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고유한 것에 대하여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가?

by 메시
위키드, 얼마나 재미있어요?


우리는 이 답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 어떤 논리적인 설명보다 그 영화를 보고 남자친구와 함께 손잡으면서 웃거나 슬픈 장면에서는 콧물이 날 정도로 울음을 내는 것이 가장 직접적인 답변일 것이다. 그 경험은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추상적인 질문은 언제나 개인적으로 실체화되면서 비로소 최고의 답변이 된다.


당신은 왜, 살아요?


우리는 이 답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아가보자.

1914년, 네덜란드 미델뷔르호에서 한 "에티 힐레숨"이라는 여자아이가 태어난다. 아버지는 라틴어를 가르치던 고전어 유대인 교사, 어머니는 러시아에서 온 유대인이었다.

image.png 네덜란드 미델뷔르호

나치는 부모의 유대인 여부에 따라 "유대인"을 정의하였고, 부모가 모두 유대인이었던 에티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 불행한 것은 살아있을 때 마주치는 지옥들이었을 것이다.

에티의 어머니 레베카는 1907년 경 러시아에서 일어난 유대인 학살(포그롬)을 직접 목격하고 정신이 분열되었다.

이 트라우마로 인하여 레베카는 정서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하였고, 가정에서 폭력적인 반면에 아버지 루이스는 이를 감당하지 못 하고 혼자 자기만의 세계로 숨게 된다.

image 1.png 포그롬, 그 사건은 레베카의 삶을 처참히 부셔놓았다.

그녀의 매일 지옥 같은 유년시절과 청소기 시절은 에티에게 극적인 공허함이라는 가슴의 구멍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19세 성인이 되고나서 매일을 우울증과 불분별한 성교를 하게끔 만들었다. 그렇게 수 년을 무의미한 삶을 보내고 난 뒤 그녀가 27세가 되던 1941년, 율리우스 스피어라는 심리치료사를 만나게 된다.

https%3A%2F%2Fbucketeer-e05bbc84-baa3-437e-9518-adb32be77984.s3.amazonaws.com%2Fpublic%2Fimages%2F94f997e3-7aa2-4092-bfbe-103ff9e83454_763x514.jpeg 율리우스 스피어, 그는 칼 융의 제자였고 손금읽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있어 심리적 손금술(Psycho-Chirology)이라는 독특한 방법을 개발한다.

그는 칼 융(Jung)의 제자였고, 그녀에게 "매일 일기를 써라. 네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기록해라."라고 조언을 한다. 그리고 그 해 3월 9일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우울증, 자신의 감정, 자신의 연애, 일상에 대해서 적게 되었고, 이 시기부터 자신의 일상이 지옥이 되어감을 계속 적어나갔다.

공원, 극장, 대중교통이 하나하나씩 이용이 금지되었고, 주변의 친구들은 하나씩 사라져갔다.

"나는 무릎을 꿇는 법을 배웠다. 화장실 바닥에서, 욕실 한구석에서. 그것이 나의 가장 친밀한 몸짓이 되었다."


1941년 가을에도 그녀는 자신의 일상을 하나하나씩 적어나갔고,

"나는 증오하지 않을 것이다. 독일인을 증오하는 것은 너무 쉽다. 하지만 증오는 나를 파괴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그 권력을 주지 않겠다."


그녀는 자신의 공허함의 해답을 잊지 않은 채 차곡차곡 자신을 적어나갔다.

image 3.png 베스터보르크 수용소

그러던 1942년 7월, 에티는 유대인 위원회에서 일하게 되면서 베스터보르크 수용소를 갈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은 네덜란드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기 전에 머무는 "대기소"였다.

그 장소는 “죽음의 경유지”라고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 베스터보르크 수용소에서 아우슈비츠로 이송되는 기차 안의 사람들의 마음은 고장난 브레이크로 200km로 달리는 자동차 안의 운전자의 마음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곳에서 매주 화요일마다 1000명씩 떠나보내야 하는 에티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녀는 그런 와중에도 매일 꿈을 꾸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삶의 끝에서도 말할 수 있기를 원한다. 삶은 아름다웠다고."


그렇게 그녀는 1년을 보내게 된다. 52,000명. 그녀가 기억하지만 세상에는 이제 없는 얼굴들의 숫자는 늘어나고만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도 천사가 손을 내밀었을까? 친구들은 그녀에게 위조 서류와 은신처를 마련해줄테니 시골로 도망가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그녀는 거절한다.

"도망치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내 민족이 겪는 운명을 함께 나누고 싶다. 그들 곁에 있고 싶다.". "만약 내가 숨어서 살아남는다면, 나는 살아있어도 이미 죽은 것이다."


그리고 1943년 9월 7일, 에티의 가족들은 아우슈비츠행 기차에 오르게 된다.

그녀는 엽서를 창밖으로 던졌고, 베스터보르크에서 있었던 어느 농부는 그 편지를 친구에게 전달해준다.

"우리는 노래하며 수용소를 떠났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글이었다. 그녀가 일기를 적고나서부터의 2년까지의 일이다.

어느 누가 그녀에게 감히 2년밖에 지옥에서밖에 안 살아봤잖아. 30년은 지냈어야지 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 누가 그녀에게 감히 나는 가족이 다 죽어가는 것을 보았어. 너는 이 정도밖에 안 힘들었잖아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느 누가 그녀에게 감히 네가 죽은 이유는 ~때문이야 라고 말할 수 있을까?


너만 잘 살면 돼.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는 게 살아가는 이유야, 어떻게든 살아야만 자식을 번성시킨다는 생물학적 삶의 이유도 에티를 설득하진 못 했을 것이다.

“에티 힐레숨”의 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은 그보다 위대했으니깐.

image 4.png 에티 힐레숨

아래의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지면서 이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당신은 왜,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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