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셋에 엄마까지.
언니랑 아빠에 대해서 이야기 하다보면
참, 우리 아빠 외로우셨겠구나 하게 된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가족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지금보다
조금 더 많았었던 그때
우리 가족은 한 달에 한 번 토요일 저녁에 찜질방에 가곤 했다. 찜질방 가는 길의 차 안에서 나는 항상 설레었는데 그 이유는 찜질방에서 먹는 컵라면과 빙수 때문. 그때는 그것을 먹는 곳이 그곳인 것이 그렇게 설렐 수 없었다.
그때 여탕으로 우르르 들어가던 여자 넷은 아빠를 측은히 바라봤더랬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부쩍 몸이 안좋아지신 할머니의 아들, 소녀 같은 엄마의 남편, 가만히 있으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가마니가 되는 세상에서 사회인으로 버티기, 이것 말고도 열거할 수 없는 것들의 역할로 둘러싸인 우리 아빠는 힘든 내색을 안했었다.
여느 가정의 가장처럼.
그러던 아빠가 요즘 들어 나에게 부쩍 의지하시는 게 느껴진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밤 열시 반이 넘어가는 시각 나는 독서실에서 그날따라 유난히 읽히지 않는 활자들과 씨름중이었다. 그때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평소같았음 받지 않고 집에 가는 길에 전화를 걸었을 텐데 공부가 안되니 그렇게 그 전화가 반가웠었다.
아빠~~~~~
나의 부름을 시작으로 아빠는 요즘 아빠가 가지고 있던 수많은 감정들을, 술기운을 빌려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때.
독서실 1층으로 아빠의 전화가 끊길까 뛰어내려가던 나의 모습, 전화를 받은 후 한참 동안 이어지던 아빠의 속내, 그걸 듣는 나. 나는 이 일련의 장면들을 잊을 수 없다. 내가 서있던 거리의 공기와 함께.
아빠 엄마와 함께 살 때,
공부를 마치고 피곤한 마음을 안고 선잠이 들려고 하면 밤 속 전쟁터인 회식을 마치고 아빠가 오셨다.
술 냄새를 폴폴 풍기며 아빠가 내 동생과 나를 차례대로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우리의 볼을 부빌때
어느 날은 그런 아빠가 왠지 모르게 야속해 자는 척을 할 때도 있었고, 정말 정말 피곤했던 날은 짜증을 내기도 했었고, 측은함이 드는 날엔 뽀뽀는 도저히 부끄러워서 아빠 등을 토닥거릴 뿐이었다.
그때부터 아빠는, 이렇게 힘든 아빠를 위로해줘 라고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전화기 너머 아빠의 고백이 있은 뒤로,
나는 가끔 집에 가면 아빠 기분을 묻는다.
한창 아빠가 힘들어 하실 땐 요즘 사는 게 재미가 없다며 미간을 찌푸리셨다. 내 순발력있는 엄지와 검지가 찰나의 차이로 찌푸린 미간을 펴긴 했지만!
가장 최근 아빠 요즘 기분은 어떠세요! 했을때
요즘 좋지 라는 아빠의 대답. 행복했던 그 순간.
이유를 묻는 내게 아빠의 대답은 역시 내가 아빠의 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냥, 물 흐르듯 흐르는 일상이 행복해.
평일엔 회사에 가 업무를 보고, 주말엔 엄마 꽃집
일을 도와드리고, 엄마와 영화 한 편하는 이 일상이 행복해.
그런 말씀을 하시는 아빠를 가만 지켜보고 있던 그때 안방의 나와 아빠는 사진처럼 내 마음속에 있다.
아직도 우리 가족에게 아빠는 어쩔 수 없이 겹겹의 짐을 진 강한 사람이지만, 더 늦기 전에 조금이라도 곁에 내려두려고 노력하는 아빠가 너무 고맙고, 그냥 그대로 우리 아빠라서 좋다.
어젯밤 영화관에 남는 자리가 없어 밀정을 4D로 봐버린 귀여운 남자. 그리고 그 옆의 여자.
이 사랑스러운 둘과 평생 같이 하고 싶다.
우리 사랑 뽀에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