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오래 나를 흔들던 이름을 놓아보내며

학창시절 끝 무렵까지 이어진 상처,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를 구해낸 시간

by 선셋

Chapter 4: 따돌림과 관계의 트라우마 (마지막편)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 큰 무리의 시선을 피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작은 무리를 만들며 사소한 웃음을 되찾아보려 노력했지만,

그 아이들은 끝까지 나를 미워했고, 욕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내 선물 같은 친구와는 그 모든 시선과 압박을 함께 견뎠다.
그 친구는 내가 지쳐가는 모습을 보며 “고등학교 탐방”을 핑계로 합법적인(?) 조퇴를 자주 함께해 주었다.

밝은 대낮의 교실 문을 나설 때마다, 이상하게 즐거웠다.
이 친구와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맛있는 걸 먹고, 갈 수 있는 고등학교 이야기도 하고.
그렇게 우리는 괴로웠던 3년을 ‘도망치듯’, 그러나 서로에게 의지한 채 졸업했다.

모두의 축복 속에서 즐기며 졸업 하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도망쳤던 것 같다. 이 기억을 잃어버리고자.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나는 중학교의 아픔을 잊고 싶었다.
다행히 다양한 학교 출신 아이들이 모였고, 중학교와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다.
더 넓은 사회였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아이들의 비율도 훨씬 높았다.


그렇게 새로운 시작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chapter 2의 그 친구와 (=초등학교 시절 가족 여행 때 전화가 와 괴롭히던 친구)

다시 한번 얽히게 된다.

우리는 우연히 같은 동아리에 합격했다.


서로 껄끄러운 사이였지만, 매일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3년이기에 그녀는 지난 일을 잊은 듯 행동했다.
아니, 정말 다 잊은 걸까.
아니면 그마저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타고난 소시오패스였을까.


나중에 다른 친구들에게 조심스레 들은 이야기였다.
그 아이는 중학교에 와서도 나뿐 아니라 우리 엄마까지 끔찍하고 지어낸 소문으로 욕하고 다녔다고.


친구들이 직업 훈련으로 엄마 직장에 방문해서 체험도 했었건만.

말도 안되는 직업을 들먹였고, 그런 직업을 가졌다면서 우리 엄마를 폄하했다고 한다.

얼마나 배운 게 없었으면, 어떤 집에서 배웠으면 그런 말까지 퍼뜨릴 수 있었을까.


엄마를 향한 그 얘길 듣는 순간,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는 그 아이의 웃는 얼굴조차 보기 거북했고,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그 당시 새로 친해진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사실 쟤는 진짜 나쁜 애야.” 라고.

그리고 속으로 신에게 따졌다.

‘왜 나는 똑같이 하면 안 돼? 쟤는 그렇게 하고도 잘 사는데, 나는 왜 하나도 잊히지 않는데?


나도 그냥 할 거야. 그리고 그게 나한테 나쁘게 돌아온다면… 그건 진짜 불공평한 거야.

하지만 분노를 뱉고 나니 오히려 더 허무했다.
내가 그 아이와 비슷한 위치에 서 있다는 사실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친구(새로 사귄 친구) 와는 작은 오해로 잠시 서먹해졌고,

어느 순간 심보가 뒤틀렸는지 그 아이에게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전해버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는 크게 두렵지 않았다.
그건 과거였고, 모두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웃으며 다가오는 그 아이의 모습이 더 우스웠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늘 상상을 뛰어넘었다.


그 아이는 자기 엄마를 학교에 전화하게 했다.

그리고는 나를 가해자라고 몰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했던 모든 행동을 그대로 뒤집어 나에게 덧씌운 것이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진짜 헛웃음이 나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엄마도 정상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야간 자율 학습을 하던 중, 내가 좋아하던 국어 선생님께서 어느 날 나를 따로 부르셨다.


5층의 작은 교실에서, 선생님은 조심스레 그 아이와 엄마가 했던 말을 전하며 상황을 물었다.

그게 초등학교 때와는 달랐던 첫 번째 차이였다.
선생님은 나를 판단하기보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물어봐 주었다.


나는 예상하고 있었던 파동보다 더 큰 감정에 휩쓸렸다.
그동안의 억울함이 고등학교에 와서야 한꺼번에 터졌다.

5층 복도를 울림으로 채울 정도로, 나도 몰랐던 울음이 쏟아졌다.
복도가, 내 울음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제야 선생님은 이 오래된 앙금을 눈치챘다.

오히려 더 놀래면서 나를 다독여줬고 그 만큼 나는 꺼이 꺼이 울었더랬다.


이런 일을 담당하는 다른 선생님은 이 상황을 학교폭력 건으로 넘기지 않기로 했다.
‘살다 보면 겪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말하며,
화해든 절연이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깨끗하게 절연을 택했다.


5층 복도에서 손으로 종이에 그간 있었던 일들을 몇 장 써 내려가는 동안 이상하게도 마음이 시원했다.

손은 떨리고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지만,
드디어 이 사람에게서 벗어날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나는 완전히, 말 그대로 흔적 하나 남기지 않을 만큼 그 아이를 잊어버렸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미움조차 없었다.
텅 비기보다는, ‘굳이 둘 필요 없는 감정’이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반면, 그 아이는 변하지 않았다.
내게 했던 짓을 다른 친구들에게도 반복했다.
공부엔 관심은 없었고, 인기 많은 아이들의 뒤를 쫓으며 앞에서는 웃어주고 뒤에서는 욕을 했다고 한다.
“대학 못 가게 해버린다”는 식의 악랄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그 아이와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졸업을 며칠 앞두고,

그 아이가 했던 언행과 뒷담화 캡처본을 통째로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욕을 했던 인원만 해도 다섯 명이 넘었다.

파장은 컸다.

다음 날, 그 아이는 등교하지 못했다.
졸업식 날, 사람들 사이를 재빠르게 빠져나가던 그 뒷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내 무의식은 여전히 그녀를 용서하지 못하는 듯 했다.

어차피 일어난 일이라고.

과연 내가 이 일이 일어난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적어도,

이 글을 쓰며 다시 한번 챕터를 펼쳐봤을 때에도

여전히 이유는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일과는 달리

나는 어른이 되어 숨을 쉬고 있고, 햇빛을 쐬며

그럼에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 애쓰고 있다.




다음글 예고

Chapter 5: 회복, 그리고 성인이 된 나의 성찰




이 글은 ‘Sunset’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순수 창작물이며, 모든 내용은 실제 일화를 기반으로 합니다. 해당 콘텐츠는 브런치 및 향후 감정 기반 콘텐츠 프로젝트의 일부로 사용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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