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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별 Jun 15. 2024

편지에 대하여

그 많던 편지들은 다 버려진다 하지만

<편지에 대하여>


제는 편지를 거의 쓰지 않지만, 편지에 대해서라면 나는 할 말이 많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는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마다 반 친구들과 엽서나 카드를 주고받았다. 특히 나는 크리스마스 엽서를 받는 걸 너무 좋아했다. 친구들이 주는 크리스마스 카드에 쓰인, "겨울 방학 잘 보내 진주야. 내년에도 우리 잘 지내자."이런 말들이 고맙고 반가웠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친한 친구 몇 명과 편지 형식의 교환 일기도 썼고, 그들 중에서 더 친했던 친구 한 명과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장문의 편지나 포스트잇에 적은 쪽지를 주고받았다. 팍팍하고 삭막한 고등학생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다 그 시절 우리들이 주고받은 편지들 덕분이었다.


2년 전에 나는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했던 적이 있다. 인스타그램으로 신청자를 받아서 일주일에 한 번씩 메일을 보내주는 것인데 9회 차까지 보내다가 10회부터는 어떠한 설명도 없이 보내지 않게 되었다. 내가 쓴 말들이 너무 횡설수설이었고 무의미하다고 생각되어서 어느 시점부터 메일을 보내기가 창피해졌다. 그렇더라도 마지막 메일을 보내면서 이 메일링 서비스는 이번이 마지막이 됩니다.라는 마지막 인사 정도는 하고 마무리를 했어야 했는데, 내 글을 읽으려고 관심을 보여주고 메일 주소를 알려주고 실제로 읽어주었던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던 것 같다.


작년 가을에는 지역의 독립 책방에서 열렸던 '아침, 편지'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때 진행자였던 분과는 이후로도 개인적으로 더 만나게 되어 지금은 더 편한 사이가 되었다. 내가 쓴 편지를 읽어주는 것도 고마운데 그에 대한 진심 어린 답장까지 받아볼 수 있어서 만족도가 아주 높았던 모임이었다. 올해 3월에 보냈던 편지에는 나의 내밀한 이야기가 좀 담겨 있었다. 이후로 나는 편지를 더 쓰지 않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어떤 부분에는 편지 형식을 빌려서 쓰려고 생각 중이다.


사람들이 아직도 편지를 쓸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분명히 어떤 곳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편지를 쓰고 싶어 할 것이다.


답장을 받으면 정말 기쁘겠지만 심지어 답장을 받지 못하더라도 편지 쓰는 일은 어떤 효용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더, 내 편지를 읽고 답장까지 써 주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크게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쓴 편지들 중에 몇 장의 편지들은 답장을 바라지 않고, 답장이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쓰기도 했다.


벌써 6월 중순, 앞으로 남은 올해 동안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내용의 편지를 또 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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