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어리숙한 나는 먹잇감이었다

두 번째 관계의 붕괴, '복도' 라는 공간에서 무력감이 나를 뒤덮은 기억

by 선셋

Chapter 3: 따돌림과 관계의 트라우마 (2)




내 선물 같은 친구와 함께 (*Chapter 2편 참고) 같은 중학교에 진학했다.

그 친구와 같은 교실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다.


그런데, 새 학기 첫날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그 아이는 첫날부터 나에게 다가와 자신의 집안 사정을 털어놓으며 ‘불행한 자신’을 강조했다.


나는 그녀의 사정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누군가가 갑자기 내 영역 안으로 파고들면 본능적으로 몸이 굳어버리는 성향이 있었다.
그게 나였다.


알게 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내 집에 놀러가고 싶다고 계속해서 강요를 했다.

정중히 거절했지만, 거절이 통하지 않는 아이였다.
결국 불편함만이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가 학교에서 나를 두고 이런 말을 하고 다녔다고 했다.

“쟤 무섭고 나쁜 애야.”


순식간에 퍼진 그 말은 내가 어떤 사람이든 간에
‘이상한 애’로 낙인찍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그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연기를 잘했다.
평소에는 나를 약올리고 화를 돋우다가도 사람들 앞에서는 피해자처럼 울기도 했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조차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억울했다.
정말,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말보다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억울한 일이 생기면 참지 못하고 말을 한다거나, 그 자리에서 바로 맞받아쳤다.
그게 나의 본능적인 방어였다.


하지만 그런 나는 ‘시끄럽고 예민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큰 소리를 내던 나는
결국 ‘문제아’로 남았다.


시간이 흘러 그 아이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같은 일을 반복하다 결국 스스로 무리에서 밀려났다.

그리고 내 선물 같은 친구에게도 이간질을 하다가

끝에는 집안 사정으로 전학을 가게 된다.


그 일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지만, 진짜 끝은 아니었다.


대학 합격 후, 그 아이를 다시 마주치게 되었다.

같은 과 단톡방에서였다.

그 이름을 봤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아이는 여전히 ‘과거의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시절의 불안한 감정,

그리고 억울함이 동시에 떠올랐다.


나는 다시 한 번, 관계 속의 ‘공포’를 마주했다.


다행히 그 시절, 내 곁에는 여전히 선물 같은 친구가 있었다.

마지막 학년의 같은 반이 되었을 때,

그 친구는 나의 세상을 다시 환하게 만들어주었다.

예민한 나의 감정을 덤덤하게 받아주고,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던 사람.

‘무조건 짝꿍하기’, ‘같이 다니기’.
어린 내가 꿈꾸던 관계의 모양이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나와 잘 지내던 또 다른 친구 무리 속에서 작은 오해가 생겼고,
그 오해는 순식간에 불씨가 되어 퍼졌다.


싸움은 단 한 명과의 일이었는데,
어느새 나랑 어느정도 친하던 두세 명도 한꺼번에 나를 미워했다.


그 아이들은 나를 향한 험담을 반 전체로 퍼뜨렸다.

하루아침에 나는 ‘가장 나쁜 아이’가 되어 있었다.


어제까지도 인사하던 친구와의 등굣길 인사는 사라졌고,
쉬는 시간마다 교실 뒷편에선 내 이름이 조롱처럼 흘러나왔다.


화장실을 다녀오면

그 무리들이 내 쪽을 힐끔 보며 웃었다.


그들의 권력은 겨울철 교실의 공기처럼 팽팽했다.
세 명의 말에 반의 3분의 2가 나를 외면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


초등학교 때보다 머리도 크고,
상처를 더 명확히 느낄 수 있는 나이였으니까.


그래도 나는 버텼다. 매일, 무너지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버티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선물 같은 친구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이 친구와의 시간만이 날 숨 쉬게 했기 때문.


얘기를 나누던 화장실 칸에 누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나간 뒤, 엉뚱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내가 다른 어떤 아이를 욕했다는 얘기였다.
그건 완전히 거짓이었다.


쉬는 시간, 복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중심에는 나를 따 시키던 우리 반의 무리와,

소위 노는 친구들, 그 소문을 퍼뜨린 화장실 칸의 아이도 있었다.


“야, 니가 000 욕했다며?”

그들의 목소리는 조롱으로 가득했다.
복도에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었고 둥그렇게 진을 치고 울고 있던 날 구경했다.

"니가 뭘 잘했다고 울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하염 없이 울먹거리며 눈물만 흘릴 뿐.


그때, 내 옆에서 선물 같은 친구가 내 손을 잡았다.

“아니야. 00(나) 그런 말 안 했어. 나랑 다른 얘기했어.”


그 차가운 복도 한가운데,

그 친구 손이 내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정말 그 아이 혼자만이 내 편이 되어주었다.

그 온기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완전히 혼자가 아니었다.


내 생일날, 그 친구는 나에게 또 하나의 ‘선물’을 건넸다.


쉬는 시간, 그 무리들이 다 보는 앞에서 커다란 전지를 펼쳤다.

그 위엔 나를 몰래 응원하던 반 친구들의
하트 모양 메모들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생일 축하해. 너는 참 밝은 아이야.”
너를 생각하는 친구들이 이렇게 많아. 라고 말해주는 듯 했다.


그때 느꼈다.

누군가는 여전히 나를 믿고 있다는 걸.

그 친구 덕분에 나는 다시 웃을 수 있었다.
다시 사람을 향해 마음을 열 수 있었다.


그건 단순한 우정이 아니었다. 내 삶을 지탱해준 ‘존재의 증명’ 같은 관계였다.


그 시절의 나는 아직도 내 안에 있다.

복도에서 전교생이 날 보며 수군대던 그 순간에 나머지 한손을 잡고
“괜찮아, 너는 잘못하지 않았어.” 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나의 선물 친구에게도

지금까지 나와 같이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할 수 있음에,

분에 넘치도록 감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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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따돌림과 관계의 트라우마 (3) -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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