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돕는 삶으로

꿈을 찾아서(3)

by 김민제

20년 인생을 뒤흔들만한 돌풍 같았던 해외봉사가 끝나고, 무턱대고 그들을 돕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어디선가 '넌 할 수 있어'라는 응원의 메시지가 들린다는 착각을 할 정도로 그야말로 열정이란 것이 타올랐다. 우선 손에 닿을 만한 목표가 필요했다. 우리나라 남성 성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졸업 후 입대를 해야 했던 나는 아무래도 조바심이 났다.

봉사활동에서 사람들을 돕는 삶을 살고자 하는 꿈이 생겼기에, 캄보디아인들은 주로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했다는 데서 목표의 출발선을 찾고자 했다. 직접적으로 그들을 돕고 있는 국제구호와, 그들의 생업인 농업에 관해 활발한 활동과 연구를 해오고 계신 분들의 발자취를 좇고자 노력했다. 책을 읽고, 관련분야 연구를 하신 교수님의 수업을 신청하고 개인면담을 했다. 스케치하듯 청사진의 윤곽을 조금씩 그려내 보려는 노력이었다.


캄보디아 현지인 친구 A의 가업은 농업이었고, 그 나라의 주력 산업이었기에 농업에 관심이 갔다.





농업은 1차 산업혁명, 살아가는 데 기본이 되는 '먹는'일의 출발점으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우리나라 농업은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국내에서 각광받는 산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는 결코 도외시될 수 없는 법. '6차 산업'으로 재도약하는 농업의 발전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낮은 식량자급률을 극복하고, 기후와 식량위기에 대비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산업이 더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농업을 들여다보니 이과계열 공부를 하거나 직접 귀촌는 것이 농업에 다가갈 확실한 접점이었다. 일단 아는 만큼 보일거란 생각에, 농업 관련 전공을 복수전공으로 신청해서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우리 캠퍼스에 전공이 없어서 전철을 타고 천안까지 다녔다.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현실의 벽은 냉담했다. 여태 문과로 살아왔던 탓인지, 순수과학 공부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어버렸다. 내가 만든 이상향에 가까워질 수 있단 설렘을 안고 시작했지만, 공부도 어렵거니와 평소보다 두 배, 세 배는 더 필요했던 여비와 시간 때문에 점점 지쳐갔다. 결국 수중에 돈이 없어 매일 라면만 먹게 되고,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져 갔다. 젊음의 패기는 허울만 좋은 허상일 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체력이 떨어지고 잘 먹지도 못하니 어두운 원룸 방 안에서 영혼이 빠져나가 떠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은 처음으로 가위에 눌려 식은땀을 흘리면서 벌떡 일어나기도 했다.



사람의 온기란 전혀 느낄 수 없는 차갑고 두꺼운 손이 내 손을 잡아 끌었고, 눈을 뜨니 환한 빛이 시야를 꽉 채워 쏟아졌다. 주변을 돌아보니 몸이 떠올랐고, 아무리 고함쳐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대로 떠나는 건가. 희미한 의식이 지푸라기처럼 약하디 약한 끄나풀에 겨우 붙잡혀 있는 것 같았다. 참 무섭고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재정비가 필요했다. 침침한 새벽, 말 없는 벽지에 시선을 기댄 채,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지금까지 주로 무엇을 하고 살아왔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나는 글쓰기와 리코더를 좋아했지만 인생을 걸어볼 만큼 용기가 나진 않았다. 내가 좋아하진 않았지만 주로 했던 것은 그저 앉아서 주어진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방향을 잘 잡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전공으로 선택한 경제학 경제학의 갈래(지역경제학, 생태경제학, 행복경제학, 농업경제학...) 들을 살펴보다 농업경제학에서 멈춰 섰다. 농업이 지향하는 바대로, "땅을 딛고 같이 잘 사는 고민"을 이어나갔다. 현장의 농부들과 농산물을 소비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모든 이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내가 나아갈 구체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정책에 기여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지. 그럼 무슨 공부를 해야 할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 끝에 펜으로 꿈을 이루려면 대학원에 가야겠단 생각에 이르렀다. 사나이 한 번 사는 인생, 을 꾸는 만큼 꿈은 크게, 해외 유학에까지 생각이 닿았다. 그 중에서도 스마트 농업분야에서 선도적인 나라인 네덜란드로 유학을 하고 싶었다.




세계최대 농업국가인 미국과 첨단 농업의 선두경쟁에서 어깨를 나란히하는 네덜란드 Wageningen 대학교에 공부를 하러 가고 싶었다. (사진출처 Wageningen UR)



농업경제 정책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학과 교수님들을 찾아뵈었다. 교수님들은 진지하게 들어주셨지만, 일단 군 문제를 해결하고 오라 셨다. 해군장교가 되면 남들보다 조금 힘들고 긴 군생활이 되겠지만, 좋은 경험을 쌓고 강인한 남자가 되어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시간이 들고 힘이 드는 만큼 더 높고 멀리 갈 힘이 생길 거라 믿었다.


땅과 땅에서 자라난 녹음이 주는 축복, 그 덕에 두가 잘 살아간단 이야기들을 만드는 데 내 힘이 미칠 수 있을 거란 꿈을 꾸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돕는 삶으로 나아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