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모양
4월이 되었다. 무채색의 겨울이 지나가고 알록달록한 색깔들이 피어오르는 봄이 왔다. 나는 주룩주룩 내리는 비 소리를 옆에 끼고 바짝 다가온 봄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이윽고 거리를 한껏 물들였던 벚꽃의 지난 모습들이 떠오른다.
'물에 비친 벚꽃, 흩날리는 벚꽃, 바닥 위로 떨어진 벚꽃, 다 같이 머리를 맞대어 싱그럽게 흔들리는 벚꽃, 누군가의 등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벚꽃.'
아름다운 것은 참으로 다양한 모습이다. 언제나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모든 것들은 변화해서 아름다운 것과 마찬가지로 더없이 아름답다. 내 머릿속에서 벚꽃은 늘, 그 자리에 우뚝하니 서 있다.
'후드득' 이렇게 비가 내리니 올해에 벚꽃은 끝이라는 생각에 괜스레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날이 개고 만연할 녹색과 노랑과 보라의 풍경들을 떠올려보자면 또 다른 설렘이 내 안에 발동된다.
하나의 꽃이 지면 또 다른 꽃이 피기 마련이니까.
그렇다면 나의 봄은 어떠한가. 작은 것에서 변화가 있다. 내가 키우고 있는 반려식물들에게 새로운 식구가 생겼다. 뜻밖에 우리를 찾아온 작은 생명이 참으로 소중하다. 휘청휘청거리지 않고 부디 무럭무럭 예쁘게 자라주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나는 종종 길을 걷다 초록색 푸르른 아이들에게 시선을 뺏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가던 길을 멈추고 쓰윽 한 번 만져보거나 코를 살짝 갖다 대보기도 한다. 이윽고 질척한 흙냄새와 약간은 비릿한 물 냄새가 함께 섞여 들어온다. 그리고 그 사이를 희미한 바람이 그네를 타듯 부드럽게 지나간다. 봄을 설명해보자면, 정확히는 '나'의 봄을 설명해보자면, 흙냄새와 물 냄새, 그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 그리고 선물 같은 꽃 내음이다. 시간이 지나도 언제나 선명한 모습으로 나를 반기는 이 봄 냄새가 참으로 좋다. 나는 이번 봄을 소중한 나의 식물들과 함께 시작해보려 한다.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봄을 갖고 있다. 그것이 보편적일 지라도 '나'만의 봄이라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내가 좋아하고 기대가 되고 설렘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또한 봄은 아주 사소하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자유롭게 모양을 만들어 갈 수 있으므로. 그 모양은 '시작' '설렘' '청춘' 그 밖의 다른 여러 가지 이름으로 각자의 봄 안에 스며들 것이다. 그 사소함이 기쁨이 되어 행복으로 발현되는 이 아름다운 현상. 나를 채우는 봄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지금은 나의 봄이다. 작고 귀여운 식물들은 나의 봄이다. 나의 봄은 살랑살랑 초록색 모양이다.
영원하지 않지만 다시 되돌아 올 지금의 봄에게 나는 세차게 두 손을 흔들어 본다.
*타이틀 사진 - 영화 <봄 이야기>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