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고민 끝에 퇴원을 했다

by 김황래

통증 제어가 어느정도 가능해진 아빠는 환자복만 벗으면 암환자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물론 통증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고, 먹어야 하는 양이 많았기에 힘들어했지만 입원해있는 다른 환자들과 비교했을 때는 상태가 좋아보였다. 언제 다시 악화될지 모르지만 나는 거기서 조금 안심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병원의 퇴원 압박은 더 심해졌고, 우리는 선택을 해야했다. 집으로 갈지, 아니면 요양병원으로 갈지.


아빠는 요양병원을 생각하고 있었다. 집에서는 갑자기 통증이 심해질 때 링거를 맞을 수 없기에 겁이 나셨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은 집 근처에도 많이 있었다. 입원비가 비싸지만 시설이 좋은 곳들도 있어 많이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쉽게 요양병원을 결정할 수가 없었다. 첫번째 이유는, 보호자의 상주 여부였다. 대부분의 요양병원은 보호자가 상주할 수 없었다. 특정 시간에 맞춰 면회만 가능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보호자가 상주하기 위해서는 더 비싼 돈을 내고 1인실 혹은 2인실을 사용해야 했다. 돈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빠의 병간호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요양병원 간호사님들이 잘 간호를 해주실 수도 있었지만, 아빠가 남자이기에 모든 부분을 맡길 수는 없었다. 내가 해야했다.


비싼 돈을 내고 내가 상주를 할 수 있는 요양병원에 가게 되더라도 문제는 또 있었다. 내가 병원을 나올 수가 없었다. 보호자 상주가 되는 요양병원들로 선택지를 좁히니 집과 꽤 거리가 되는 곳들만 남게 되었다. 근데 그 병원들에서는 내가 한번 병원 안으로 들어가면 병원 밖 출입을 못한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원자력 병원은 크기가 크기도 하고, 병원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환자 1명당 1명으로 제한되지만 보호자가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했다. 하지만 요양병원은 달랐다.이 두가지 부분 때문에 나는 쉽게 요양병원을 결정할 수 없었다. 내가 집에 다녀오지 못하면 병간호가 훨씬 불편해지고,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 친척 분들과도 통화를 여러번하고 아빠와 매일 이야기하다가 결국 집으로 퇴원하기로 했다. 집에 있다가 아프면 급하게 근처 병원 응급실이라도 가면 되니, 다른 사람들 없이 편히 쉴 수 있는 집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 결론을 내렸다.



퇴원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아빠의 상태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듣고, 퇴원약도 충분히 받았다. 병실에서 먹을 때도 많게 느껴졌는데, 퇴원을 위해 한꺼번에 약을 받으니 정말 종류와 양이 많았다. 2주에 한 번씩 상태에 대한 검사를 받기로 하고, 앰뷸런스를 불러서 퇴원을 했다. 같은 병실을 쓰던 환자들의 보호자분들께서 응원해 주셨고, 퇴원하기 전에 고생하시는 간호사 분들에게 간식으로 감사의 마음도 전했다. 지금보다 통증이 더 악화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으로 왔다.


1주일에 두 번씩 집으로 와서 정리를 하긴 했지만 퇴원으로 집에 다시 오니 기분이 또 달랐다. 하지만 그런 기분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집에서의 간병 생활을 준비했다. 빨래와 청소를 하고, 밥과 약을 준비했다. 병원에서보다는 훨씬 편하게 간병을 할 수 있었지만, 긴장을 놓칠 수는 없었다. 진통제를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위치에 두고 아빠의 상태를 살폈다. 아빠는 집에 온 이후 거의 모든 시간 자는데 썼고, 자다가도 통증이 갑자기 올 수 있었기에 나는 아빠방에서 쪽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래도 옆 환자의 소음 때문에 잠이 깨지는 않았다. 나는 오랜만에 그나마 조금은 더 깊이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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