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항해가 남긴 것은

역대 최장 해군 순항훈련(1)

by 김민제

12개국 14개 기항지를 오직 군함으로 일주하면서, 많은 기록을 남기지는 못했다. 수많은 행사와 식사, 보급을 위해 많은 시간들을 쏟았기에 남은 것은 단지 몇 장의 사진뿐이다.


우리는 필리핀을 시작으로 베트남과 태국을 지나 인도로 향했고,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이집트에 들어갔다. 지중해에 들어서서는 이탈리아 로마를 거쳐 북유럽 3개국(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에 기항했다. 이어서 북대서양을 횡단했고, 미국 노퍽을 지나 파나마운하를 통과해 콜롬비아에 도착했다. 미국 샌디에이고와 캐나다 빅토리아에 다다른 후, 다시 태평양을 횡단해 하와이를 끝으로 돌아왔다.


기항지별 2박, 3박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입항일과 다음날은 필요한 식료품을 싣거나 교민과 해당국가 군인들을 위한 환영행사를 치르느라 그 나라를 돌아볼 시간은 거의 없었다.




순항훈련을 준비하다가 내가 만든 수많은 보고서에 질려 뭔가에 홀린 듯 사진을 찍은듯 하다


대원들의 환전, 현지 여비를 국민은행과 협의해서 직접 챙겼고, 행사와 약 5개월의 함정생활을 위한 각종 물품(행사용품, 기념품, 급식품 등)들을 준비하고 저장 관리했다. 함정에서 운영한 모든 창고 열쇠는 나에게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발소와 매점 등 복지운영까지 겸했다. 고된 항해 일정의 위로가 되었던 식사, 이것도 내 영역이었다. 야식 포함 하루 네 끼니, 250명분의 식사 준비를 감독하고 전처리를 도왔다. 물론 이런 업무들은 실무자와 병들이 일선에서 몸과 마음을 바쳐 열심히 해주었기에 가능했다. 정박하면 현지 교민과 동맹국 해군, 군 관계자들을 위해 준비한 음식을 차려 맞이했다. 급장교로서 순항훈련을 위한 핵심 살림꾼이었던 것이다.






한국 에이전트를 통해 현지 식재료를 공수했다. 장기 저장을 위해 덜익은 바나나와 망고를 받았다.



세계일주로 장기 항해를 하다 보니 항상 오래 쌓아둘 음식들이 필요했다. 가는 곳마다 매번 계약이 이루어졌고 나라마다 물가차이로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부두까지 배송이 되지 않는 나라에서는 새벽 1~2시에 식품 공수를 위해 마트로 직접 차를 타고 나가 시장조사를 했다. 나라마다 물가가 달라서 예산 낭비 우려가 있었지만, 장기항해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많이 사둬야 했다. 북대서양 횡단을 준비해야 했던 노르웨이에선 한 번에 8천만 원 이상의 금액에 해당하는 음식을 실었다. 수를 위해 품과 딸려온 세표를 보고 말그대로 뜨악했던 기억이 난다.







해군 순항훈련은 해군사관학교 4학년 생도의 교육훈련과 군사외교가 목적이기에, 생도들에겐 견문을 넓히고 군사적 소양을 쌓기 위한 아주 특별한 기억이 많았을 거라 본다. 그러나 나에게 생도들은 개조된 침실에서 잘 잘 수 있게 침구류나 제습기 같은 걸 챙겨주고, 양질의 식사를 하도록 메뉴와 급식 계약을 신경 써야 하는 고객님들이었다. 렇지만 고맙게도 생도들이 마냥 고객 행세를 하지는 않았다. 행사 준비를 위해 매번 힘겨운 상하차 작업이 필요했는데, 박스들을 수십 개씩 나를 든든한 작업이 되어주기도 했다. 일 시키는 게 미안해서 급식하고 남은 컵라면이라도 챙겨줬는데 그조차 감사해하던 모습이 선하다.


훈련 막바지에 도들이 순항훈련 중 감사한 사람 아무나 한 명에게 편지를 써주는 시간이 있었는데, 내가 잘 챙겨줘서 감사하단 내용의 편지를 받았 땐 정말 뿌듯했다. 중동국가 수탁 생도가 있어서 스프에 돼지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컵라면 종류들을 골라서 따로 챙겨줬는데, 그게 참 감사하다고 했던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현지에서 구해 온 포토카드에 진심을 빼곡히 담은 편지 한 장은 나의 세계일주가 남긴 뜻깊은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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