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암 투병, 모두가 힘들다

by 김황래

병원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암병원의 병실에는 암환자들만 있었다. 병명도 제각각, 진행 정도도 제각각이었지만 모두가 언제 끝날지 모를 투병생활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었고, 우리 아빠도 그랬다. 6개월이 지난 지금도 병원 생활이 기억난다. 하루가 느리면서도 빠르게 갔다.


07:00 - 아침에 일어나 간호사실 앞에서 키와 몸무게를 잰다(전날과 비교)

07:30 ~ 08:30 - 아침식사(한식 및 빵식을 선택할 수 있었다)

09:00 ~ 10:00 - (종종) 필요한 검사가 있으면 검사를 받는다. 1주일에 2번 정도 피를 뽑고, MRI를 찍는다

12:30 ~ 13:30 - 점심식사

17:30 ~ 18:30 - 저녁식사


사실 암 환자에게 하루 일과는 의미가 없다. 밥 시간 이외에는 별다른 할 일이 없다. 잠을 자거나, TV를 보거나 가끔 병동이나 병원 밖 산책을 하거나, 그런 시간들이다. 오히려 간병하는 가족들이 바빴다. 나도 그랬다.


나는 아빠를 간호하면서 일을 해야했다. 미처 하지 못한 인수인계를 위한 파일을 작성하고, 인수인계 파일을 넘기고 받는 동료 직원분이 적응하기 전까지 내 일을 해야했다. 물론 대표님이 편의를 많이 봐주시긴 했지만 물리적인 시간을 극복하기는 힘들었다. 아빠가 주무시는 틈틈이 나는 배선실에서 노트북으로 각종 작업을 했다. 30분에 한번씩 아빠의 상태를 확인했다. 암환자가 된 아빠는 자는 시간이 많았다. 딱히 할 일도 없었다.

나는 3일에 한번씩 집도 다녀와야 했다. 옷가지와 수건을 빨아야 했고, 집도 종종 둘러봐야 했다. 보험금을 받기 위한 준비도 해야했고, 집안일도 처리해야 했다. 다른 가족들은 배우자와 자녀가 번갈아가면서 환자를 돌볼 수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아빠와 나 밖에 없었다. 친척 분들이 가끔 와주셨지만, 한계가 있었다.


입원 초반, 아빠는 통증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셨다. 암환자들에게는 무엇보다 진통제가 제일 중요했는데, 암병동에서 쓰이는 진통제는 먹는 약과 주사, 두 종류였다. 통증이 약하면 주기적으로 먹는 진통제로도 일상 생활이 가능했지만, 통증이 심해지면 즉시 효과가 발효되는 약을 먹어야 했고, 그럼에도 통증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링거 주사를 맞아야 했다. 아빠는 통증이 심해져 응급실에 먼저 입원해야 했기에 입원 직후 몇일 동안은 주사로 통증을 줄여야 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다


모든 병원이 그렇겠지만, 병실 침대 위에는 버튼이 2개 있었다. 하나는 일반 용무가 있을 때 누르는 하얀 버튼,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응급할 때 사용하는 버튼이었다. 병실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은 내가 함께 있었지만 정말 급할 때는 버튼으로 간호사 분을 불렀다. 급하지 않으면 내가 필요한 것들을 요청했고, 3교대로 일하시던 간호사 분들은 힘든 내색 하지 않고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금방 가져다주셨다. 감사했다.


입원 초반의 심한 통증이 사라졌다. 넥사바 항암제는 입원 이후에도 하루 두 번, 두 알씩 꼬박꼬박 먹었는데 그게 효과가 있었을까. 다행이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빠의 모습이라도 보지 않는게 다행이었다. 환자복만 입고, 병동 침대에 누워있을 뿐이지 아빠는 집에서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계속 나아지다가 퇴원하고 집에서 지내면서 통원치료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암의 무서움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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