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내게 여러 형태로 온다

- 10년 차 농순이가 말하고 싶은 그날의 에피소드

by 효지늴기


아침 9시가 되면 어김없이 영업점의 셔터가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계음을 내며 열심히도 올라간다.

창구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포함한 몇몇 직원들은 '아 - 시작이구나'를 속으로 되뇌고 하루를 시작하는데, 이러한 반복이 벌써 햇수로만 10년째가 되었다. 셔터가 올라간다는 건 문이 활짝 열려있으니 오늘 하루의 예측하지 못할 업무와 손님들이 밖에서 안으로 마음껏 들어오셔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컴퓨터 키보드의 F1이라는 버튼을 누르면 '띵동-'이라는 분명하고도 거부할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순번대기 손님이 호출되는 일상으로 시작하는 루틴이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병아리 같은 새내기 시절에는 영업 시작 10분 전부터 심장이 콩닥콩닥 요동을 치고 입술이 바짝 말라갔더랬다. 항상 책상 한편에는 텀블러에 받아 온 생수를 두고 목을 축여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긴장으로 건조해져 버린 입술과 혀가 나의 머리까지 마비시켜서 그 자리에서 수습 가능한 아담한 실수에서부터 내 손으로는 감당 불가능한 무거운 실수까지도 부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엔 자신 있게 처리할 수 있는 업무보다는 땀을 뻘뻘 흘리며 나를 쩔쩔매게만 하는 어려운 업무들이 언제든 도사리고 있었다. 신입이라면 통장을 손에 쥐고 대기 중이신 고객님을 보면 오히려 마음이 놓임과 동시에 반갑기까지 해서 나에게 호출되어 오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분이 하실 업무의 90프로는 통장이월 또는 통장 정리, 입금이나 출금, 아니면 통장 비밀번호 변경 중 하나로써 너무도 명확했기 때문이다.

'오늘 손님들이 여태껏 본 적 없는 처음 보는 서류들을 들고 오시면 어떻게 해야 하지? 흰 건 종이요, 까만 건 글씨인 사태가 벌어지지 않게 해 주세요. 시재가 안 맞아서 야근하면 어떡하지? 온 지점에 나의 바보스러움이 소문나겠지, 정신 똑바로 차리자' 등 별의별 걱정을 달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햇수로 10년이면 적지 않은 시간이지만 사실 지금도 아침 출근하기 직전에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게 된다. 허공이나 거실 어딘가 벽을 응시하면서 또는 거울에 담긴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무탈하게 오늘 하루 잘 보내게 해 주세요"를 습관처럼 중얼중얼 내뱉는다. 아무 탈 없이, 민원 없이 평화롭게 일과가 술술 풀리듯 오후 네시를 맞이하여 드디어 셔터가 내려가는 장면을 보는 것은 나에게 보통의 행복이며 매우 소소하지만 소중한 일과의 마무리다.




지점마다 1번 창구의 위치가 사무실 안쪽에서부터 시작하는지, 바깥쪽에서부터 시작하는지는 사무실 여건에 따라 다른데 우리 지점은 출입구와 가장 먼 창구가 1번 창구이고 그 창구가 바로 내가 있는 곳이다. 예전부터 이 자리는 예금계의 맏언니 역할을 하는 연차가 가장 오래된 예금계 직원이 앉는 자리였다. 이 사실을 아는 몇몇 손님들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내게 오신다.




그중 어떤 할아버지 손님은 항상 지팡이를 짚고 객장 중앙 입구로 들어오시는데 나의 창구가 비어있을 적엔 "어라! 할매자리 딱 비어있네, 여기 앉은 직원은 할매라카든데?"

객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들리도록 쩌렁쩌렁하게 외치신다. 내 나이가 올해 서른다섯인데 할매라는 단어에 처음 3초간 어안이 벙벙했고 옆자리에 앉은 동료 후배직원들은 놀란 눈으로 귀를 의심했으며, 과연 날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긴가민가 하던 차에......... 그랬다, 그건 분명 1번 창구로 직진하며 하시는 말씀이었다. 그 할아버지 손님께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며 내게 미안한 맘이 드셨는지 "자리가 할매라는 말이지.. 아가씨가 할매라는 거슨 아니여~"라고 매번 오실 때마다 우스갯소리를 건네주신다.




그리고 이틀 전, 강복남이라는 성함을 가진 할머니 손님께서 오셨다. 이 고객님께서도 자주 내방하셔서 그때그때 쓰실 생활비로 조금씩 현금 출금하시는 분인데 늘 오실 때마다 촘촘하게 힘 있는 파마머리를 유지하신 채로 캐릭터 곰돌이 푸우와 같은 귀여운 눈웃음을 짓고 계신다. 1번 창구에 앉으시자마자 그날따라 손에서 나무 도장을 놓치셨는지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데구루루-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르신들은 창구 의자에 한 번 앉으시게 되면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다시 줍고 착석하시는 데까지 굉장히 힘들어하시는 데다가 시간도 상당히 오래 걸리곤 한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후다닥 쏜살같이 객장 쪽으로 달려 나가서 마치 가게에서 식사하다 떨어진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주워 올리듯 도장을 집어 강복남 어머님 손에 쥐어드렸다.




"아이고 슨상님 고맙습니더~ 항상 올때마다 이렇게 잘 해주가꼬 감사합니더~"


라고 말씀하시는 강복남 어머님의 나이는 컴퓨터 화면의 오른쪽에 보이는 고객 인적사항에 91세라고 정확하게 적혀있다.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매번 오시는 우리 손님이신데 이 분의 연세를 처음 알게 된 것이다. 91세의 나이 지긋하신 할머님께서 35세의 손녀뻘 되는 직원에게 슨상님이라고 말씀하시는 걸 듣는 순간, 그 자리에서 새삼 부끄러워졌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선생이란, 본디 성이나 직함 뒤에 붙여 남을 존대하여 이르는 말이라는 단어로 풀이되어 있는데 내가 과연 이 분께 '선생님'이라는 높여 부르는 호칭을 들을 만한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언 반 세기를 나보다 먼저 투박하고도 거칠게 어쩌면 더 치열할 수밖에 없이 살아낸 사람. "일을 많이 해서 내 손이 엉망이 돼버렸어"라고 얘기하시는 그녀의 두 손과 표정에서 나의 짧은 인생살이로는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가 함께 오는 듯했다. 나는 비록 1번 창구라는 온실 같은 공간에서 이 나이 지긋하신 분께 선생이라는 대접을 받고 있었지만 알고 보면 정말로 선생이라 불려야 하는 분은 내 앞에 계신 강복남 어르신이셨다.



나 직함 따위에 붙여 남을 높여 이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