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매번 번호표를 뽑을 때마다 4번 창구에 당첨(?)되신다는 나이 지긋하신 한 남성 손님이 오셨다(최근에 나는 4번 창구로 자리를 옮겼다). 안경을 쓰시고 멀끔한 차림새로 내방하신 그 고객님은 100만 원권 수표를 현금으로 교환해 달라고 하셨다.
- 여기 이 4번 창구에 있던 서울 말 쓰시던 직원분은 이제 안 계신가 봐요?
- 아, ㅇㅇㅇ 계장님이요? 얼마 전에 김해로 발령 나셔서 지금은 저희 지점에 안 계세요.
- 전근 가셨나 보네요. 항상 올 때마다 그 직원한테 거래를 했었는데... 번호표 뽑을 때마다 희한하게 그리 되더라고요. 허허. 좀 친해지는가 싶었더니 벌써 발령이 나셨나 보네요.
손님은 국세청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다가 퇴직을 하셨다고 한다. 손에 든 5만 원권 100만 원을 하얀 종이와 스카치테이프를 빈틈없이 이어 붙여 손수 만든 것처럼 보이는 그만의 지갑에 고이 넣으시면서 다시 몸을 돌려 나에게 말씀하셨다.
- 아휴, 그러고 보니 벌써 연말이네요. 저는 세월이 참 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너무도 쏜살같이 지나가버려 인생 짧더라고요…. 요즘도 밖에 나가면 누가 날더러 ‘어르신~ 할아버지~’ 하고 부르는 게 그렇게 적응이 안 됩디다. 아직 마음은 젊은 시절에 가 있어서 이것도 저것도 다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몸이 이젠 안 따라줘요. 그러니 지금 제 앞에 계신 직원분은 젊으실 때 후회 없이 살아가봐요. 하고 싶은 것도 하시고…..
조금 전 신분증을 받아 든 그의 연세는 70대셨다.
하고픈 걸 하고 인생을 즐기듯 살아달라는 그의 당부와 조언 속에서 올해 내가 이루었던 것과 실로 행하지 못했던걸 동시에 떠올려보게 됐다.
올해가 시작되자마자 사무실에서 처음으로 예금 주무 일을 맡으면서 고객 관리와 실적 관리에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군분투했더랬다. 어찌 보면 한 사무실의 작은 리더일 수 있는 자리를 어떻게든 부끄럽 없이, 후회 없이 충실히 해내고 싶었다. 출근 전, 평소보다 30분씩 일찍 일어나 신수정 작가님의 <일의 격>이라는 책을 펼쳐 들어 줄을 그으며 읽고, 도움받은 문장은 다이어리에 옮겨 적어갔다. 문장에서 얻은 글귀에 내 다짐과 마음가짐을 기록하니 스스로 채찍질과 반성, 위로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외에도 올해에는 그동안 두려워서 미루기만 해 왔던 인공 수정을 2회나 시도했고, 그 결과로 눈물 바람 펑펑 날리며 여보한테 매달리듯 안겨서는 엉엉- 나는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거냐며 서럽게 울어보기도 했다. 덕분에 눈물만큼이나 차오르는 콧물을 풀어내느라 티슈를 꽤나 많이 소진시켰다. 또 올해를 놓칠세라 비행기 타고 다녀온 연수원 교육을 수료하면서 70여 명 앞에서 짧게나마 발표를 해본 일, 일본을 다녀온 계기로 현지 언어는 알아야지 싶어서 호기롭게 일본어 독학을 시작했다는 점. 뜨거운 여름날, 여보와 함께 카자흐스탄 빅 알마티 트래킹을 성공적으로 다녀온 것도 참 잘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브런치스토리에 작가로 선정되어 이 하얀 바탕에 나의 이야기를 맘껏 풀어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도.
충분히 애썼고, 이만하면 그래도 나 가만히 멈춰 있지는 않았네? 싶다. 앞으로도 사부작거리면서 몸을 움직이고, 바지런히 글을 쓰고, 걸으면서 세상을 배워갈 생각이다.
여러분의 2025는 어땠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