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음에 관하여

사람들은 왜 '하찮음'에 끌릴까? '하찮음', 그 불완전함의 매력

by 영이

하찮음에 관하여

하찮다는 말이 언젠가부터 ‘귀여움’ 을 내포한 단어로 쓰이게 됐다. 하찮고 귀엽다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을 때 많이 쓴다. 난 어떨 때 ‘하찮다’라는 말을 많이 썼더라? 아래는 내가 친구한테 보낸 카톡이다.

저 엑스레이 사진이 하찮고 귀여운 이유?

1. 쪼그만 강아지 녀석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는 점이 속상한데 그 와중에 귀여움

2. 본견도 생명이라고 뼈도 있고 다 있는데 사람인 나한텐 없는 꼬리뼈가 작고 소중함

3. 아무튼 그냥 귀여움


국립국어원에 ‘온라인 가나다’라는 것이 있다. 우리말에 관한 질문을 올리면 답변을 해준다. 누군가 ‘하찮아서 귀엽다’라는 표현을 순화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Q) 왜, 그런 말 있잖습니까? 주로 온라인에서 여성들이 쓰는 표현인데, 뭔가 올망졸망한 것들이나 엉뚱하고 발랄한 짓을 하는 동물들을 보고 하는 표현인데 "하찮아서 귀엽다." 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이 표현이 '귀여움'에 대한 묘사를 상당히 잘 해주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드는데, 이걸 축약한 혹은 이와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단어나 관용구가 있을까요?

A) 안녕하십니까? 온라인 가나다에서는 특정 의미를 나타내는 표현을 찾아 안내해 드리기 어렵습니다. 이 점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하찮아서 귀여운’은 국립국어원도 포기한 대체 불가능한 말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대체 어떤 계기로 ‘하찮은’ 을 일상에서 ‘귀엽다’는 뜻으로 사용하게 되었을까.


2010년대 예능·연예 캐릭터에서 등장한 ‘하찮음의 귀여움’

아마도 2010년대 <무한도전> 박명수의 ‘찮은이 형’ 캐릭터가 큰 영향을 준 듯하다. 무한도전을 즐겨보진 않았지만 이 압도적인 캐릭터 쑈에서 박명수가 가장 좋았다. 뻔뻔하고 무뚝뚝한 캐릭터지만 그만큼 하찮고(?) 약한 면을 가감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찮은 형일 때 박명수는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하찮은 형을 사랑했던 이유다.


2020년대 트렌드로 대중화

2020년대 ‘무해한’ 것이 유행하면서 ‘하찮은’ 것들이 또 한번 각광받았다. 하찮지만 귀여운, 혹은 하찮아서 귀여운 상품들이 쏟아졌다. 유행은 돌고 도는걸까? 어릴적 유행했던 ‘엽기’ 유행이 좀 더 세련된 B급 감성을 더해 ‘하찮은 캐릭터’로 돌아온 것 같다. 포인트는 대충 그린듯한 그림체, 최신유행밈 결합, 우리의 일상 속 하찮은 순간을 잘 포착한 것이다.


드라마에서도 하찮고 귀여운 남주인공이 유행했다. 이쯤되면 ‘하찮은’ 귀여움에 대한 사람들의 니즈는 단발성은 아닌 듯 하다. 차가운 도시 남자지만 내 여자에게만은 따뜻하겠지… 재벌집 아들이지만 알고 보면 마음 속 상처가 있는 주인공… 여러 작품에서 반복된 공식이다. 특히 배우 ‘정경호’ 가 ‘하찮은’ 캐릭터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다. <순정에 반하다>, <미씽나인>, <일타스캔들> 등 여러 작품에서 까칠하고 섬세하지만 한편으론 하찮고 병약한 모습으로 인기를 얻었다. 공통점은 본업엔 완벽하고 충실하지만 어딘가 인간적으로 귀엽고 헐랭한, 현실에 있을 듯 없는 ‘무해한 남성상’이란 점이다.


하찮고 귀여운 주인공의 빛나는 서사가 만났을 때

태초에 권정생 작가의 <강아지똥>이 있었다. 강아지똥 이후 ‘하찮고 쓸모없어 보이는 존재도 다 쓸모가 있다’ 같은 비슷한 류의 콘텐츠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이 작품은 첫 발표 1969년 이래 긴 시간 주목받지 못했다고 한다. 2000년대 초 정승각 작가의 ‘하찮고 귀여운’ 작화를 만나서야 대중적으로 빛을 보게 된다. 만일 강아지똥이 사실적인 ‘똥’ 캐릭터였다면 사랑받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멋진 서사와 하찮고 귀여운 작화가 만난 덕분에 대한민국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작품이 되었다.


하찮음 = 불완전함의 사랑스러움

‘하찮음’은 약함이나 부족함이 아니라, 인간다운 결핍의 다른 이름이었다. 수많은 드라마, 시나리오 작법서들에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주인공을 만들려면 ‘결핍’이 있어야한다고 한다. ‘하찮은’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은 나와 닮은 ‘결핍’을 가진 존재를 보듬고 싶은 본능적 욕구인 것 같다. ‘하찮은 것’의 ‘하찮지 않은 의외성’, 나도 어딘가 불완전한 존재들의 하찮은 사랑스러움을 사랑한다. 하찮고 귀여운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내 안의 하찮고 불완전한 모습들도 아껴줘야겠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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