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8일 밤 11시 11분>
아빠의 임종 시간이다. 그렇게 아빠와 나는 헤어졌다. 아빠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고, 잠을 자듯 그렇게 떠났다. 많은 친척들이 울었고, 나도 그 때서야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아빠였지만, 친척분들에게는 동생이자 오빠, 형, 그리고 삼촌, 외삼촌이었다. 아빠는 환갑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였다. 암으로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나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빠의 죽음은 현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의 준비를 해야했다.
장례를 치러야 했다. 3일장으로, 병원 부속 장례식장에서 치르기로 했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할 수도 없었고, 연락을 한다고 쉽게 올 수 있는 시간도, 거리도, 상황도 아니었다. 아빠를 옮기고, 병실의 짐을 정리한 뒤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밤에도 장례식장은 계속 운영되었고, 관계자 분과 함께 장례 절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장례식장에 쓰일 영정사진이 필요했다. 대학교 졸업식 때 아빠와 찍었던 사진이 있었다. 무표정은 내 옆에 있던 아빠의 사진이 영정사진으로 쓰였다. 나는 상복을 갈아입고 상주가 될 준비를 했다. 정말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아빠의 부고를 알렸다. 새벽 늦은 시간이었기에 다음 날을 위해 잠을 청했다. 그 전날부터 뜬 눈으로 밤을 샜기 때문에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찍 잠에서 깼다. 밖에 나가보니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고, 아침을 먹었다. 어느새 아빠의 영정사진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내 상복 왼팔에는 한 줄짜리 완장이 있었다. 오전부터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집안 사람들과 내 지인들이 번갈아가면서 왔다. 내 지인들은 내가 맞이했고, 집안 사람들은 큰아빠가 맞이했다.
급작스럽게 부고를 들은 지인들이 놀라며 장례식장으로 와주셨다. 서울 끝에서 끝의 긴 거리임에도 와주신 분들에게 너무나 감사했다. 함께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고다. 회사 사람들 이외에는 아빠가 아프셨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 다들 놀랐을 건 당연하다. 누군가를 보내면 또 누군가가 왔기에 생각보다 바쁘게 상주 노릇을 했다. 장례식장은 원래 너무 슬픈 분위기를 지양했기에 아빠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위로해주셔서 감사했다. 내 주위에도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3일장으로 장례를 치렀지만 실제로 사람들을 맞이한건 5월 29일 하루였다. 28일 밤 11시에 돌아가셨기에 이미 하루가 지나갔고, 화장을 하려 31일 새벽에 출발해야했기 때문이다. 화장을 하기 위해서는 화장터 예약을 해야하는데 서울, 경기 쪽은 예약이 꽉 찼고, 지방도 시간이 몇 개 남지 않아 새벽에 출발을 해야했다. 그래서 하루 동안만 손님을 받고 화장터로 가게 되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 아침 시간 가장 먼저 화장을 진행했다. 아빠의 관이 들어가는 모습도 보고, 화장이 끝나 아빠의 유골도 받았다. 따뜻하고, 뜨거웠다. 아빠를 조심히 모시고 유골을 모실 보광사로 향했다. 파주 쪽에 있는 절이었기에 평소에 내가 찾아가기도 어렵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산에 잘 둘러싸여 있었다. 자주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점심을 먹고 장례식장으로 돌아와 집에갈 준비를 했다. 짐이 많았다. 친척분이 차로 데려다주셔서 집에 무사히 돌아왔다. 3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많은 부분이 바뀌어 있었다. 집을 대충 정리하고, 청소하고 샤워를 한 뒤 해가 채 지기도 전에 나는 잠이 들었다. 잠을 자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