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항해가 남긴 것은

역대 최장 해군 순항훈련(2)

by 김민제


여행유튜버 빠니보틀님의 최근 영상으로 해군 순항훈련 일부구간 여행기가 올랐다.





기나긴 항해가 끝나고 현지 군항에 도착하면 하루는 종일 일정으로 환영행사를 진행했다. 주간 중에 견학을 위해 함정을 개방했다. 손님들을 위해 점심식사를 제공하고 저녁에는 환영회(리셉션)를 열었다. 여건이 되지 않는 곳은 점심식사를 제공하지 못했다. 견학을 하고 나가는 방문자들에게 주류업체에서 후원받은 소주를 기념품으로 제공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특히 추운 나라들, 북유럽국가 현지인들이 많이 반겼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 함정을 찾아주신 현지 교민에게 맛있는 한식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환영행사에서 운영한 칵테일바의 반응이 뜨거웠다.

사진에 생수가 보여서 말인데, 생수는 자그마치 1만 병이 넘는 양을 가져갔다. 이렇게 많은 생수가 필요할까 싶었지만, 군함에서 먹고 자고 심지어 오랜 기간 원양을 나서는 이들에겐 말 그대로 필수품이었다.

환영행사에서 군악대가 공연을 하고, 비트박스, 비보이와 태권도, 해병대 의장대 등 각자가 준비한 것들을 보여줬다. 열 번이 넘는 공연, 항상 조금씩 다른 내용의 공연을 준비했던 특기병들과 간부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덕분에 그 나라 특유의 분위기가 어우러져 특별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모든 행사에 피날레를 장식했던 <아름다운 나라>가 흐르던 때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순간이다.





미국에서 이국종교수님이 편승하셔서 해군 응급의료 교육훈련을 하셨다. 식사 후 커피 한잔 마시다 찍은 사진이다.


사진에서 소개된 바와 같이, 이국종교수님이 우리가 미국을 지날 때 즈음 편승하셨다. 긴 항해기간 동안 낮에는 주로 응급처치훈련을 직접 주관하시며 원양에 나간 해군 함정에서 발생한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전파하려고 하셨던 것 같다. 당시 아주대병원에 계실 때고 워낙 유명하셨을 때라 같이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지 말아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군의관, 군종장교와 룸메이트였던 나는 이국종교수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꽤 많았다. 교수님은 다정하고 친근한 분이었다. 군 갑판병 출신으로 해군 사랑을 몸소 실천하시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것은 참 특별한 경험이었다. 개인의 신념과 경력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를 배울 수 있는 날들이었다. 늘 함께여서 미처 보지 못했던 멋진 필승해군의 단면이었다.







파나마운하를 건너는데는 시간이 오래걸려 사진 찍을 시간이 많았다. 배가 지나가려면 대양과 대양사이 바다의 높이가 달라 물을 채우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파나마운하를 통과하고 콜롬비아에 닿았을 때 이곳이 세계 여러 나라들 중 가장 생소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인종 국가였고, 더운 나라였으며, 거리의 분위기가 아주 활기찼다. 우리 외에 한국인을 거의 보지 못했으므로 현지인들이 우리를 신기해하며 "꼬레아"를 외쳤던 기억이 난다. 여기서도 나는 본분을 잊지 않고 장교들과 손님들이 마실 콜롬비아 현지 원두를 공수하기 위해 이곳저곳 카페들을 다녔다.






평소 대비 두 배가 넘는 인원이 탑승한 배의 살림살이와 행사준비를 단기간 내 해야 했기에 도무지 정신 차릴 틈이 없었다. 이래서 해군에 강인한 체력과 책임감이 필요한 장교가 필요한 것인가란 생각을 처음 했다. 2주씩 장기항해를 하면서 이런 스케줄을 소화했을 땐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던 것 같다.


련을 지나오며, 내가 그동안 준비한 것들이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우리 함정을 찾아주신 국가보훈부 장관과 악수를 했고, 산업통상부 장관 표창 추천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결국 장관님 상은 받지 못했지만 순항훈련전단장께서 직접 표창하셨다. 이 표창 당시엔 내가 장기복무를 하지 않는 상태였는데, 훈련준비와 행사운영에 기여한 순수한 노력만으로 상이 주어졌기에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망망대해 위 치열했던 하루하루는 흔들리던 내 마음을 지탱하는 단단한 기둥이 되었다. 1만 병의 생수만큼이나 수없이 간절했던 시간들, <아름다운 나라>의 선율 속에 마주한 소중한 인연들은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끌어내주었다. ​세계일주가 나에게 남긴 것은 화려한 상장이 아니라, 앞으로 맞닥뜨릴 어떠한 격랑의 파도 앞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나에게 가장 눈부신 기념품이었다.



이전 09화세계일주 항해가 남긴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