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금의 희망을 보는 것 같았다

by 김황래

입원 생활이 지날수록 아빠의 통증은 조금씩 나아졌다. 초반에는 하루 2번씩 링거 진통제가 필요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먹는 진통제로도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했고, 병원 식사에 어려움을 겪으셨지만 고모가 아빠가 좋아하시는 반찬을 챙겨주셔서 끼니도 잘 챙길 수 있었다. 암환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영양'과 '체중'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특히 신경썼다. 먹고 싶은 게 있다고 하시면 바로바로 사다드리고 간식도 꾸준히 챙겨드렸다.


종종 병원 복도를 돌아다니거나 앞쪽 공원 산책도 하고, 벤치에도 앉아있으면서 안좋은 생각에 빠지는 것도 막았다. 병동에 있으면 멍하니 TV를 보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주변 다른 환자분들의 모습을 보다보니 우울함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 일도 어느정도 정리가 되어 나도 간병생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인터넷에 암환자에게 좋은 음식, 회복 방법 등을 검색해보았다. 암환자 가족 카페에도 가입해 나름 정보를 얻으려고 했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특히 4기 환자 가족 분들의 이야기는의 대부분은, 노력했지만 결국...으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많았기에 보면 볼수록 한 숨만 나올 뿐이었다. 어떤 약이 좋다는 이야기, 어떤 음식이 좋다는 이야기는 계속 적어내려가고 구입처를 알아보았지만 희망적인 느낌은 잘 보이지 않았다.



집에는 1주일에 두 번 정도 다녀와야 했다. 옷가지 및 수건 등을 세탁하고 새로운 것들로 챙겨와야했고, 병원 편의점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을 가져오기도 해야했다. 회사는 휴직했지만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도 있었고, 보험금을 청구하는 등의 일도 해야했다.


하지만 시간은 많지 않았다. 누군가 대신 아빠를 봐줄 수 없었기 때문에 집에 가서 최소한의 시간만 쓰고 돌아와야했다. 보통 집으로 출발하는 시간은 점심 식사 직후인 1시 반 정도였다. 원자력 병원은 우리집과는 완전히 반대이기 때문에 편도로만 1시간 30분의 시간이 걸렸다. 집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세탁기로 빨래를 돌리면서 짐을 챙기고 적어둔 일을 최대한 빠르게 처리했다. 빨래가 되는 시간은 50분 정도, 그 사이에 모든 일들을 끝내고 빨래가 끝나면 건조대에 빨래감을 널고 바로 다시 병원으로 출발해야 했다. 아무리 서둘러서 도착해서 5시 30분이 빠른 도착이다. 도착하면 바로 저녁을 준비해야한다. 다행히 그 사이 아빠는 주무시기 때문에 크게 케어가 필요하지는 않다. 식후 진통제를 드시고 잠드시면 그나마 잘 주무시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친척 분들이 병문안을 와주시면 그나마 좀 여유있게 집에 다녀올 수 있었다. 이발도 할 수 있었고, 사이사이 다른 곳에 들러서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은 많지 않았기에 아빠를 혼자 병원에 두고 출발할 때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나도 점점 몸이 지쳐갔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수는 없었다.



하루에 한 번, 오전 시간에 의사 선생님의 회진이 있었다. 증상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몸 상태를 체크하는데, 아빠의 통증이 어느정도 완화되자 퇴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병원 입장에서는 별다른 치료를 할 수 없는 4기 암환자가 병실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수익적인 측면에서는 불편했을 것이다. 아빠는 수술이나 정기적인 치료를 하는 환자가 아닌, 항암제를 먹으면서 통증에 있을 때 진통제를 먹으면서 삶을 연장하고 있었다. 냉정하게 바라보면, 그건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와 아빠는 병원을 떠나는게 무서웠다. 통증의 정도는 매일, 매시간마다 달랐고, 시간이 지날수록 먹는 약으로도 통증이 가라앉았지만 언제 다시 악화될 지 몰랐다. 집과 병원의 거리도 상당해서 한번 퇴원하면 다시 오기가 힘들었다. 다른 가까운 병원에 다시 입원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 회진 시간 눈치를 보면서 우리는 병원 생활을 이어갔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입원 생활 한 달 정도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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