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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별 Jun 15. 2024

눈을 감아야만 볼 수 있는

보이지는 않아도 느껴진다

<눈을 감아야만 볼 수 있는 것>


요즘은 눈이 자주 시리다. 아무래도 에어컨 바람을 오래 맞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번 주제에 대해서는 떠오르는 이야기가 없어서 한 번 건너뛸까 생각했다. '눈을 감아야만 볼 수 있는 것'이란.... 뭘까?
나는 물질적인 것에 쉽게 현혹되고 마는 사람이라, 추상적인 단어를 어려워한다. 눈을 감아야만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아마 그런 추상적인 관념들이 아닐까 막연히 생각할 뿐이다.

그리운 존재들, 물론 있다. 내가 엄마 배속에 있을 때부터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까지 같이 사셨다가 내가 고1이었을 때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 고양이별로 간 지 곧 5주기가 되는 미남이. 이렇듯 지금은 만날 수 없고 이름을 불러도 대답을 들을 수가 없지만 여전히 그리운 존재들. 떠나버린 존재들. 10년이 넘는 세월을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고 보살펴 주었던 이들. 하지만 이들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부러 눈을 감아보지는 않는다. 사진을 통해서 꿈을 통해서 이들은 다시 나타나곤 한다.

요즘은 눈이 자주 시리다. 그래서 눈을 자주 감는다. 깜빡이기도 한다. 힘을 줘보기도 한다. 한 곳을 멍하니 쳐다보기도 한다. 부러 초점을 흐리게 바라보기도 한다. 눈을 감으면 세상이 닫힌다. 나는 어떤 장막 안에 갇혀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된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면 더 그런 느낌이 심해져서 좋다. 그냥 좋다. 그뿐.

특히 영화 <스타 이즈 본>에서 주연인 레이디 가가가 불렀던 OST를 눈을 감고 자주 듣는다. 요즘 같은 날씨에 듣기에 어울린다. 영화가 너무 슬퍼서, 처음 본 이후로는 다시 보지 못하고 있다. 한 번 더 봐야 하는데, 한 번 더 보고 싶은데 생각하면서도.

요즘은 눈이 자주 시리다. 눈을 감으면 검은 배경 위로 색색의 무늬들이 떠다닌다. 그게 마치 잭슨 폴록의 그림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리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요즘은 그냥 생각 없이 사는 게 좋다. 너무 많은, 깊은 생각이 나를 힘들게 하거나 괴롭게 한 적이 많았다.

그리고...... 시각을 덮으면 맡아지는 냄새들이 있다. 추억과 눈물이 서린 보고 싶은 냄새들. 내가 좋아했던 사람의 체취. 자려고 누워 덮은 이불에서 맡아지는, 향수 냄새와 체취가 섞인 오묘하게 기분 좋은 그 냄새도 떠오른다. 나에게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었던.

내가 생각할 때 냄새는 추상적인 것 같다. 우리는 냄새, 향기를 후각적인 것-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고 감각할 수 있다고 배웠지만.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지만 거기 있다는 걸 아는 것, 그게 바로 냄새나 향기가 아니던가.

'사랑'이나 '행복' 같은 관념적인 낱말들이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거기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걸 알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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