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넘어 향한 곳은

운명을 바꾼 복무연장과 세계일주

by 김민제

지난 지면에서 이야기했듯이 당시 2년 간은 나에게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이었다. 아끼던 고향 동생의 례식장에선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일이 임박한 것 같았다. 끊임없는 늪으로 빨려드는 것도 모자라 거대한 암흑이 날 삼켜버릴 것 같았다. 화살은 전방위에서 날아왔다. 이게 전쟁이라면 인정사정없는 공세였다.


오른손잡이지만 왼손으로 카톡을 보내나 마우스를 썼고, 겨우 반찬을 들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손목 수술 후유증을 검색했다. 예상할 수 없는 시간에 '큰일이 일어났다'는 내용의 전화가 울릴 때면 심장이 마구 뛰었다. 마치 폭풍우 속에 간신히 몸을 숨긴 아기새가 달달 떨고 있는 모양새였다. 휴대폰은 시간이 지나면 폭발하는 시한폭탄 같았고, 목에 메고 다니는 공무원증은 가시 돋친 올가미였다. 엇보다 가장 큰 고통은 차가운 시선이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장교복무 3년 중 전역까지 6개월이 남았지만, 이 6개월을 도저히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인사 상담을 할 때 복무 연장을 내겠다고 했다. 그러면 다른 곳으로 발령 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일요일, 이 날도 시도 때도 없이 요동치는 심장을 재우려 절에 가는 중 전화가 왔다. 고향 부산에 보내줄 테니, 함정 근무를 하라고 했다. 그러겠다고 했다. 함정에 근무한 적이 없었지만, 하늘이 나를 딱하게 여겨 밧줄을 내려준 것 같았다.


첫 함정근무로 화천함이라는 군수지원함에 승조하게 되었다. 당시 기준 건조된 지 20년이 넘어간 함정이어서 그랬는지 적응이 쉽지 않았다. 우리 함은 얼마가지 않아 순항훈련 참가함정으로 선정됐다. 해군 역사상 최장기간(아직 그 기록이 깨지지 않았다)의 세계일주 항해라고 했다. 나는 보급장교라 그 기간의 살림살이를 미리 준비해야 했다. 우리 함은 해외에 나가기 전에 1년간 해야 하는 모든 훈련과 수리를 마쳐야 했으므로, 쉴 틈 없이 스케줄이 이어졌다. 한창 순항훈련을 준비하던 시기, 정박 중에는 밤 11시가 넘는 시간에 퇴근하고, 아침 7시면 출근했다. 그래도 시간이 항상 모자랐다. 밥을 산더미로 쌓아서 먹어도 몸이 허전했고, 일 때문에 항상 혼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마음이 가벼웠다. 지옥에서 살아 나온 해방감이 모든 굴레를 이겨냈던 것이다.


"2019 순항훈련" 구글 AI검색 캡쳐




해군 군수지원함(AOE-I) 화천함(사진=위키백과)





막바지 여름이 기승을 부리던 8월이 끝나가던 어느 날, 해군사관학교 4학년 생도들을 태우고 출항했다. 부두에서 배웅하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고 있는데, 나는 미처 끝내지 못한 일 때문에 통화 중이었다. 그 순간에는 '쟤네가 왜 밖에서 손을 흔들지?'라고 생각했다. 아차, 휴대폰 정지를 못했다고 생각했을 땐 배가 이미 저만치 먼바다로 나가는 중이었다. 함수가 향하는 곳은 첫 기항지, 필리핀이었다. 12개국 14개 도시로의 항해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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