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시 세계의 주인이 되기까지
드디어 맞이한 3학년.
정의롭고 학업에 열정적인 새로운 반 친구들 덕분에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나를 의심하지 않고 덤덤했던 반장,
공부에 임하는 태도가 멋져 닮고 싶었던 지금의 공무원 친구 2명,
그리고 내 약한 모습까지 넉넉히 바라봐 주었던 소중한 친구 2명이 있었다. (이 친구들은 조부모님의 상까지 챙겨줬다.)
이 외에도 마의 3학년을 함께 웃으며 버텨준 모든 반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학원에서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예술적 가치를 인정해 주는 좋은 친구들을 만난 덕분에 즐겁게 입시를 치를 수 있었다.
입시 스트레스는 있었지만, 다른 상처에 비하면 오히려 행복한 스트레스였다.
친구들과 함께 묵묵히 이겨나가며 정말 고3다운, 깔깔거리고 건강한 생활을 했다.
(물론 돼지런한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아픈 학창 시절을 더듬어 볼 새도 없이 바쁘게 입시를 치러냈고,
늦게 시작했지만 가장 빠르게 대학에 합격하는 성과를 얻었다.
내 소문이 전교에 퍼지던 그때, 아프다며 조퇴를 하고 근처 강가에서 꼬박 네 시간을 하염없이 걸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눈물도 흐르지 않던 그때,
처음으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발이 퉁퉁 부은 채 방에 들어섰을 때,
포도를 먹으며 아무런 표정 없이 허공을 응시해야 했다.
다음 날, 다시 그 지옥 같던 학교를 가야만 했을 때도나는 여전히 부모님과 어린 동생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등교를 준비할 때면,
"샴푸 펌프를 세 번 이상 짜야만 학교에서 괜찮을 거야" 같은 이상한 압박이 징크스처럼 나를 짓눌렀다.
스트레스로 머리를 너무 많이 잡아뜯어 뒷통수가 훤히 보일 정도였고.
이따금씩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자는 척, 안 들리는 척 책상에 엎드려 울음을 삼키곤 했다.
엄마의 이유 없는 폭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억울함을 꺼낼 힘조차 없어,
그저 이어폰으로 우울한 노래를 반복했다.
눈물이 귀에 가득 차도록, 불안함과 고통이 이런 것이구나 온몸으로 느꼈고
그 기분 나쁜 감정의 실체를 깨달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지도하던 외부의 청소년 담당 선생님에게 학교를 마치고 달려가 그냥 툭 이야기를 터놓았던 적이 있었다.
그 선생님은 처음으로 나를 위로해준 어른이었다.
너무 힘들면 기도를 하라고 말씀해 주셨고,
이제야 말하지만 그 기도 덕분에 정말 간신히, 간신히.죽을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물론, 아픔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수많은 챕터 속 시시각각 변하는 예민한 생각들과 가슴을 찌르던 말들은
이 글 사이사이에, 그리고 지난 세월에 아직 많이 묵혀 있을 거다.
그래서 바빴다.
그냥 막연하게 성공하고 싶었고,
이 많은 이야기들을 돌아볼 용기가 없어 그저 앞만 보고 달렸다.
이 어둠을 직시해야 하는 것임을 몰랐던 것 같다.
당분간은 그냥 흘러가듯이 내 마음을 털어내고 지켜보려 한다.
나에게 영상 편지도 남겨보고,
우울한 일기도 몇 장씩 써보며 괴로움이 가득할 때 휘갈겼던 알 수 없는 검정색 낙서와
고민으로 넘쳐나는 지난 일기장을 넘겨볼거다.
내가 아직도 이 글을 쓰는 것을 보면,
스스로 발견할 것들이 아직 많은건가 싶다.
이 어둠을 풀어내고, 정리하고, 정제하면
또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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