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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뮨미 Jan 07. 2022

6화 - 양양하다 (1)

자박자박 겨울 여행기

 바람이 바다의 알싸한 내음을 한껏 품어 안고 있었다. 

 파도가 밤낮 할 것 없이 세게 치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지나가는 고양이들의 느리고 어슬렁거리는 모양은 그곳에 깃들어 있던 여유로움과 호적했다.

 그 사이에서 파도가 끊임없이 소리를 내며 풍성한 여운을 남겼다.



  양양에 다녀왔다. 큰 계획 없이 떠난 즉흥적인 여행이었다. 양양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사실 이렇다 할 특별한 이유가 있진 않았다. 다만 강릉과 속초와는 달리 '양양'은 내게 다소 익숙지 않은 그런 느낌이 있다. 그 단어 자체에서 오는 낯섦이 있달까. 한 번도 가보지 않았을뿐더러 내게서 양양은 왜 때문인지 잘 언급이 되지 않았던 곳이었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그래서 일단 가보자, 마음을 먹었다.

 

낙산 해변가

  이번 여행에서 나의 가장 큰 목표(?)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였다.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심심하면 책을 읽기도 하고 그저 흘러가는 마음을 따르는 것,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이나마 여유로워지기, 였던 것 같다. 나는 3일 동안 낙산에서 머물기로 결정했는데 뒤늦게 생각해보면 낙산은 이러한 나의 취지에 참 적합한 곳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양양은 생각보다 좁은 지역이었다. 그중에서도 낙산은 하루 만에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아담한 곳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크게 할 건 없는 동네였다. (푸하)


 

  2시간을 달려 도착한 낙산. 숙소로 올라가는 길에 내 손가락은 급속도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숙소로 가기 위해서는 언덕배기 길을 올라야 했는데 오르면 오를수록 바다의 완전체가 내 두 눈에 가득 채워지는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다. 철썩철썩 때리는 파도소리가 마치 내게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나는 바다에 흥분했고 반가움을 느꼈다!) 나는 그 모습을 앞에 두고 셔터를 탁탁탁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짐을 대충 풀고 근처 낙산사로 향했다. 숙소에서 1분도 채 되지 않은 거리에 매표소가 있었다. 해수욕장에서는 5분 정도 걸린다. 아, 역시 좁은 동네. 가는 길에 호떡도 팔더라. (그렇게 나는 1일 1호떡을 했다고 한다.)


낙산사, 해수관음상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대부분 가족단위로 방문한 사람들이 많았다. 절을 하는 사람들,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유유자적하게 걷는 사람들, 사진을 찍는 사람들. 모두가 각기 다른 모습들로 그 시간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낙산사 안에서도 명소라고 할 수 있는 해수관음상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작은 언덕을 한 번 지나야 했다. 도착하고 보니 그곳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바로 아래에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처음 이곳에 도착하고 보았던 바다보다 훨씬 넓은 모습이었다. 나는 잠시 동안 바다에 나를 맡긴 채 가만 코 서 있었다.

 여전히 파도는 치고 있었다.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하고 나는 다시 해변가로 내려왔다. 한창 저녁 시간이었지만 해변가 주변은 다소 한산했다. 해변가를 옆에 낀 채 일렬로 쭉 펼쳐져 있는 횟집들에게서 적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중 한 곳을 들어가 광어회와 매운탕을 먹었다. 아. 최고였다. 비록 회는 많이 못 먹었지만 매운탕은 기갈나게 해치웠다. 또 한 번 깨닫게 된 점. 아, 나는 역시 밥이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 또 한 번 해변가를 거닐었다. 아까보다 더욱 세진 파도소리가 나를 가만가만 건드린다.  



  그렇게 양양에서의 하루가 지나갔다. 드넓은 바다를 보고 있자니 하루 동안 흘러갔던 모든 순간들이 내 뇌리에 스친다. 그리고 그렇게 느끼는 내가, 참 좋다. 내일은 더 마음껏 바다를 봐야지, 생각하며 잠에 든다.

 보통 나는, 오늘 하루를 보냈다면 오늘 하루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그 하루 속에서 나는 어땠나' 하고. 그리고 이어서 내일의 나에 대해 또 생각해보곤 한다. 이게 보통 내 생각의 단계다. 그러나 왜인지 양양에서 보냈던 그 첫날은 이 전의 보통의 단계를 거치지 않았던 것 같다. 적어도 난 그렇게 느꼈다. 

 다만 한 가지. 나를 순간순간 에워쌌던 그 무언가에 대해선 생각을 했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 불규칙적으로 혹은 규칙적으로 들려오던 그 파도 소리를.

 잠들기 직전까지 나를 데리고 놀았던 파도 소리가 그렇게 나를 잠재웠다.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저의 양양 일기는 2부에서 이어집니다. 자박자박 거리며 다시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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