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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뮨미 Dec 04. 2020

계절 2호 - 겨드랑이의 온도차

< 여름 >

 ‘띠링-’ 카페 안에 들어서자 도어벨에 달려있던 작은 물고기가 온몸을 흔들며 내게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들어와서 보니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밝은 회색이었던 등짝과 두 겨드랑이가 어느새 짙은 회색이 되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았다. 큰 창가 쪽은 이미 만석이었고, 중간 쪽은 뭔가 애매한 게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겨드랑이가 신경 쓰였던 나는 결국 제일 안쪽에 위치한 구석진 자리로 가 앉았다.


 1시 45분. 대학 동창인 지수와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15분 일찍 왔다. ‘띠링-’ 소리가 들려왔다. 단발머리 여자가 미리 기다리고 있었던 누군가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굉장히 오랜만에 만난 사이처럼 보였다. 창문 너머로는 몇몇 사람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목을 주욱- 뺀 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굉장히 들뜬 모습이었다. 순간 온갖 웃음소리들이 한데 섞여 나의 귀를 자극했다. 카페 안은 각기 다른 활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주로 친구 혹은 연인과 함께 온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왁자지껄한 소리들이었다. 그러다 문득, 오늘이 주말이라는 사실과 특히, 주말 중에서도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이라는 사실이 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사실 이 전까지 휴일에 대해 큰 감흥이 없었지만 이 강력한 분위기에 압도라도 되었는지, 괜스레 나도 이 사람들과 함께 제대로 된 주말의 시작을 끊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덧 두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 땀도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나는 갈증을 참지 못하고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길게 한 모금을 빨아들이니 세상 모든 짜릿함에 온 몸이 사로잡힌 기분이 들었다. 정각이 되었다. 지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약속시간에 단 한 번도 늦은 적 없는 그녀였다. 또한 시간만큼이나 연락에도 철저한 그녀였다.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되돌아오는 건 반복되는 삐 소리뿐이었다. 다섯 번째 삐 소리가 들려오고, 시간은 어느덧 30분이 지나 있었다. ‘띠링-’ 도어벨 소리가 들렸다. 지수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띠링-' 또다시 종소리가 들렸다. 문득, 종소리가 불편하고 어딘가 기괴한 울음소리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그 울음소리는 서 너번 정도 불규칙적인 간격으로 내 귀를 긁어댔다. 40분이 지나고 묽어진 아메리카노에서는 쓴맛이 났다. 창문 너머로 어느덧 새로운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왜인지 다소 지쳐 보였다. 카페 안은 한결같이 떠들고 있는 사람들의 소리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이 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절반 정도 남아있던 묽은 아메리카노를 버리고 나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문을 열자 햇빛의 한 줄기가 순간적으로 내 눈을 깊게 찔렀다. 괜스레 자존심이 상했다. 더위는 사그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신난 모습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한 세 발자국 갔을까. 갑자기 딱딱한 축구공이 내 머리 벽면을 왔다 갔다 하며 튕기기 시작했다. 당황할 틈도 주지 않고,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결국 나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공은 멈출 기세도 없이 계속해서 본인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아..' 뜨거운 햇볕 아래 내 두 겨드랑이 사이로 말랐던 땀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즐거운 주말의 시작이다. 공차기는 도대체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간신히 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한 퀴퀴한 냄새가 나의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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