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장교의 당당하지만 얼룩진 결혼식
새해가 밝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1월이 중순으로 접어드는 시기다. 부정할 수 없는 겨울의 한가운데. 어쩔 도리 없이 옴짝달싹 추위 속에 갇혀버린 기분이다. 이곳은 부산이라 그나마 괜찮지, 윗지방 동장군의 기세는 상상조차 할 수 없으리라.
이런 추운 겨울이 다가오던 어느 가을밤, 제주도에 정박한 율곡이이함 갑판에서 휴대폰을 든 채 손톱을 깨물며 서성거렸다. 달빛이 그날따라 휘황찬란하게 빛났지만, 그 빛의 온도는 몹시도 시리게 느껴졌다. 짐짓 비장한 얼굴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12월에 결혼하겠다고 말했다.
떨려오는 수화음 때문인지, 휴대폰이 스스로 몸을 바들바들 떠는 것 같았다. 아니 이러는 법이 어딨냐는 거였다. 단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결혼이라니. 정말 너무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결연했다. 내가 결정한 결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생각이었다.
내막은 이러했다. 어머니는 먼저 결혼을 앞둔 동생이 있으니 동생부터 치르고 내년 가을께 식을 올리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내가 이미 정한 시기에 식을 올리고 싶었다. 이왕 해군 장교로 생활하기로 한 인생, 국가 전략자산 중 하나인 이지스구축함에서 멋진 일년을 보냈던 바로 그 인연에게 축하받고 싶었다. 무엇보다 나를 기다려준 아내를 위해, 함정 근무가 끝날 때쯤 결혼하자는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다.
시간은 파죽지세로 흘렀고 우리 함은 여전히 바빴다. 이미 한참 전에 예약해 둔 웨딩촬영 날 휴가를 갈 수 없게 되었고, 사정 사정해서 결혼식이 거의 임박해 촬영을 진행했다. 11월 말까지도 긴급출항이 이어졌고, 결혼식의 주인공이 불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까 조마조마했다.
결혼 당일, 빈틈을 쪼개 성실히 연락했던 덕인지, 정말 뜻밖에도 많은 분들이 와주셨다. 해군을 비롯해 함께했던 수많은 인연들이 나타났다. 특히, 큰 일을 당하신 아버지 곁에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거늘, 아버지의 친구분들까지 오신 모습을 봤을 때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혼주로서 화장을 하고 멀끔하게 차려입은 부모님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라고.
사실 부모님은 식을 올리기 불과 몇 개월 전에 이혼을 단행했다. 내가 결혼 시기를 멋대로 잡은 것이 이유라고 했다. 지난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별거하시던 부모님이 장남의 결혼을 계기로 다시 가까워지길 바랐던 것은 내 나름의 성대하고도 소박한 소원이었다. 결혼이란 인류의 대서사가 시작된 결정적인 계기이자, 오직 인간만의 축복이잖은가. 이 화려한 문 앞에서 이루어진 뜬금없는 이혼은 이미 벌어진 상처를 가열차게 후벼 파 소금을 뿌려버린 사건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이 사태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지만, 부모님께선 약해질 대로 약해진 마음 탓에 주변 소리에 쉽게 휘둘려 다소 엽기적인 행각을 하신 게 아닌가 짐작한다.
이런 배경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 당당한 해군장교의 결혼식은 기어코 진행됐다. 수많은 하객 속에 후배 장교들의 예도로 만든 길을 당차게 통과했다. 아내의 조카들이 수놓은 꽃잎들을 밟으며 전진하는 순간,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각자가 서로를 위해 준비한 노래와 춤으로 1시간을 가득 채운 우리만의 결혼식. 그 이야기의 마지막 순간까지 객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반짝이는 눈빛이, 앞으로 이어지는 인생에 드리워질 그림자를 미리 다 걷어내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