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아빠가 암이라고 한다

by 김황래

지금 이 글을 처음 쓰는 날은 12월 8일이다.

언제 끝맺음할 지 모르지만, 이 글은 점점 잊혀져 갈 아빠에 대한 마지막 기억을 남기기 위함이다.

이렇게라도 해놓지 않으면 몇 십년이 지났을 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아서다.




<2020년 4월 18일>


퇴근하고 집에 갔는데 소파에 앉아있던 아빠가 가슴을 누르면서 명치가 아프다고 했다. 이전에도 그런 말을 종종 했기에 나는 컨디션이 안좋거나 무언가 먹고 속이 안좋아졌다고만 생각했다.하지만 아빠는 이때부터 아셨을 거다. 전과는 다르다는 걸.



<2020년 4월 20일>


전 날, 아빠가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이 날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갔다. 나는 오후 반차를 쓰고 병원으로 갔다. 아빠는 본인의 증상에 대해 검색을 해본 후 '위궤양' 같다고 했다. 위경련에 대해 검색해보니 명치가 아픈 증상이 나왔다. 그래서 나도 그런 줄 알았다. 병원 가서 진찰 받고, 필요하면 주사 맞고, 약 먹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아빠는 큰아빠와 함께 병원에 먼저 갔고, 나는 그 뒤에 도착했다.


MRI 결과지를 유심히 지켜보던 의사 선생님은 위가 아니라 간에 문제가 있는 거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종양'이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종양. 순간 소름이 돋았다. 모 연예인은 건강검진을 받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제거했다는 종양. 하지만 그 단어 앞에 '악성'이라는 접두어가 붙는 순간 그것은 '암'이라는 단어로 바뀐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동네 큰 병원의 의사선생님은 종양이 '의심된다'고 만 하셨다. 그러더니 큰 대학 병원에 가서 소견을 들어보라고 권하시더니 검사지를 챙겨주셨다. 집에 가는 차 안에서 나와 아빠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대학병원에 빨리 예약이 되어, 며칠 뒤에 큰아빠와 아빠, 나는 연세대 안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으로 갔다.



<2020년 4월 22일>


당시에도 코로나가 심했기 때문에 병원 앞에서 열체크를 하고, 자가 문진표를 각자 작성한 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동네 병원에서 받은 검사지를 들고 진찰실 앞에서 기다렸다. 암병원에 가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고, '암센터'로 갔다. 그 곳에는 의사 선생님들이 계신 여러 방들이 있었는데, 동네에서 찍은 검사 결과를 가지고 대학병원 의사 선생님들에게 정확한 병명을 듣는 곳이었다. 수많은 방 앞에 수많은 당사자들과 가족이 있었고, 우리도 그 중 하나였다. 자리가 없어보여 아빠는 앉아 있었고, 나는 서있었다. 그 때에도 나는 혼자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아니겠지, 그냥 종양이겠지. 설마 암은 아니겠지'


시간이 많이 흘러 우리 차례가 되었다. 들어가서 서류를 드리니 한참을 살펴보시고, 미리 전달된 MRI 검사 내용이 들어있던 CD를 보시던 의사 선생님은, 잠시 동안 말이 없으셨다. 한참이 지난듯한 시간이 흐른 뒤, 의사 선생님이 운을 띄우셨다.


"암인 것 같습니다."


순간 멍했다. 우리 아빠가 암이다. 그 뒤에 드라마에서 많이 듣던 대사가 나왔다. "좀 많이 전이됐습니다. 꽤 넓게 암세포가 퍼져 있어요." 그러면서 의사 선생님은 우리 세 사람에게 MRI로 찍은 아빠의 간 사진을 보여줬다. 작아보이는 간에는 암세포가 절반 가까이 퍼져 있었다. 나머지 절반도 군데군데 암세포로 보이는 자국들이 보였다. 그 때도 나는 애써 치료 받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암이 무서운 병이라지만, 완치가 아예 안되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내 간 이식해주면 되니까.. 이런 안일한 생각을 했다.


의사 선생님은 아빠에게 잠시 나가달라는 말을 했다. 아빠는 나가고 나와 큰 아빠가 남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환자와 나의 관계를 물었다. 아들이라고 답했다. 잠시 뜸을 들이시던 선생님은 "4기입니다. 많이 퍼졌어요."라는 말을 하셨다. 나는 간 이식에 대해 물어보았다. 하지만 설명을 들으니 간 이식도 1기 정도 되는 초기일 때나 가능하지 이런 상태에서는 이식해도 소용없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남은 기간을 물었다. 길어봐야 세 달이라고 한다. 여기서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아빠를 볼 수 있는 기간이, 그것도 많아야 3개월이란다. 3개월 뒤에는 아빠를 볼 수 없다고 한다. 큰아빠는 한숨을 계속 내쉬었고,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방법을 물었다.


약으로 전이 속도를 늦추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항암제'다. 그래봐야 전이를 늦추는 것 뿐이지 병을 치료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먹겠다고 했다. 단 몇 일이라도 버텨야 했다. 항암제의 이름은 '넥사바'였다. 넥사바를 먹으면서 치료가 되는 일이 없진 않다고 했다. 거기에 걸어봐야 했다. 넥사바를 먹겠다고 하니 이후 프로세스가 진행되었다. 약에 대한 설명과 부작용, 복용법에 대해 들었고, 설명서 및 복용 기록서 등 키트를 받아 들었다. 처방전을 받고 연대 근처에 있는 약국에서 약을 지어 받았다. 항암제라 많이 비쌌다. 게다가 넥사바만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각종 부작용에 대비한 약들까지 약 개수만 몇 십개가 넘었다. 그걸들을 하루 두 번, 혹은 세 번씩 먹어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큰아빠는 애써 위로를 하며 약 먹고 이겨내보자고 했다. 아빠는 덤덤하듯이 알았다고 했다. 나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야 했다. 암환자인 아빠를 두고 회사를 다닐 수 없다. 휴직을 해야 했다. 휴직을 얼마나 해야할지 몰랐다. 일단 대표님에게 이야기를 하고, 주변을 빨리 정리해야 했다. 기나긴 투병생활이 나와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