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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뮨미 Dec 07. 2020

3화 - 지나간 책들의 사연

중고 서점

  며칠 전, 중고서점에 다녀왔다. 나는 서점을 참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중고 서점을 특히 좋아한다. 그것은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시간을 타고 이 곳에 도착한 책들의 진한 향기가 특히 좋은 이유에서이다. 물론 새 책이 주는 설렘도 큰 건 사실이지만, 약간에 때 묻은 책들에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듯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이유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찾으려 하면 시중에 남아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찾다 찾다 못 찾았던 책들이 중고 서점에서 '유레카!' 하고 발견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보물을 발견한 듯이 얼른 꺼내어 두 손에 꼭 쥐곤 한다. 내가 올해 들어 중고 서점을 더욱 자주 이용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이기도 하다.


  그렇게 중고 서점을 자주 이용하다 보니 이제는 책을 살 때 무조건 중고 서점을 찾게 된다. 세어보니 올해만 들어서 20권가량 되는 책들이 내 책상에 쌓이게 되었다. 이렇게 점점 쌓여가는 책들을 보면 괜스레 뿌듯해지기도 한다. 하나하나 꺼내 보는 재미가 무척 쏠쏠하다. 이야기는 돌고 돈다. 그래서 책도 돌고 도는 듯하다.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의 손을 거쳐 내게로 온 책들에게서 은근한 애틋함이 느껴지곤 한다. 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 >라는 산문집 앞표지에서 1998년도에 쓰인 누군가의 짧은 편지를 발견했다. 나는 그걸 보고 더 이상 그 책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편지의 내용에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이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한 그 '사람이 보냈을 시간'을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다. 1998년.. 이 세월을 함께 보낸 책이 아닌가. 그 짧은 편지가 내게는 가슴 깊숙이 잔상으로 스며들었다. 이런 것이 내가 책을 볼 때 느끼는 어떤 애틋함 인 것 같다.

 또 어떤 경우에는 중간중간 누군가의 연필 자국이 새겨진 책들이 있다. 나는 그걸 애써 지우지 않는다. 밑줄을 그었다는 것은 그 한 줄이 누군가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다는 말이다. 그 인상을 애써 지우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그 짙은 인상을 오래오래 남겨두고 싶은 기묘한 마음이라고 해두자.


  며칠 전, 책상 정리를 하면서 더 이상 읽지 않는 오래된 책들을 모아 서점에 팔았다. 내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내왔던 만화책과 소설들이었다. 한편으로는 나의 시간들을 거쳐 온 이 책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진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뿌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그 책들이 다른 이들에게 또 어떤 인상들을 남길까. 나만의 작은 기대감이 생긴다.


영화 < 그 후 > 중


  사람은 시간과 추억을 먹고 산다. 책도 그렇다. 책에 담긴 이야기 안에서도 시간과 추억은 존재한다. 물론 독자에 따라서 느끼는 바가 다를 테지만 분명한 건, 글자는 단연코 우리에게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이다. 하루키의 산문집에서 본 누군가의 짧은 편지가 내게 그러했듯이. 현 사회에서 고전이 여전히 언급되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의 이야기들은 돌고 돌아 현재의 우리들에게 닿는다. 글자 위로 흘러갔을 수많은 세월들은 돌고 돌아 우리의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책이 주는 삶, 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나는 그것을 매우 사랑한다.


  나는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들을 보게 될까. 우리가 앞으로 보낼 시간과 추억에 대해 한편에 기대를 가지며 살아보는 것, 꽤나 재밌는 삶이 되지 않을까 하고 감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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