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를 안하는 마케터가 마케팅을 할 수 있을까?
대학교부터 전문 학원까지 마케팅 강의를 들으러 가면 열에 아홉은 첫 시간에 이런 질문을 한다.
이런 저런 대답들이 나온다. 그러면 그 모든 답들을 맞다고 말하며 본인이 생각하는 마케팅의 정의를 말하면서 본격적인 강의를 시작한다. 마케팅을 처음 배우는 초보자들의 어줍잖은 대답도 어떻게 생각하면 대부분 어느정도 답은 할 수 있는 게 바로 마케팅이다. 그만큼 업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는 거다. 하지만 '마케팅(Marketing)'이라는 단어에는 돈을 쓰는 '소비'라는 키워드를 빼놓고 생각할 순 없다. 쉽게 정의하면 마케팅은 사람들이 '돈을 쓰게 하는 모든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구입하거나 어떤 서비스에 가입한다. 자기 돈 쓰면서 사는 것이기에 이유가 필요할 것이다(남에게 자선사업하는 게 아니니까). 마케터는 그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 그래야 광고하는 제품에 해당 이유를 잘 표현한 광고를 낼 수 있으니까. 광고의 기본은 구입의 이유를 파악하는 거다. 예를 들어보자.
'나이키' 운동화를 구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 많은 사람들이 나이키를 구입하지만 그 이유는 각기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특유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나이키를 신고 광고에 나오는 모델의 팬이라서 따라 구입할 수도 있다. 나이키 브랜드 자체가 좋은 사람은 별다른 이유 없이 '나이키라서' 신상 운동화를 구입할 수 있다. 구입 이유를 통해 해당 브랜드의 강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나이키를 사지 않는 사람들은 왜 안사는 것일까? 앞의 이유와 반대의 이유라서 사지 않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유가 나올 수도 있다. 나이키 운동화를 사고 싶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차마 못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신었을 때의 착화감이 불편해 구입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마케터는 사는 이유와 사지 않는 이유 모두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 자체가 브랜드의 강점과 약점이라고 볼 수 있으니.
근데 나는 왜 이럴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마케터로서 엄청난 패널티를 안고 출발한다. 바로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내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은 '필요하기 때문에' 구입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않는다는 의미다. '예뻐서?', '그 브랜드가 좋아서?', '그냥 끌려서?' 사는 법이 없다. 굳이 돈을 아끼기 위함은 아니다. 필요하지 않는데 '굳이 살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사람들에게 브랜드의 제품을 사게끔 하는 마케팅이 남들보다 더 어렵게 다가온다.
광고를 하기 위해 '기획회의'를 할 때는 브랜드와 제품의 특징과 장점 등을 나열한 다음 그것을 어떻게 고객들에게 어필할지를 고민한다. 예를 들어, 의류 브랜드를의 옷을 구입하는 이유를 이야기한다고 한다면, '옷이 없어서' 구입하는 사람은 절대 없을 것이다. 특히 의류 같은 건 '필요'가 구매 이유가 되는 경우가 없다. 있는 옷 깨끗하게 잘 빨아서 입으면 되니까. 옷장에 옷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아, 오늘 입을 옷이 없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이용하는 것이 시작이다. 하지만 나는 그 생각은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 아이디어를 내기가 힘들다.
그래서 더더욱 공부한다
알 수 없다면 공부해야 한다. 광고대행사에 있으면 정말 다양한 업종의 브랜드를 만날 수 있게 되는데, 그 때마다 업종과 브랜드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다. 그렇게 몇 번의 과정을 거치면 그 다음부터는 어느정도 한 눈에 보면 파악이 가능할 것 같다. 어디를 파고들어야 하는지, 이 부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고객들에게 구입을 어필할 수 있을지 등등... 이런 건 시간과 경험이 해결해줄 것이다. 내가 해야할 일은 그 외의 것이다. 광고 매체에 대한 이해, 광고시스템에 대한 이해 등 기능적인 부분들이 갖춰지면서 광고주에 대한 경험은 차근차근 해나가다보면 AE에 조금씩 가까워지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