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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뮨미 May 14. 2024

8화 - 어느 미자들의 독백

기억

아주 어렸을 때 한 순간이 떠올라요.

아마도 제 머릿속에 있는 맨 처음 기억일 것 같아요.

너무 어렸을 때라 몇 살인진 모르겠어요.

세 살? 네 살?

우리 엄마가 아파가지고 언니가 저를 데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언니랑 7살 차이거든요?

마루에는 커튼이, 붉은 커튼이 쳐져 있고

조금 열려있는 상태에서

햇빛이 이렇게 비쳐 들어오고 언니 얼굴이 반쯤 보여요.

언니가 그늘에 이렇게 반쯤 가려져 가지고..

아마 저한테 예쁜 옷을 입혀 줬나 봐요.

‘미자야, 이리 와, 얼른 와’ 이러면서 손뼉 치고

저는 뒤뚱거리면서 가고 어린 생각에도

언니가 나를 너무 예뻐하고 이리 오라고 하는데,

굉장히 기분이 좋았고, 너무 행복하고,

‘내가 정말 예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미자야, 이리 와, 빨리 와, 미자야.’



이 짧은 독백이 수많은 내 기억 속 일부를 파고든다.

우리 언니도 나를 항상 데리고 다녔는데

그래서인가 언니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짙은 어린 향기가 배어있다.

그게 참 좋다.

어쩌면 사람은 강렬했던 몇 개의 기억으로

삶의 곳곳을 채워가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언니를 보면 어릴 적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신나게 그네를 타던 모습이 떠오르고,

할머니를 보면 할아버지에게 장미를 받아 수줍게 미소 짓던 얼굴이 떠오른다.

내게는 다소 낯선 얼굴이었다.

그리고 엄마를 보면 그녀의 애창곡 ‘진달래꽃’을

열렬히 부르던 모습이 떠오른다.


누군가를 보고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일은

꽤나 애틋하고 생각보다 큰 사랑이 녹아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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