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휴직과 입원, 병원생활의 시작

by 김황래

<2020년 4월 23일>


출근을 했다. 회사 동료분들에게는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덤덤한 척 일하고 있는 나를 대표님께서 부르셨다. 연차를 쓸 때 아빠가 아파서 병원에 간다는 말을 이미 했었고, 암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그 당시에는 아빠의 말을 믿고 '위궤양' 같다고 말씀 드렸더니 약 먹고 쉬면 괜찮아지실거라고 위로 받은 상태였다. 그렇게 알고 계신 대표님에게 아빠의 간암 사실을 알려야 했다.


대표님 방에 둘이 앉았다.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아빠가 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간암이라는 단어를 들으신 대표님은 놀라셨다. 나는 그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울면서 말씀 드렸다. '암'이라는 단어를 내 입으로 내뱉으니 감정이 올라왔다. 울음을 겨우겨우 참으면서 상황 설명을 마치자 대표님이 먼저 휴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주셨다. 사실 나는 휴직이 안되면 퇴사도 생각하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아니면 아빠를 간호해줄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도 대표님은 '가족 돌봄 휴직'을 권해주셨다.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휴직이었지만, 대표님은 나를 기다려주셨다. 감사했다.


23일과 24일, 2일 동안 진행하던 업무를 급하게 마무리하고 인수인계 준비를 했다. 나는 27일부터 29일까지 남은 4월의 3일 모두 연차를 썼다. 당연히 인수인계를 제대로 할 시간이 없었다. 휴직을 하고 나서도 틈틈이 인수인계 내용을 문서로 넘기기로 하고, 어느 정도의 일도 하려고 했다. 어쩔 수 없었다.



<2020년 4월 27일>


아빠와 나, 큰아빠는 앰뷸런스를 타고 노원구에 있는 '원자력병원'으로 갔다. 원자력병원은 암 전문 병원이었는데, 검사 결과를 쉽게 믿지 못하는 고모가 다시 한 번 상담을 받아보자고 하셨다. 혹시나 오진이 아닐까 하는 희망을 갖고 계셨던 것 같다. 원래는 29일 수요일에 예약을 해 둔 상태였는데, 아빠가 새벽에 명치 통증이 심해져 급작스럽게 월요일에 앰뷸을 타고 가게 되었다. 새벽에 출발해 아침 8시쯤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문을 두드렸다. 다급하게 상황 설명을 하니 안에서 잠깐 이야기를 하더니 아빠를 받아주었다. 자칫 들어가지 못할 뻔 했는데 다행이었다. 급하게 링겔을 꽂고 진통제를 맞았다.


아빠는 안정을 되찾았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난 후 수요일 외진 예약을 오늘 받을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이미 예약이 꽉 찬 상태였지만 취소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시간이 맞아 오후에 외진을 받을 수 있었다. 꽤나 긴 대기 시간을 거쳐 세브란스 병원에서와 똑같은 분위기에서 의사 선생님과 마주했다. 우리가 미리 제출한 MRI 영상과 진찰 내용을 보시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암 맞네요. 간암입니다."


놀라지는 않았다. 오진이었다면 정말 감사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의사 선생님이 아빠를 내보냈고, 나와 큰아빠가 진찰실에 남았다. 의사 선생님은 나를 보면서 병의 진행 정도를 말씀해주셨다. 세브란스 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말이었다, '4기,'절반 이상' 등의 단어가 들렸다. 입원을 하겠냐는 질문을 하셨다. 잠깐 큰아빠와 이야기를 하고, 그 날 입원을 하기로 했다.


우리가 배정 받은 병실은 4인실이었다. 국립병원이라 그런지 병원비는 비싸지 않았다. 그리고 몰랐던 사실인데, 암은 중증일수록 병원비가 저렴했다. 보험이 많이 적용되는 모양이었다. 환자복을 받고 그 날 오후부터 입원 생활을 시작했다. 각종 검사를 받고, 피를 뽑고, 병원밥을 먹었다.


하지만 나는 입원 준비가 하나도 안 된 상태였다. 아빠랑 내가 입을 옷과 세면도구, 수건 등이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다. 집에 다녀와야 했다. 어떻게 시간을 내서 집에 다녀왔다. 지하철 왕복 3시간이 소요되었기에 내가 들고올 수 있는 물건들은 한정 되었다. 최대한 필수품만 챙기고, 나머지는 병원 편의점에서 사기로 했다. 집에서 아빠와 내 속옷, 겉옷, 수건, 세면도구 등을 챙겼다. 넥사바 등 약과 일을 위한 노트북도 챙겼다. 병원에서의 첫날 밤, 나는 아빠 침대 옆 간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하루가 길었다. 그렇게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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