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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뮨미 Jan 13. 2021

계절 4호 - 눈(雪)의 부재

< 겨울_2 >

  밤이 되면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흰 재 같이 날렸던 눈들이 어느덧 평평한 땅 위로 각기 다른 층을 이루어 쌓여 가고 있었다. 나는 방에서 나와 차가운 툇마루에 걸터앉은 채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건너편 식당에는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들은 한껏 몸을 움츠린 채 신발을 털고 미끄러지듯 안으로 들어갔다. 연말의 왁자지껄한 풍경 냄새가 가득했다. 함박눈은 여전히 그칠 기세를 모르고 위풍당당한 태세를 취했다. 굵은 눈발들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었던 나는 문득 그 날이 떠올랐다.

 



  오늘처럼 하염없이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그리고 당시 기준으로 5년 만에 발령이 내려졌던 대설주의보로 인해 전국 여러 곳곳에서는 폭설로 인한 각종 사고들이 끊이지 않던 날이기도 했다. 또 그날은 설 연휴를 앞두고 우리 지점에서 새로 진행하고 있는 적금 프리미엄 패키지의 최종 기획안을 본사로 제출하는 일과 고객들로부터 걸려 온 크고 작은 사무 처리들로 인해 늘 5시 퇴근을 지켜온 내가 4시간이 지나서야 사무실을 나섰던 날이기도 했다. 모든 업무를 마무리 한 뒤 나는 물 먹은 것과 같이 한 없이 무거워진 몸을 간신히 일으켜 사무실을 나섰다. 주차장까지 1분도 안 되는 거리가 이렇게도 길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거세게 덮쳤다. 그때, 오른쪽 허벅지에서 얕은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 오른쪽 손을 깊게 찔러 넣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부재중 전화 알림이었다. 확인해보니 엄마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네 통이 와 있었다. 순간 나는 엄마의 생일이 언제인가 기억을 더듬어 보기 시작했다. 선명한 날짜가 떠오르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설을 앞둔 시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살면서 이렇게 난데없이, 그것도 한꺼번에 전화를 걸어온 적이 없었던지라 화면 속에 찍힌 '부재중 네 통'이란 글자가 그저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러다 나는 문득 엄마와 나누었던 마지막 통화를 떠올려 보았다. 2주 전? 3달 전? 아, 2달 전이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순간, 까마득하게 먼 과거의 한 시점 속에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던 짧은 대화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러나 결코 그것이 언제였는가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관계적으로 보았을 때 엄마와 나 사이에는 특별히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여느 흔한 모자지간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우리 사이에는 서로에 대해 그저 잘 살고 있겠거니 하고 생각해 버리고 마는, 암묵적인 무언가가 존재했을 뿐이었다. 오늘을 제외하고 가장 최근 부재중 기록을 찾아보니 일주일 전이었다. 내가 왜 전화를 받지 못했는가는 여전히 기억나지 않았다. 발신 버튼을 눌러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윽고 몇 번의 신호음이 이어지고, 엄마는 받지 않았다. 나는 잠시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 떼어 자동차로 향했다.


  도로는 예상한 대로 전혀 뚫릴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라디오에서는 폭설로 인한 사고 소식들이 줄줄이 들려오고, 주변에서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엄마는 무엇 때문에 전화를  걸까. 도로는 여전히  막혀  이상 앞으로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낯선 여성의 형식적인 목소리뿐이었다. 순간적으로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어쩐지  졸음이  것만 같았다. 나는 점차적으로 밀려드는 잠을 깨기 위해 빠른 템포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는 채널을 찾아 손가락을 부지런움직였다. 집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10 30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평소보다 퇴근길이  배나 늘어진 것이었다. 나는 씻지도 않고 곧장 툇마루에 앉아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발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아까보다 눈이 더욱 굵어진  같았다.


 ‘띠리리링’

  전화벨이 울렸다. 마침내  소리는 길었던 고요의 적막을  주었다. 그런데 발신자는 엄마가 아닌 외삼촌이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외삼촌에게 전화가  적도,  내가  적도 없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지금, 처음으로 그와 통화를 하는 것이었다. 외삼촌은  이렇게 전화를 받지 않았느냐고 나를 조금 꾸짖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으나 묘하게 밝은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어딘가 애써 노력하며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나는 미동도 없이 한참을  있었다. 엄마는 오늘 저녁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나는 전화를 받지 못하였다. 일주일 전에도 엄마는 내게 전화를 걸었지만 나는 받지 못하였다. 당신은 무슨 말을 내게 전하려고 했던 것일까. 나는 , 전화를 받지 않았던 것일까. 갑자기  안에서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후회인지, 슬픔인지, 혹은 분노인지 전혀  길이 없었다. 이러한 엄마를 앞에 두고 내가   있는 것은  그랬듯,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뜻밖에 찾아온 죽음을 대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끝끝내 나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엄마와 나 사이에 암묵적으로 존재했던 그 일정 거리는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고도 철저하게 우리 안에서 유지되었다. 더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은 채로, 살고 있을 때나 살지 않고 있을 때나 한결같이 엄마와 나 사이를 구분 짓고 있었다. 나는 왜 그리도 필사적으로 그녀를 외면했던 것일까. 나는 왜 그녀를 한 번이라도 들여다보지 못했을까. 아무리 물음을 던져보아도 내게는 어떠한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에 와서도 엄마의 죽음은  안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죽음은 어떠한 형태가 되어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거나 혹은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가볍게 스며들었다.   어느 것이 그녀의 죽음에  가까운지는 모르겠다. 가볍거나 무거운 엄마의 죽음. 그것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었다. 그리고 남겨진 나는 가볍거나 무거운 무게를 느끼고 있을 . 더욱 굵어진 눈발이 아까보다  높은 탑을 이루고 있었다. 이미 희미해져  보이지 않는 엄마의   뒤로도 함박눈이 수북이 쌓여 있을 것이다. 나는  무거운 등을 향해  팔을 뻗어 보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공기 중에 사라져 버리는 굵거나 얇은 힘없는 눈발들 뿐이었다. 여전히 쏟아지고 있는 함박눈들 사이로 건너편 식당의 활기찬 사람 소리가 들려왔다.








*타이틀 사진 - 영화 < 토니 타키타니 >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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