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필름
단단했던 얼음 한 알이 차츰 녹아내리는 모양처럼, 이번 여름도 그렇게 지나갔다.
한층 시원해진 저녁 바람이 슬슬 가을을 데려오는 듯하다. 한동안 내 귓자락을 간지럽혔던 매미의 울음소리가 나뭇잎들이 부딪히는 소리로 바뀌어간다.
필름 카메라를 샀다. 입문자인 내가 비교적 쉽게 다룰 수 있는 제품을 찾아보다가 고른 나의 첫 미놀타 카피오스. 은색의 동그랗고 약간의 묵직함이 느껴지는 아이다. 은근하게 눈이 간다. 이쁘다.
처음 카메라를 받고 무엇을 어떻게 찍을까에 대해 고민하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머릿속에 펼쳐보았다.
'하루를 담아볼까, 아니면 장소 하나를 정해서 거기를 찍어볼까, 아니면 다 인물사진? 음.. 에라 모르겠다!'
일단 찍어보기로 했다.
필름 카메라의 묘미는 찍은 후에 바로 사진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한 장, 한 장 찍을 때마다 나의 온 정신이 이 작은 카메라 하나에 집중된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이렇게, 초점이 안 맞았다는 걸 알게 된다. 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름 카메라는 확실히 매력이 있다. 이렇게 초점이 흔들릴지라도 그 순간에 나의 어떤 의지가 담겨 있달까. 그 순간을 더 '잘' 포착하고 싶은 나의 마음이 사진 속에 담겨 있어서 좋다는 말이다.
나의 시선을 따라가는 일은 재밌다. 사진을 찍을 때에도 그렇다. 길을 걷다 최종적으로 나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이렇게 현상된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펼쳐보면서 나의 시선이 닿았던 그때의 그곳을 다시 상기해본다.
누군가의 뒷모습, 혹은 재잘재잘 주고받는 목소리들, 커피 향..
사진이 내게 주는 향기다.
따사롭다.
첫 번째 나의 필름에는 인물과 풍경이 주로 담겼다. 두 번째 필름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나의 시선을 따라가 볼 참이다.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기는 일은 나의 그 '때'를 간직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의 사람들과 내가 보는 풍경들의 잔향이 사진 속에서 지속되기를 바란다.
푹푹 찌는 여름의 매미 소리가 지나가고 어느덧 시원한 낙엽 내음을 풍기는 가을로 접어듦에 따라, 나의 사진들도 그 시간을 따라 지나간다. 다음에는 어떤 향기와 순간들이 내 사진 속에 담길까.
그때의 순간을 더 잘 기억하기 위해. 그 향기를 더 잘 맡기 위해.
두 번째 필름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