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이닥친 파도와 일하지 않는 사람들

불쑥 맞이한 위기

by 김민제

올 겨울 첫눈이 폭설이 되어 내리면서, 급작스런 대설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단 소식이 들린다. 해군 장교가 되어 강원 동해에서 근무하던 그 해 겨울에도 눈이 정말이지 지겹도록 많이 내렸다. 종일 일과가 눈 치우기였고, 차들이 다니지 못해 걸어서 출근하거나 심지어 출근을 못한 날도 있었다.



며칠 전 중부지방에 내린 첫눈이 폭설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었다고 한다.(사진=BBC코리아)




해와 그다음 해를 헤쳐가던 시기는 폭풍 같은 눈이 휘몰아치는 험준한 산맥처럼, 격랑의 파도를 넘어가 것처럼 험난했다. 쉽게 말해 위기였다. 참으로 견디기 어려다. '위기'의 사전적 의미와 같이 그때는 위험한 고비 혹은 그런 시기였다. 감당하기 힘든 일이 닥쳐올 때, 정신적인 고통과 극심한 우울이 삶의 회의를 느끼게 하고 평소에 하지 않던 고민까지 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럴 때는 주변에 의지할 만한 사람을 처절한 심정으로 찾게 되는데, 그저 말 한마디 들어줄 사람 단 한 명이라도 필요하다.


당시 해군 함정에 료를 보급하고 유류시설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업무적으로 정말 많은 문제들이 일어났다. 구체적인 설명은 할 수 없지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좋지 않은 일들이었다. 이제 겨우 2년 차, 아무리 장교라도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던 시기였다. 같이 근무하는 경험 많은 부서원들의 적극적인 대응과 도움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수없이 벌어지는 위기 상황에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들은 일과 시간에 주로 휴대폰 게임을 하거나, 웹소설을 읽었다. 일상적인 업무는 몇몇의 똘똘한 병들이 전담하다시피 했다. 경험이 많은, 자기 분야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사람들이었지만, 말의 관심조차 없었다. 돌파구는 없었다. 스스로 법령과 규정을 공부하고, 알 만한 사람들을 찾아 머리를 조아리며 자문을 구해야 했다.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지식을 쌓아야 했고, 동시에 벌어진 문제들도 수습해야 했다. 겨우 알게 된 지식을 동원해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답은 이러했다.


"직접 보고 말하세요."

"왜요? 왜 내가 해야 되는데요?"


모두가 잠든 새벽시간을 불사하고 긴급한 일에 대응하고 있을 때도 그들의 태도는 여전했다. 그나마 말이 통하는 병들과 한 명 정도의 어린 부사관을 데리고 지하공동구에 들어가 원인을 확인하고 해결책을 연구했다.


떤 하루엔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파도가 눈앞에 밀려온 순간이 있었다. 받는 전화마다 협박성 어조에, 상황 수습을 위해 몸은 녹초가 되었을 때. 풀 충전 상태였던 휴대폰이 무수한 통화로 인해 오후 서너 시에 불과한 시간에 배터리가 1퍼센트가 되어버렸을 때. 더 이상 무슨 말이 소용이 있을까란 생각을 했을 때. 머리끝까지 파도에 잠겨 눈과 귀가 틀어박혀 버린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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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 있는 배관의 상태를 알기 위해 맨홀 뚜껑을 열다 손가락 골절을 입었고, 반복된 동작으로 손목의 인대가 파열되어 수술을 받았다. 동시에 어머니가 암 투병을 했고, 아버지가 고소를 당해 하루아침에 실직하셨다. 자기 생일이라며 차를 몰고 부산에서 6시간 거리를 올라와 같이 좋은 시간을 보냈던 고향 동네 후배가 불과 일주일 뒤 하늘로 갔단 소식까지 날아들었을 땐, 처음 나에게 자살이란 단어가 다가왔다.


모두 같은 시기에 일어난 일. 의지할 곳이 반드시 필요했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벅저벅. 악마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