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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황래 Jan 20. 2020

밤 산책 : 동네 한바퀴

익숙하게 살아온 곳이 낯설어지는 순간이 있다

직장인이 되고 나이가 들자 내 몸에서 이상신호가 잡히기 시작했다. 그 중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증상은 저녁을 늦게 먹으면 소화가 안돼 잠을 못자는 것이다. 야식을 먹은 것도 아니고 적당한 시간에 저녁식사를 했음에도 소화가 힘들어 잠에 들지 못했다. 이런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밤에 산책을 시작했다. 천천히 계속 걷다보면 소화가 되면서 장이 편안해지면서 피곤함이 몰려와 쉽게 잠이 들 수 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이런 식으로 계속 산책을 하다보니 오래 살아온 동네도 새롭게 보일 때가 많다.

이 날 간 곳은 모교였던 고등학교의 근처 골목이었다


밤산책은 보통 저녁 8~9시 사이에 출발한다. 여름에는 반팔에 반바지, 봄가을에는 그 위에 후드집업, 겨울에는 롱패딩을 입고 집을 나서는데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라 산책 루트는 매번 크게 다르지 않다. 음악을 들으면서 갈 때도 있지만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에서는 일부러 이어폰을 빼고 차소리나 사람들의 이야기소리를 들으면서 지나간다. 풍경은 매번 비슷하지만 나의 상황은 매일매일이 다르기에 고민되는 일이 있을 때에는 그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걷는다. 고민되는 일이 있을 때에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결론이 안날 때도 있지만, 좀 더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밤에도 가로등이 많아 딱히 무섭거나 하지는 않다


산책을 하다보면 그 동안 몇 번씩 지나쳤던 골목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그리고 갑자기 그 골목으로 들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밤에 구석진 골목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 우리나라의 치안이 그만큼 훌륭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가로등도 요즘엔 꽤나 잘 되어 있어서 골목을 들어가는데 거리낌이 없다. 골목을 들어간다고 특별한 무언가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이 하나의 길을 두고 양쪽에 펼쳐져 있는데, 크기와 생김새가 모두 제각각이라 여러번 둘러보게 된다. 내가 사는 동네는 큰 아파트 단지보다는 주택들이 많은 동네인데 신축부터 몇십년 정도 되어보이는 구축 건물들까지 다양하다.

아파트에 대한 로망이 있다. 한번쯤은 살아보고 싶다


모르는 골목을 들어가 여기저기를 보면서 길을 따라 걷다보면 갑자기 큰 길이 나올 때가 있는데 내가 아는 길이 나올 때 신기한 느낌이 든다. 버스를 타고 자주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골목에 들어갈 일이 없다보니 이렇게 이어진 줄을 몰랐던 거다. 30년 가까이 태어나고 자란 동네를 이렇게 몰랐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금 동네가 새롭게 보인다. 걸어서 집에 들어가야 하기에 너무 먼거리까지 나올 수는 없지만, 길을 걷다가 들어가보고 싶은 골목길이 있으면 다음을 기약했다가 들르는 식으로 산책을 하고 있다.

익숙한 골목. 집으로 가자

처음에는 숙면과 운동을 위해 시작한 산책이 이제 어느새 취미가 되어가고 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별 시덥잖은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오래 살았던 동네를 다시금 돌아보게 해주는 계기가 되기도, 새로우 경험이 되기도 한다. 매일 걷던 익숙한 거리 말고, 낯선 거리를 가끔 걸어보는 일이 새로움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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