보면, 어쩜 이렇게 내 생각과 가치관과 지향하는 행동과 태도와 딱딱 맞아떨어지는지 나중에 써먹고 싶은 문장들을 한창 저장하다가 책이 끝나버린 걸 보면, 엄지혜 작가는 나보다 훨씬 더 구체적으로 멋지고 똑똑하며 내공 깊은 이상주의자이자 신념의 사람인 듯하다(INFP는 아닐지 몰라도).


 엄마는 어린 내게 ‘세상 사람들이 다 너 같지 않다’라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다. 왁자지껄 노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일단은 믿고 보는 낭만적인 성격 탓에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오던 날에 주로 들었던 말이다. 사춘기도 소심하게 보냈던 나는 ‘엄마는 왜 이렇게 부정적이야!’라는 말을 속으로만 삼켰을 뿐이다. 잘못이 있다면 믿어준 내가 아니라 내 믿음을 깬 누군가에게 있지 않겠냐고 묻고 싶었다. 내가 나를 보호하지 않으면, 내가 내 것을 챙기지 않으면 미련하고 멍청한 사람일 뿐인 속상한 세상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내 이상과 노력은 종종 무의미해졌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맞고 저들이 틀렸다는 끔찍한 우월주의를 마음 한편에 아닌 척 없는 척 가리고 있을 때도 많았다. 그 교만함은 나도 나를 지켜야 했던 방법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수많은 인터뷰에서 만나야 했을 사람들, 들어야 했을 말들, 보아야 했을 태도와 행동들에서 추리고 추려도 좋은 것이 100개나 되는 사람이라면 분명 행복한 사람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십 년 넘게 일하며 만난 사람이 어디 100명뿐이었으랴. 100명에게 한마디씩만 들은 것도 아니었을 터. 적절하게 말하고 성실하게 들어야 했을, 그리고 혼자서 건강하게 소화해내야만 했을 엄지혜 작가는 행복한 사람이기보다 행복을 찾는 사람일 테다. “누군가 내 진심을 곡해 없이 받아 줄 때, 내 선의를 세심하게 읽어 줄 때,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됐을 때” 행복하다는 그는 사실 “호감이 생기지 않는 사람을 마주할 때 기어코 그의 장점을 찾아내려” 무던히도 애쓰는 사람인 것을, “누군가와 소통이 되지 않아 답답할 때마다 상대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게 된 성격을 두고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닌지, 상대에게 변화를 요구할 타당한 이유가 있는지,” 곱씹어보는 사람인 것을, 좋은 태도를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는 그는 이미 태도가 좋은 사람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드러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빛이 나는 사람, 순간 반짝이고 사라지는 빛이 아닌 뭉근하고 꾸준한 빛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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