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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별 Jun 15. 2024

도망치고 싶은 순간

토요일 오후 4시 30분

<도망치고 싶은 순간>

토요일 오후 4시 30분부터 6시까지.


그때 수업하러 오는 아이들이 여섯 명인데 활달하거나 손이 자주 가는 녀석들이라 좀 버겁다. 일주일 중 가장 힘든 시간이 바로 그때. 여섯 명이서 돌림노래하듯 날 부른다. 아니, 정확히는 여섯 명이 아니라 네 명이다. 여섯 명 중에 두 명의 아이들은 차분히 자기 할 일을 집중해서 하니까. (아니면 아예 졸거나) 그래서 차분하고 조용한 그 두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내 시선이 덜 머무르게 되니까.  


나는 초등학생들이 노트북을 사용해서 책을 읽고 독서퀴즈를 풀고 독후감을 쓰게 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강사다. 재작년까지는 중학생 1, 2, 3학년들의 국어를 가르치는 국어 강사였는데 대표원장님이 2년 전에 초등 전용관 분원을 내서 옮기게 되었다.


정해진 내용을, 짜인 틀에 맞춰 수업하는 방식이 내게는 맞지 않았다고 느껴왔다. 그래서 중학생들 수업이 왠지 좀 삭막하고 긴장되고 어려웠다 내겐. 수업을 얼마나 잘하는 강사인가를 매번 평가받는 것 같은 기분이 나를 옥죄는 것 같아서 힘들었다.


초등생들은 점점 예뻐 죽겠다. 원래 나는 영유아나 어린이들을 좋아하는 어른은 아니었다.


나를 좋아하고 잘 따르는 아이들은 주로 성정이 차분하고 침착하고 자기 주도 학습이 어느 정도 되는 친구들이다. 반면에 자유로운 영혼이거나 에너지틱한 녀석들은 아무래도 내가 감당하기에는 좀 진이 빠지는 느낌이 들고, 토요일 오후 마지막 수업인 4:30-6:00타임은 초1 한 명과 초2 한 명, 초3 세 명과 초6 한 명인데... 토요일에 출근하기가 좀 겁이 나는 이유는 바로 이 마지막 수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속내를 들킨다면 아이들은 정작 나에게 서운해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별 상관이 없을지도. 그들은 아랑곳없이 자기 식대로들 행동하고 말하고 쓸 것이다.


내가 아무리 조용히 하라고, 목소리를 좀 줄여달라고, 자리에서 이탈하지 말라고, 다른 친구에게 참견하거나 끼어들지 말라고, 잠깐만 기다리라고, 대답은 한 번만 해달라고.........


이런 식으로 하면 어머니께 상담 전화를 할 거라고....



협박하거나 달래거나 으르렁 거려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게 날 힘들게 한다.


내가 수업하는 방식이 오히려 이런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그렇다고 해도.. 정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내 말을 들을지 그 방법은 도무지 모르겠고.


이를테면 내 말투나 억양 눈빛 같은 비언어적이거나 반언어적인 요소들이 아이들을 더 날뛰게 하는가.... 이런 자괴감에 빠지기도.


어찌어찌 한 시간 반이 지나가고 토요일의 수업이 끝나면, 그래도 무사히 마무리했다는(과연? ) 생각이 들어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강의실을 쓸면서는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아고고고고'하는 신음 소리가 나오고.


사실은 강의실 청소고 뭐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가방 들고 신발 갈아 신고 바로 뛰쳐나가고 싶다............ 고 생각하지만 대충이라도 강의실은 쓸어야 하고 에어컨을 껐는지도 확인해야 하고 화장실에 가서 손도 씻어야 하고.


아무래도 내일은 학원에 출근하면 어머니들께 상담전화를 해야겠다. 그런데 이 또한 어렵다. 좋은 이유로 상담전화를 하는 거면 전화를 거는 나 역시 마음이 가볍고 좋지만 그런 게 아니라서 말 꺼내기도 어렵고 그렇지만 해야 할 말은 해야 하고 그래서 상담 전화도 꺼려지고 피하고 싶어 진다.


게다가 상담전화를 한다고 해도 과연 토요일 오후 4시 30분의 그 아이들의 수업 태도가 얼마나 나아질지는 의문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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